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적량심이 가리킨 길
개천탄광마을의 명예당원들이 영광의 당대회를 앞두고
스스로 막장에 들어가 탄부들을 도와주고있다
영광의 당대회를 충성과 위훈으로 맞이하기 위한 투쟁대오에는 우리의 명예당원들도 있다.
얼마전 우리는 개천탄광의 막장에 스스로 달려나와 석탄생산에 이바지하고있는 여러명의 명예당원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였다.
당생활년한도, 년로보장을 받은 기간도 각각이지만 그들의 발걸음을 막장으로 떠민것은 오직 하나 당적량심이였다.
영광의 당대회에 드리는 자랑찬 로력적성과에 나의 노력, 나의 땀도 깃들게 하리라.
이러한 당적량심으로 선택한 막장길이였다.
《혁명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당원이 되는것도 영예이지만 그보다 더 값높은 영예는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당원의 고귀한 정치적생명을 계속 빛내여나가는것입니다.》
지난해 11월초 어느날이였다.
수십년간 굴진공, 채탄공으로 일하면서 나라의 석탄산을 쌓아올리는데 이바지해온 림명남아바이가 자기가 일하던 류동갱 채탄2중대 막장에 찾아왔다.
나이는 예순을 훨씬 넘기였지만 석탄증산을 호소한 당의 부름에 화답하여 나선 그의 열의는 불같았다.
오래동안 채탄중대장으로 사업하면서 해마다 중대를 년간계획완수에로 이끌어왔고 막장관리의 명수로 소문이 자자했던 그여서 탄광일군들은 더없이 반가왔지만 건강이 걱정되였다.
그러는 일군들에게 그는 진정을 터놓았다.
《당의 걱정을 덜어드리는데 조금이라도 이바지할수 있게 해주십시오.생이 다할 때까지 막장에서 당을 받들고싶은것이 내 심정입니다.》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절절한 토로에 일군들은 더 만류하지 못하였다.
얼마후 온 탄광이 년간 석탄생산결속으로 끓던 어느날이였다.채탄2중대의 막장에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막장에 짐이 쏠려 생산을 중단하지 않으면 안될 정황이 조성되였던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아바이가 나섰다.
그의 성미를 잘 알고있는 초급일군들이 위험이 가셔지기 전에는 누구도 접근할수 없다고 밀막았다.
하지만 그는 그래도 한생 막장에서 살아온 자기가 더 낫지 않겠는가고 하면서 중대장을 끝내 설복하였다.
막장상태를 깐깐히 살펴본 그는 다년간 터득해온 경험과 기발한 착상으로 복구방도를 내놓아 제때에 위험개소를 퇴치할수 있게 하였다.
고마움을 금치 못해하는 중대장의 손을 맞잡고 그는 흔연히 웃음만 지었다.
비록 년로보장을 받았지만 항상 막장에 마음을 잇고 살아온 그였다.
하기에 자식들을 석탄전선을 지켜가는 굴진공, 로동보호감독원으로 내세웠으며 당 제9차대회가 진행된다는 소식을 들은 때부터는 하루도 번짐없이 새벽에도, 깊은 밤에도 막장길을 걸으며 석탄생산에 보탬을 주기 위해 애썼던것이다.
몇달전 탄광의 길영조청년돌격대의 당세포비서는 고마움을 금할수 없었다고 한다.명예당원이 된 후에도 생각은 늘 막장에 가있던 신학범아바이가 찾아왔기때문이였다.
당에서 석탄생산을 놓고 그토록 걱정하고있는데 집에서 그냥 쉬고있을수는 없다고 하면서 돌격대의 막장에서 일하겠다는 그의 청은 진정 고마왔다.하지만 건강이 념려됨을 어찌할수 없었다.
당세포비서의 속마음을 읽은 그는 몇해는 더 일할수 있다며 팔을 힘있게 흔들어보이고는 막장으로 향했다.
그때부터 그는 청춘의 열정으로 돌격대원들과 함께 일하며 수시로 제기되는 수리보수과제들을 도맡아 해제꼈을뿐 아니라 설비들의 예방보수도 제때에 진행하여 돌격대에서 없어서는 안될 보배로 떠받들리우고있다.
사실 그로 말하면 설비점검원으로 오래동안 일한 경력과 풍부한 경험으로 하여 각종 설비들에 정통한 고급기능공이였던것이다.
