2023.5.25. 《로동신문》 4면
공훈용해공 박명호동무
룡성기계련합기업소 선군주철공장에 가면 지난 29년간 용해공으로 묵묵히 일해오고있는 박명호동무를 만날수 있다.그는 온 나라가
기업소에 입직한 첫날 그는 우리 당에서 기계를 낳는 어머니공장으로 내세워준 보람찬 일터에서 일하는 근로자답게 한생 량심과 의리로 당을 받들겠다고 굳게 마음다졌다.그날의 맹세를 가슴깊이 간직하고 지난 20여년세월 그는 경제발전과 인민생활향상에 이바지하는 여러 중요대상설비생산에 참가하여 뚜렷한 생의 자욱을 남기면서 26명의 로동자들을 기능공으로 키워냈으며 당세포비서로 사업하면서 작업반을 화목하고 단합된 집단으로 만들기 위해 아글타글 노력하였다.
그렇듯 맡은 일에 지혜와 열정을 아낌없이 바쳐가는 그의 공로를 귀중히 여겨 당과 국가에서는 높은 국가수훈을 안겨주고 사회주의애국공로자로 내세워주었다.그 나날 그는 련합기업소를 찾아오신
박명호동무는 당과 국가의 은덕에 높은 실적과 빛나는 실천으로 보답하는 길에 한생을 깡그리 바칠 오직 한마음으로 오늘도 당결정관철의 앞장에서 힘차게 내달리고있다.
나라의 기계공업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불같이 살아온 그에게 지난해 2월 공훈용해공칭호가 수여되였다.
공훈자동차운전사 조철동무
청진금속건설련합기업소 자동차1직장 운전사 조철동무는 40여년세월을 한일터, 한직종에서 성실히 일해오고있다.
그가 자동차와 인연을 맺은것은 군사복무시절부터였다.인민군대에서 운전사로 복무하던 그는 김책제철련합기업소확장공사에 참가하여 위훈을 떨쳤다.강철전선을 중시하는 우리 당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그는 제대배낭을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 청진금속건설련합기업소에 풀어놓았다.
건설자의 생활은 헐치 않았다.
명절과 휴식일이 따로 없이 늘쌍 집을 떠나 건설장들에서 살다싶이 해야 했다.그 나날 한두시간의 잠도 그리울 때가 많았다.하지만 그는 자기가 운반하는 건설자재들과 물동량들이 쌓일수록 그만큼 조국의 재부가 늘어난다고 생각하며 매일 물동수송계획을 넘쳐 수행하면서도 먼거리수송과제가 제기되면 솔선 맡아나서군 하였다.그리고 경험이 어린 운전사들의 기술기능을 높여주기 위해 자기가 품들여 마련한 예비부속품들과 공구들을 안겨주면서 그들모두를 혁신자로 키웠다.
김책제철련합기업소는 물론 청진화력발전소, 고암-답촌철길, 어랑천발전소를 비롯하여 수많은 창조물들에는 그가 바친 깨끗한 땀과 량심이 슴배여있다.
이제는 세월이 흘러 그의 머리에도 흰서리가 내렸다.그러나 병사시절의 그 나날처럼 변함없는 한모습으로 충성과 애국의 운행길을 달리고있는 그에게 조국은 지난해 12월 공훈자동차운전사칭호를 안겨주었다.
공훈산림공 김주철동무
사회주의애국공로자인 태탄군산림경영소 삼봉리산림감독원 김주철동무는 고향산천을 더욱 푸르게 하기 위해 근 20년세월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쳐오고있다.
밤깊도록 돌을 춰내고 등짐으로 질좋은 거름도 날라다 양묘장을 꾸려놓은 그는 수종이 좋은 나무종자들을 해결해오기 위해 늘 먼길을 걸었으며 어린 나무모들에 아낌없는 진정을 쏟아부었다.
당의 뜻대로 고향산천에 푸른 숲을 울창하게 펼쳐놓자면 어떻게 하나 주민들의 땔감문제부터 풀어야 한다고 결심한 그는 도의 여러곳을 다니며 갈뿌리를 캐다가 집터밭에 심고 가꾸며 풍토순화시키기 위해 뼈심을 들이였다.
거듭되는 실패에 맥이 풀릴 때도 있었고 지쳐 쓰러진적도 한두번이 아니였지만 그는 자기가 겪는 고생을 두고 후회하지 않았다.고향의 산들을 더 푸르게만 할수 있다면 고생을 사서라도 하겠다는것이 그의 드팀없는 의지였다.김주철동무의 뜨거운 마음에 받들려 지금 무성하게 자라는 갈은 주민들의 땔감과 영농자재로 리용되고있다.
세월은 흘러 그가 처음 심은 나무들이 이제는 키높이 자라 목재로 쓰이고있으며 잣, 밤을 비롯한 산열매들은 농장원들의 생활에 보탬을 주고있다.
나라의 귀중한 재부인 산림을 정성다해 가꾸며 애국의 구슬땀을 아낌없이 바쳐가고있는 김주철동무는 지난해 2월 뜻깊은 광명성절을 맞으며 공훈산림공칭호를 수여받았다.
본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