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위훈의 원천
대동강구역 옥류3동 김성군동무의 가정에서 들은 이야기
《소박하고 평범했던 인간들이 자기의것을 지켜 죽음도 불사하고 나설 때 어떤 놀라운 기적이 창조되는가를 똑똑히 보여준것이 우리의
보병총과 원자탄의 대결이라고도 할수 있는 지난 조국해방전쟁에서 우리 인민은 세계《최강》을 자랑하는 미제를 타승하고 조국의 존엄과 자주권을 영예롭게 수호하였다.
과연 무엇이 이 나라의 평범한 사람들로 하여금 포악한 제국주의강적을 때려부시고
얼마전 우리가 대동강구역 옥류3동에서 살고있는 김성군동무의 가정에서 들은 이야기에도 그에 대한 대답이 들어있었다.
김성군동무의
당시 제8보병사단에서 군관으로 복무하고있던 그는 포로당한 미군비행사를 구출하기 위해 날아든 직승기안에 재빨리 뛰여올라 적들을 제압하였다.뒤늦게야 직승기가 나포된 사실을 알게 된 적들은 부랴부랴 전투기편대를 들이밀었다.그러나 우리의 비행기사냥군조 전투원들은 맹렬한 화력으로 적비행기 5대를 격추시켰다.
그날은 1952년 2월 8일, 조선인민군이 창건된 때로부터 4년이 되는 뜻깊은 날이였다.
잠시후
그날 적직승기나포작전에 참가했던 김필원동지를 만나시여 전투과정을 상세하게 보고받으신
천리혜안의 예지와 뛰여난 지략을 지니시고 적직승기나포작전을 승리에로 이끌어주시고도 모든 영광을 전사들에게 돌려주시는
하다면 전화의 나날 빛나는 위훈을 세우고
그는 1920년대에 길주군의 빈곤한 농민가정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가정에는 천대와 멸시, 가난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하여 그는 살길을 찾아 부모와 함께 머나먼 이국땅으로 떠나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러나 그를 기다린것은 이전과 다름없는 비참한 생활이였다.나라없는 백성의 운명은 그 어디에 가도 달리될수 없었던것이다.
그가 한살두살 커가자 부모는 어떻게 해서나 아들을 공부시키기 위해 궂은일, 마른일 가리지 않고 마소처럼 일했다.그렇게 한푼두푼 모은 돈으로 학교에 입학시켰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수업료를 낼수 없어 한주일이 멀다 하게 학교에서 쫓겨나군 했던것이다.
더는 공부할수 없었던 그는 뼈도 채 굳기 전에 소년로동을 시작하였다.
해방전 그의 생활은 이처럼 고통과 불행의 련속이였다.
하기에 해방후 공화국의 품에서 참된 삶과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자기의 실체험을 통하여 절감한 그는 전화의 나날 소중한 모든것을 짓밟으려고 덤벼드는 원쑤들에게 그토록 무자비했고 적들과의 판가리결전마다에서 언제나 용맹떨칠수 있었다.
다시는 조국을 잃지 않기 위해, 다시는 노예로 살지 않기 위해!
전승세대의 가슴마다에는 이렇듯 절대로 빼앗길수 없고 잃을수 없는 귀중한 조국이 삶의 전부로 소중히 자리잡고있었으며 조국을 수호하기 위한 성스러운 싸움에서 자기의 계급적본분을 다해갈 억척같은 신념이 굳건히 간직되여있었다.
바로 이것이 준엄한 전화의 나날 인민군용사들이 떨친 빛나는 위훈의 밑뿌리였고
김필원동지도 조국에 대한 열렬한 사랑, 투철한 계급적자각이 어떤 거대한 힘을 낳는가를 력사앞에 똑똑히 보여준 전승세대들중의 한사람이였다.
이윽고 김성군동무의 집문을 나서는 우리의 귀전에 그의
목숨보다 귀중한 공화국을 굳건히 지키고 빛내여가라!
본사기자 신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