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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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13일 금요일 4면

뜻깊은 3.8절날 영광의 단상에 오른 녀성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기쁠 때나 어려울 때나 오직 조선로동당을 자기 운명의 전부로 굳게 믿고 따르며 사회주의조국에 승리와 영광을 더해주기 위해 무한한 헌신의 노력을 다 바쳐가는 우리 녀성들과 녀맹원들의 고결한 정신세계와 굴함없는 투쟁은 우리 당과 인민의 커다란 자랑으로 되고있습니다.》

지난 3월 8일 평양체육관에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한자리에 모시고 3.8국제부녀절기념공연이 성황리에 진행되였다.

우리 녀성들에 대한 다함없는 사랑과 존경, 뜨거운 축하의 감정이 세차게 굽이치는 이 뜻깊은 공연장소에서 류달리 만사람의 시선을 모은 녀성들이 있었다.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관람석에 나오시여 따뜻이 손잡아주시고 고무격려해주신 로력혁신자, 공로자들이다.

그들은 누구들이며 어떻게 되여 누구나 부러워하는 영광의 단상에 오르게 되였는가.


조국의 번영을 위해 지혜와 열정을 다 바치며


뜻깊은 3.8국제부녀절에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만나뵈온 김일성종합대학 첨단기술개발원 나노기술연구소 부원 박사 고선영동무의 마음속에는 하나의 지향이 간직되여있다.

과학자로서 당이 제일 고심하고 조국이 절박하게 해결을 기다리는 문제를 자기가 솔선 맡아 풀려는것이다.

그는 최대비상방역기간 방역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데서 큰 의의를 가지는 연구과제를 맡아 성공시키고 당에 기쁨을 드리였다.삼광축산농장건설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때에는 온 한해 집을 떠나 현지에서 살다싶이하였다.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새시대 사회주의농촌건설과 축산업발전의 새로운 본보기로 일떠선 삼광축산농장을 커다란 만족속에 돌아보신 그날 현대적인 시설모재배장에서 그이께 해설을 하여드린 녀성과학자가 바로 43살의 고선영동무이다.

그도 녀성이고 자식을 가진 어머니이다.남자들도 헤치기 어려운 과학탐구의 길에서 가정을 위해 언제한번 살뜰한 정을 기울이지 못하는 자신을 속으로 탓한적도 없지 않았다.올해에도 그는 연구지에서 하나밖에 없는 딸이 대학입학시험을 친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연구사업으로 드바삐 지내는 어머니를 항상 리해해주던 딸에게 이번만이라도 따뜻한 정을 부어주고싶었다.하지만 그는 끝내 평양으로 가던 발걸음을 되돌리였다.그에게는 연구과제수행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했던것이다.

힘들고 지칠 때마다 그는 받아안은 사랑과 은정을 되새기며 힘과 용기를 가다듬군 한다.움터나는 재능의 싹을 소중히 헤아려 주체과학교육의 최고전당 김일성종합대학에서 탐구의 나래를 활짝 펴게 해주고 30대의 녀성박사로 내세워준 고마운 조국을 위해 지식과 열정을 아낌없이 다 바칠 보답의 일념이 매일, 매 시각 그의 가슴속에 끓고있다.하기에 그는 최상최대의 영광을 받아안은 3.8국제부녀절의 다음날 새벽에도 자기를 축하해주기 위해 기다리는 집단과 동지들이 있는 대학이 아니라 연구지로 조용히 떠나갔다.

창조적지혜와 열정을 다 바치며 당과 조국을 충직하게 받들어가는데서 삶의 보람을 찾는 우리 녀성들의 고결한 애국충성은 혁명의 전진속도를 배가해주는 위력한 원동력이다.

3.8국제부녀절기념공연무대에서 노래 《우리 조선 만세》, 《어머니조선아》가 울려퍼질 때 김형직사범대학 학부장 교수 박사 최남순동무는 끓어오르는 격정으로 가슴설레이였다.그는 우리 인민들속에서 당에 대한 고마움의 찬가로 널리 불리워지는 노래 《어머니를 사랑합니다》의 가사를 쓴 녀성이다.

