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일터는 위훈창조의 터전
《애국심은 자기 부모처자에 대한 사랑, 자기 고향마을과 일터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싹트게 되며 그것이 나아가서 조국과 인민에 대한 사랑으로 자라나게 됩니다.》
최근시기 국가과학원 중앙광업연구소는 나라의 광업부문의 발전을 촉진시키는데서 제기되는 과학기술적문제들을 성과적으로 풀어나가는 관록있는 연구단위로 인정받고있다.
그러나 10여년전까지만 하여도 연구소의 실태는 지금과 같지 못하였다.
물질기술적토대가 빈약한것으로 하여 초보적인 사업조건, 생활조건도 보장되지 못하고있었으며 연구사업에서도 이렇다할 성과가 없이 몇년째 부진상태에서 헤여나오지 못하고있었다.
연구소의 실태보다 더 심각한것은 사람들이 주저앉은것이였다.연구소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제살궁리만 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며 지어 일부 종업원들은 일이 잘되는 단위들을 넘겨다보며 연구소를 떠날 생각까지 하고있었다.
일터에 대한 사랑이 없는 종업원에게서 주인구실을 기대한다는것은 씨앗이 없는 토양에서 풍작을 바라는것과 마찬가지이다.모든 종업원들에게 나의 일터는 내가 지켜선 조국이라는 자각을 심어주는것, 이것이야말로 그들모두를 일터의 참된 주인으로, 왕성한 일욕심을 지닌 혁신자로 되게 하는 근본방도였다.
새로 온 초급당일군의 발기에 의하여 연구소의 면모를 일신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이 토의되였으며 이 과정을 통하여 연구사들과 종업원들의 사상정신상태는 물론 일본새에서도 근본적인 혁신을 가져오기 위한 사업이 진행되였다.
다음날부터 연구소를 새롭게 일신시키기 위한 본격적인 건설사업이 진행되였으며 그 앞장에는 일군들이 서있었다.
발이 닳도록 뛰여다니며 건설에 필요한 자재를 확보하고 눈에 피발이 서고 입술이 부르트도록 밤을 지새우며 건설장을 떠나지 않는 일군들의 모습은 모두의 마음속에 일터에 대한 애착의 불씨를 심어주었다.
차츰 연구소는 달라지기 시작했다.연구사들과 종업원들의 사상정신상태도 새롭게 변모되였다.
연구사들은 밤을 지새우면서 연구사업에 열중하였고 이전같으면 퇴근시간이 되기 바쁘게 집으로 갈 준비를 서두르던 종업원들도 건설장에 스스로 달려와 땀을 쏟았다.
종업원들속에서 늘 나의 일터, 우리 연구소라는 말이 울려나왔고 단위앞에 어떤 어려운 과업이 제기되여도 누구나 두팔을 걷고 달라붙었다.
문화후생시설건설이 한창일 때에는 모두가 밤낮이 따로없이 헌신하였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열정적이였는지 주변에서 사는 주민들도 그들의 열띤 작업모습에 감동되여 저저마다 지원물자를 가지고 찾아오군 하였다.
날이 감에 따라 그들은 자기들의 일터와 하는 일에 대한 긍지를 다시금 절감하였고 새로운 활력을 안고 분발해나섰다.
이 나날에 연구소에서는 여러 차례에 걸쳐 가치있는 과학연구성과들을 내놓아 당에 기쁨을 드리게 되였으며 종업원들속에서도 사회와 집단을 위한 좋은 일을 스스로 찾아하는것이 일터를 지배하는 하나의 흐름으로 되였다.
연구소의 혁신적성과와 서로 돕고 이끄는 아름다운 집단주의적미풍, 바로 그것은 일터에 대한 열렬한 애착에 그 뿌리를 두고있는것이였다.
보람찬 하루가 시작되고 한생이 흘러가는 혁명초소에 대한 이곳 연구사들과 종업원들의 정과 사랑은 나날이 더욱 깊어가고있다.그 뜨거운 정과 사랑을 안고 지금 이들은 보다 큰 성과를 향하여 힘찬 전진의 보폭을 내짚고있다.
나의 일터, 정녕 그것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애국심을 자래우고 참다운 삶을 꽃피우고 빛내일수 있게 하는 위훈의 터전이다.
이것이 바로 중앙광업연구소의 모든 연구사들과 종업원들의 가슴속에 자리잡고있는 일터애이다.
김성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