돌격대가 지난 시기 굴진경기때마다 우승의 영예를 놓치지 않고 새해에 들어선 지금에도 두배에 달하는 높은 굴진목표를 내세우고 과감한 전진기세를 발휘하고있는 밑바탕에는 석탄전선을 자신의 변함없는 혁명초소로 여기고 성실한 땀을 바쳐가는 이런 명예당원들의 순결한 당적량심이 초석처럼 깔려있다.
따뜻한 사랑의 품에 안아 값높은 삶을 꽃피워준 어머니당과 조국을 순결한 량심으로 받들어가고있는 로당원들중에는 자기가 한생을 바쳐 지켜온 채굴공정과에 다시 나와 스스로 《명예조사원》이 된 김방남아바이도 있다.
수십년간 채굴공정과 조사원으로 일해온 그는 탄광에서 일하는 기간 남다른 과학기술적안목으로 각이한 암석층의 지질구조를 해명하여 현행과 전망생산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년로보장을 받은 후에도 그의 생각은 항상 석탄생산에 가있었다.
그러던 지난해 10월 석탄증산의 절박성을 다시금 자각한 그는 당원으로 성장하고 대중속에서 인재로 존경받고 떠받들리우던 지나온 나날들을 감회깊이 돌이켜보았다.
조국의 전진에 자그마한 보탬이라도 될수 있다면 여생을 다 바치는것이 마땅한 도리가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그는 채굴공정과에 나왔으며 애국의 대하에 또다시 몸을 잠그었다.
비록 70살을 훨씬 넘긴 몸이지만 비상한 투지를 안고 수시로 막장을 드나들며 암석층을 조사하였고 때로는 과성원들의 기술수준을 높여주기 위해 자원하여 주 1차 기술전수도 해주었다.하여 지난해말과 새해에 들어와 서재갱과 강성갱의 일부 탄상구조를 새롭게 해명하여 많은 탄밭을 마련하는데 적극 기여하였다.
서재갱 3중대의 명예채탄공으로 자원하여 불같이 헌신하며 당에 대한 보답의 보무를 힘차게 내짚고있는 차순철아바이를 놓고 사람들은 찬사를 아끼지 않고있다.
제대되여온 아들들을 석탄전선에 세우고 년로보장을 받았어도 신입채탄공들의 기능수준을 높여주기 위해 진심을 바쳐가고있던 그가 앓아누웠을 때였다.
안해가 이제는 나이도 있는데 매일 출근하지 않는다고 누가 탓하겠는가고 나무람을 하자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당에서는 우리 탄광마을들을 개변시켜주기 위해 웅대한 구상을 펼치고있는데 어떻게든 보답해야 할게 아니요.》
그의 마음속에 간직된 당적량심은 바로 이렇듯 순결한것이였다.
년로한 몸이지만 석탄생산을 위해 스스로 막장길을 또다시 내짚은 개천탄광마을 명예당원들에 대한 감동깊은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명예당원, 이는 한생을 고스란히 조국의 부강번영에 바쳐온 당원들에게 우리 당이 안겨준 영예로운 칭호이다.
명예당원들이 편안히 여생을 보낸다고 하여 탓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이들은 당생활을 통하여 값높고 보람찬 삶을 누리던 나날과 그 시절의 당적자각, 의무감을 잊지 않고있으며 한가지 로력적선물이라도 더 마련하여 어머니당대회를 떳떳이 맞이할 일념을 안고 생산현장과 막장들에 달려나와 인생을 더욱 빛내이고있다.
만사람의 감동을 자아내는 이들의 참모습은 육체적생명에는 한계가 있을수 있어도 당적량심에는 절대로 로쇠가 있을수 없다는 비상한 자각, 불같은 애국열의 뚜렷한 표현이다.
자신과 가정보다 나라를 먼저 생각하고 당의 걱정을 함께 걸머지며 스스럼없이 자기의 응당한 본분으로 떠맡을줄 아는 당적량심의 소유자들, 참된 인간들이 초석처럼 떠받들고있기에 우리 당이 굳건하고 당에서 설계하고 확신성있게 내미는 전면적국가부흥의 휘황한 미래가 더욱 앞당겨지는것이다.
애국으로 삶을 빛내이는 당원의 량심에는 로쇠란 있을수 없다.
영원한 청춘기만이 있는것이다.
본사기자 주창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