만년대계의 애국사업인 교육사업에 온넋과 정열을 깡그리 다 바쳐가는 최남순동무의 왕성한 일욕심과 창조정신은 끝이 없다.언제인가 그가 가상현실기술에 기초한 새 교수방법을 창조할것을 결심하자 찬성보다 반대의향을 표시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자연과학분야에서나 통용되는 가상현실기술을 사회과학분야의 교수에 활용하겠다는것자체를 불가능한것으로 여기고있었던것이다.그러나 새롭고 대담하지 못한 창조는 나라의 륭성과 발전에 아무런 보탬도 줄수 없다는것이 최남순동무의 일관한 견해였다.

주체사상탑과 그 주변의 가상환경을 조성할것을 결심한 그는 조국앞에 완벽한 창조물을 내놓기 위해 고심어린 탐구를 거듭하였다.다각적이고 다양한 체험으로 학생들의 인식적효과를 높여주기 위해 하루에도 대동강반을 몇번이나 오고갔으며 시공간적으로 접촉할수 없는 대상들도 모형화하여 방불하게 현시하기 위해 끊임없는 착상으로 한밤을 지새우기도 했다.끝끝내 그는 가상현실기술을 리용한 새 교수방법을 창조함으로써 당의 교육정책관철에 큰 기여를 하였다.

끊임없이 새것을 지향하는 최남순동무에게 있어서 가시적인 성과나 일시적인 전진은 만족과 답보의 근거로 될수 없었다.

설득력있고 론리정연한 그의 강의는 언제나 학생들속에서 인기가 높다.그런가하면 그는 3명의 박사와 20여명의 석사를 키워낸 실력가이기도 하다.하지만 최남순동무는 늘 성과에서도 결함을, 경험에서도 교훈을 찾는다.

몇해전 그는 앞으로 교단에 서야 할 사범대학학생들에게는 모든 형태의 문학작품창작의 기초와 원리를 깊이 인식시키는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이것을 해결하자면 새로운 학과목을 개척해야 했고 또 그에 필요한 교재들도 집필해야 하는 등 여러가지 문제가 나섰다.최남순동무는 이 모든것을 나라의 교육발전을 위해 자기가 맡아 수행해야 할 과업으로 받아들이였다.교수사업으로 드바쁜 속에서도 《문학작품착상론》과 《작가기교론》 등 새 교재들과 강의안을 집필하였고 그것을 교수활동에 능숙하게 구현하였다.

과중한 정신육체적부담을 이겨내며 나라의 교육발전에 이바지하는 지적재부들을 부단히 창조해올수 있은 비결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나라의 백년대계와 직결된 성스러운 교단에 선 그때부터 늘 자신이 교육자이면서도 창작가로, 일군인 동시에 과학자로 되여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러다나니 일을 하고 또 해도 무엇인가 부족한것만 같다.

이것이 어찌 최남순동무 한사람의 심정만이랴.

잊지 못할 3.8국제부녀절에 꿈만 같은 영광을 받아안은 녀성들모두가 아니 이 나라의 수많은 녀성들이 간직한 식을줄 모르는 열정과 비상한 창조력에는 조국을 받드는 깨끗한 충심이 초석처럼 고여있었다.

우리는 그 소중한 지향을 조선혁명박물관 강사 허정순동무가 걸어온 인생길에서도 찾아볼수 있었다.

40여년간 우리 혁명의 명맥을 굳건히 지켜가는 그에게는 남다른 긍지와 자부가 있다.조선혁명박물관 일군들과 강사들을 핵심중의 핵심으로 내세워주는 우리 당의 크나큰 믿음이다.그의 모든 사업과 생활은 바로 그 핵심이라는 고귀한 부름앞에 떳떳하기 위한 노력의 련속이였다.

이동강의에 필요한 다매체편집물제작사업이 처음 시작되였을 때 그는 이미 쉰살을 바라보는 나이였다.그러한 허정순동무가 다매체편집물제작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밤잠도 잊고 아글타글 노력하고있는것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사실 공훈사적강사로서 영광스러운 혁명전통을 길이 빛내이는데 기여한 지난날의 헌신적인 노력만으로도 그는 집단과 동지들의 존경을 받았다.하지만 지난날의 공적보다도 오늘날의 분투와 실천이 더 중요하다는 고결한 인생관, 변함없는 충성의 마음을 안고 허정순동무는 끝끝내 40여건의 다매체편집물을 제작해냈다.그후에도 그는 절세위인들의 위대성을 널리 선전하는 많은 소론문들을 집필하고 신입강사들을 맡아 훌륭히 키웠다.

자기들의 창조적지혜로, 드높은 열정으로 조국의 재부를 늘이고 우리 국가의 존엄을 빛내이는 이런 녀성혁명가들속에는 력기협회 서기장 김춘희동무도 있다.

