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사의 넋과 정신을 안고 성장해간다
개천지구탄광련합기업소 무진대청년탄광에 탄원진출한 청년들에 대한 이야기
개천지구탄광련합기업소 무진대청년탄광에는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6차전원회의 결정을 높이 받들고 제일 어렵고 힘든 초소에 서겠다고 탄원진출한 개천시안의 수십명 청년들로 조직된 오중흡청년돌격대가 있다.
돌격대가 새로 조직된 2023년 2월부터 어느덧 3년이 흘렀다.그 나날 그들은 이곳 탄광으로 달려오기 전까지의 인생길에서는 도저히 남길수 없었던 뚜렷한 자욱을 수천척지하막장에 새겨오면서 참으로 몰라보게 성장하였다.
《모든 청년들은 언제나 그러했던것처럼 당원들과 함께 우리 혁명의 주류를 이루고 기세찬 투쟁으로 사회주의전취물을 더 크고 풍부히 하여야 하며 새것을 지향하고 변화를 재촉하며 낡은것을 밀어내고 진보를 가속하는데서 누구보다 용감하여야 합니다.》
오중흡청년돌격대 대장 하현일동무의 마음속에는 대원들과 함께 탄광에 처음 도착하여 한치한치 새 탄밭을 열어나갈 때의 가지가지의 추억들이 지금도 소중히 간직되여있다.
사실 탄원한 첫해가 제일 힘든 법이다.더우기 탄광에서 얼마간 일해본 경력이 있는 한두명의 사람들을 제외하고 나머지대원들은 모두 막장일이 처음이였다.
돌격대가 처음 자진하여 맡아나선 곳은 고난의 시기부터 지금까지 수십년세월 감탕과 버럭에 의해 거의 묻히다싶이 되여버린 구역이였다.
매일같이 허리치는 물속에서 감탕과 버럭을 실은 탄차들을 레루가 드러난 곳까지 수십m나 밀어내는 일을 하루에도 수백번 반복해야 했으니 그 어려움을 무슨 말로 다 표현하랴.
아글타글 애썼지만 첫달에는 침수복구과제조차 수행하지 못했었다.그러다나니 일부 대원들속에서는 지금껏 탄광에서 오래동안 일해온 탄부들도 못해낸것을 우리가 꽤 복구해낼수 있겠는가고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들려왔다.욕망만 앞세우며 너무 아름찬 일감을 맡은것은 아닐가 하고 대원들이 맥을 놓고있을 때 돌격대대장이 자기의 심정을 터놓았다.
우리 돌격대의 기발에 항일혁명투사 오중흡동지의 이름이 빛나고있다.여기로 떠나올 때 환송하던 숱한 사람들의 기대어린 눈빛들을 벌써 잊었는가.
대원들속에서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그러나 마음속에서는 자기를 이겨내기 위한 의지의 목소리가 울리고있었다.
침수나 붕락도 물론 두렵다.그러나 그보다 우리가 주저앉는것이 더 무서운것이다.일어서야 한다.투사들처럼 백절불굴하겠다고 다짐했다면, 탄원할 때의 맹세를 실천하려면 용감하게 일어서자.기대어린 눈빛들이 지켜본다.…
감탕과 버럭과의 싸움은 다시 시작되였다.
감탕물속에 너무 오래 들어가 일하다나니 온몸이 퉁퉁 부어올랐지만 누구도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작업장에서는 아예 교대라는 말이 없어졌다.첫 시련의 고비를 이겨내며 돌격대원들은 석수속에서 나누어먹는 주먹밥의 진미를 알았고 말뚝잠의 꿀맛을 알았으며 무엇부터 먼저 굳세여져야 하는가를 배웠다.
힘들것을 다 각오하고 시작한 길이겠지만 잠시나마 곤난앞에 마음이 흔들릴 때면 탄원의 그날에 다진 맹세를 되새겨보고 전세대들의 정신세계에 자신을 비추어보면서 애국의 길을 변함없이 끝까지 걸어가야 한다고 하신
간고했던 그 나날 그들은 탄원의 날에 다진 맹세를
끝끝내 그들은 그해 10월 1일까지 청년갱의 맡겨진 구역에 대한 침수복구과제를 결속하고 석탄증산의 돌파구를 열어놓았다.
그때를 추억하며 돌격대원들 누구나 말한다.
날과 달이 흐를수록 청년돌격대원들의 투쟁은 더욱 고조되였다.
갱벽에서 물주머니가 터지면 온몸을 내대며 막아나섰고 압축기가 고장나면 그것을 수리하는데 드는 시간마저 너무 아까와 그사이에도 수굴로 전진을 멈추지 않았다.
이렇게 모든 난관을 극복해나가는 나날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날 나어린 한 대원은 힘겨움을 이기지 못하고 부모가 앓는다는 구실을 내걸고 집으로 갔다.그러나 그가 돌격대를 떠나게 된 진짜리유를 알게 된 그의 부모는 펄쩍 뛰며 자식을 엄하게 질책하였다.