김춘희동무는 나라의 력기발전을 위해 늘 새로운 경기전술과 훈련방법들을 모색하며 탐구의 낮과 밤을 이어가고있다.하지만 모든 사색과 실천활동에서 그가 세계적인 발전추세나 선수들의 육체기술적능력에 앞서 중시하는 문제가 있다.

몇해전 어느날 당시 당초급일군으로 사업하던 김춘희동무는 류다른 경쟁을 제기하였다.매 선수들이 훈련의 짬시간마다 갖가지 꽃관목가꾸는 경쟁을 조직하며 그 순위를 정하겠다는 말에 처음에는 모두가 영문을 몰라하였다.단 1분이라도 더 훈련에 집중해야 하지 않겠는가고 하는 사람들에게 김춘희동무는 이렇게 말했다.

이 나라의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도 다 품어안고 소중히 가꾸려는 마음이 없이 어떻게 세계의 하늘가에 우리의 국기를 휘날리겠는가.우승의 금메달도, 빛나는 경기성과도 다 애국심에서 시작된다.

그후 선수들은 담당한 꽃관목들을 정성담아 가꾸며 자신들이 평소에 그리도 외워왔던 조국의 영예란 말의 의미를 다시금 깊이 새겨안았다.이렇게 성장한 선수들속에서 세계적인 력기강자들이 련이어 배출되였다.

조국의 영예를 떨치고 이 땅의 재부를 늘여나가는 우리 녀성들의 창조의 힘, 열정의 힘은 이렇듯 열렬한 애국심에 그 시원을 두고있다.한 가정의 행복보다 나라의 번영과 존엄을 더 소중히 여기고 그를 위해 모든것을 다 바치는것을 가장 값높은 보람으로 여기는 이런 애국자들을 조국과 인민은 녀성혁명가라는 값높은 부름으로 시대앞에 내세워주는것이다.


한순간, 한시절이 아니라 한생을 변함없이


3.8국제부녀절기념공연이 성황리에 진행된 소식이 신문과 TV화면을 통하여 온 나라에 널리 전해지자 김정숙평양방직공장 타올직장 직장장 문강순동무는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축하의 인사를 받았다.

영광의 단상에 오른 그에게 열렬한 축하의 인사를 보내온 사람들가운데는 가족친척들과 한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물론 방직부문과는 인연이 없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많다.경공업부문의 미더운 새세대 선구자로 소문났던 어제날의 직포공,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새로 일떠선 창전거리를 찾으시여 꿈만 같은 영광을 안겨주시였던 녀성로력영웅을 누구인들 모르겠는가.

하지만 문강순동무가 그렇듯 크나큰 영광을 받아안고 만사람의 진심어린 축하와 뜨거운 존경을 받을수 있은것은 결코 그가 온 나라에 소문난 공로자이기때문만이 아니다.

지금도 문강순영웅과 함께 일하는 일군들과 종업원들은 그를 두고 일밖에 모르는 사람이라고 한결같이 말하군 한다.당의 크나큰 신임에 의하여 한개 직장을 책임진 일군이 된 오늘까지도 그는 직포공시절처럼 충성과 애국의 순회길을 줄기차게 이어가고있다.

지금으로부터 5년전 9월 공화국창건 73돐 경축행사에 참가하였던 그는 당중앙위원회뜨락에서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한자리에 모시고 대를 두고 길이 전할 사랑의 기념사진을 찍는 크나큰 영광을 받아안게 되였다.그로부터 얼마후 타올직장 직장장으로 사업하게 된 그는 직장의 모든 생산공정에 정통하기 위해 낮에 밤을 이어 노력하였다.직기의 동작원리는 물론 수리방법에 이르기까지 정통하기 위해 이악하게 노력하느라 그의 눈에는 피발이 서고 입술은 부르트기까지 하였다.

한번은 나어린 한 기능공이 직장장동지야 영웅이고 또 일군인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가고 물은적이 있었다.그때 문강순동무는 직장장의 직무는 결코 벼슬자리가 아니라고, 당에서 나에게 더 많은 일을 하라고 안겨준 믿음이라고 이야기하였다.

당에서 더 큰 영광을 안겨줄수록, 직무가 오를수록 무한히 성실해야 한다는것이 그의 지론이다.이런 숭고한 인생관을 안고 사는 그였기에 이신작칙의 모범으로 직장을 해마다 년간 인민경제계획을 넘쳐 수행하는 단위로 만들고 또다시 영광의 단상에 떳떳이 오를수 있었다.