탄원증서는 돌격대숙소에 두고 따끈한 구들목을 찾아 집에 오기가 부끄럽지 않던가고, 너보다 더 약해보이는 대원들도 견디여내는데 왜 너만 흔들리는가고, 이것이 나라앞에 죄를 짓는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채찍질하는 부모의 모진 꾸지람을 뼈아프게 되새기며 그는 다시 돌격대로 향했다.
돌아오는 길로 숙소앞에 날리는 오중흡청년돌격대의 붉은 기발을 바라보며 그 대원은 오래도록 서있었다.
탄원의 날에 다진 맹세를 지켜 다시는 이 기발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마음다지는 그의 눈에서는 뜨거운것이 흘러내리고있었다.
그때로부터 며칠후 어느한 막장에 있는 배수로가 막혀 물이 운반선로로 흘러넘치는것을 보고 스스로 남아 버럭들을 깨끗이 처리한 그의 소행은 소대원들을 감동시켰다.
항일혁명투사의 고귀한 이름이 빛나는 돌격대의 붉은기는, 스스로 자기를 다잡는 마음가짐은 이렇게 락오자가 될번했던 또 한명을 용감한 애국청년으로 다시 태여나게 해주었다.
난관을 극복하고 마음속동요를 스스로 이겨내며 정신적성장의 키를 자래울수록 애국의 의지도 더욱 굳세여지는 법이다.
지난해 12월말 교대를 마치고 집에 들어선 돌격대참모장 김진혁동무는 아직 돌도 채 되지 못한 아들애의 머리맡에 놓여있는 젖가루봉지를 보고 생각이 깊어졌다.
나자신도 새 교복과 학용품을 공급받으며 자랐고 나라의 은덕이 저 어린것에게도 계속 와닿고있는 현실을 내가 왜 여태 범상하게 여겼던가.어려운 때일수록 더 뜨겁게 베풀어지는 당의 사랑을 받는데 너무도 습관되였기때문이다.앞으로는 아들애의 몫까지 합쳐 두배의 석탄을 캐자.
그래서 그는 다음날부터 매일 한교대더하기를 하기 시작했다.그에게서 그 사연을 알게 된 작업조성원들도 합세해나섰다.
그게 어디 참모장의 집에만 있는 일인가고, 나도 아들애몫까지 더 하겠다고 채탄중대장 김충일동무가 따라나섰고 다음교대성원들도 호응해나섰다.그들속에는 얼마전에 첫 자식을 본 사람들도 있었고 아직은 처녀, 총각이지만 새삼스럽게 가슴이 뭉클해진 동무들도 있었다.
결국 매일 교대마다 한교대더하기는 돌격대의 고정일과로 되고말았다.
운반공 장미동무의 《충성의 기록장》에는 이런 기록도 있다.
《소대장동무와 고은혁동무는 암만해도 이미 실어보낸 석탄량이 골숨한것같으니 한 탄차를 더 싣겠다고 하면서 막장에 남았다.우리도 그들을 도왔다.난 왜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을가.나도 그들의 모범을 본받아 어렵고 힘들 때일수록 조국을 위한 짐을 스스로 떠메는 참된 인간이 되겠다.》
석탄이 탈 때 나는 열이 아무리 뜨겁다 한들 청년탄부들의 이런 애국열, 투쟁열에야 어찌 비길수 있으랴.
올해 1월 점점 고조되는 증산의 열기로 하여 막장안에서는 돌격대원들이 미처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겨났다.
채탄속도에 비해 운반속도가 미처 따라서지 못했던것이다.
그때문에 걱정하던 채탄공 현철우동무가 갑자기 바람처럼 어디론가 급히 달려갔다.그런데 인차 돌아올줄 알았던 그가 한참이나 시간이 흘러서야 여러대의 탄차를 끌고 돌격대원들앞에 나타났다.
모두가 의아해하였지만 그가 왜 늦게 나타났는지는 썩 후에야 알게 되였다.
사실 그는 탄차를 빌리러 신흥갱과 청년갱에 갔다가 그것을 그냥 끌고올수가 없어서 그곳 막장의 버럭을 갱밖에 실어다주고 동발목까지 더 싣고온것이였다.
돌격대의 실적만이 아니라 탄광전체의 실적에 더 마음을 쓰며 다른 갱 탄부들의 버럭처리를 도와주고서야 빈 탄차들을 끌어온 현철우동무의 마음은 얼마나 웅심깊은것인가.
집단의 고충을 자기의것으로 받아들일줄 알고 선뜻 한몸을 내대여 풀어나갈줄 아는 그 마음이 자란것이야말로 몇십, 몇백t의 석탄을 캐낸것보다, 몇천, 몇만m의 굴진을 한것보다 더 소중하고 값비싼것이다.
탄원지에서의 3년, 그 나날에 청년돌격대원들은 당결정관철을 위한 과감한 투쟁과정에 고난을 이겨낼줄 알고 자기를 수양할줄 알며 혁신할줄 알고 집단주의로 애국의 더 큰 자욱을 내짚을줄 아는 그런 용감한 청년투사들로 성장하였다.
지금 이 시각도 미더운 청년돌격대원들은 당 제9차대회를 향해 나가는 오늘의 진군길에서 헌신의 자욱을 더욱 뚜렷하게 새겨가고있다.
본사기자 백성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