잠간 피였다가 지는 꽃은 진정으로 아름다운 꽃이 아니다.오래 피여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는 향기그윽한 꽃이야말로 진짜 아름다운 꽃이라고 할수 있는것처럼 참된 인생은 순간의 위훈이 아니라 영원한 위훈으로 빛난다.

우리는 이것을 평양시려객운수종합기업소 문수축전지뻐스사업소 운수대대 운전사 정순녀동무의 값높은 인생을 놓고도 가슴깊이 새겨안게 된다.

그는 지금으로부터 19년전에 공훈자동차운전사칭호를 수여받았다.하지만 그는 예순살이 지난 오늘까지도 당이 맡겨준 운전대를 놓지 않고 인민을 위한 복무의 길을 변함없이 이어가고있다.

년로보장을 받아야 할 나이에 젊은 남성들도 헐치 않아하는 려객운수봉사를 맡아 진행한다는것이 말처럼 헐한 일이 아니다.명절날, 일요일이 따로 없는것은 물론 매일 이른새벽에 집을 나서고 밤이 깊어서야 퇴근길에 올라야 하는것이 려객운수봉사자들의 생활이다.그리고 삼복철은 물론 대소한의 추운 날씨에도 차정비를 위해 땀을 흘려야 한다.이렇듯 1년365일을 하루와 같이 달려야 하는 운행길을 정순녀동무는 오늘도 꿋꿋이 이어가고있다.이런 그에게 어떤 사람들은 영웅칭호를 주어도 아깝지 않다고 이야기한다.그때마다 정순녀녀성은 이렇게 말하군 한다.

내가 그 무슨 명예를 바라고 이길을 걸었다면 공훈자동차운전사칭호를 수여받은 그때에 벌써 나의 복무의 길은 끝났을것이다.나라에서 별로 한 일도 없는 나를 이렇게 높이 내세워주었는데 하늘같은 그 사랑, 그 믿음에 숨이 지는 순간까지 보답해야 인간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당에 대한 의리를 지켜 한생토록 변함없이 운행길을 달려온 그를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온 나라가 다 알도록 내세워주시였다.영광의 최절정에서 빛을 뿌리는 그의 삶을 보며 우리는 생각한다.

아름다운 인생이란 무엇이겠는가.그것은 바로 량심앞에 한점 부끄러움도 없는 한생인것이다.

선교구역상하수도관리소 뽐프운전공 리명화동무도 바로 그렇게 살아왔기에 인생의 값높은 영광을 받아안을수 있었다.

담당한 주민세대들에 물공급을 중단없이 진행해야 하는 뽐프운전공의 생활도 앞에서 언급한 려객운수봉사자들의 생활과 별반 차이가 없다.밤낮으로 애써 노력하다가도 불가피한 일로 어쩌다 한두번 물공급이 중단되게 되면 오히려 사람들의 말밥에 오르기가 십상이였다.그럴 때면 리명화동무는 손맥이 탁 풀려 나는 왜 하많은 직업가운데서 하필 뽐프운전공을 택했을가 하고 후회한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더우기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어머니의 직업을 리해하지 못하고 투정질할 때면 정말 가슴이 아팠다.한번은 초급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야영을 가게 된적이 있었다.그런데 야영준비를 잘해주겠다고 아들과 철석같이 한 약속을 어머니인 리명화동무자신이 어기게 될줄이야.

그날 고장난 뽐프를 수리하느라 리명화동무는 날이 어두워지는줄도 모르고있었던것이다.그러다가 불현듯 갈마드는 륙감에 뒤를 돌아보니 아들이 문밖에 볼이 부어 서있는것이 아닌가.

내 어머니가 옳은가고, 학급동무들모두가 자기 어머니들과 함께 야영준비를 하느라 들썩이는데 왜 나 혼자만 외롭게 빈방을 지켜야 하는가고 서러움을 터놓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리명화동무의 심정이 과연 어떠했겠는가.

여러모로 힘겨운 뽐프운전공일을 계속 하겠는가 아니면 자식과 가정을 위해 다른 길을 찾겠는가.

그날 리명화동무는 밤새껏 모대겼다.만약 그때 리명화동무가 자기 가정 하나만을 위한 선택을 했더라면 량심의 가책으로 하여 그의 삶은 후회로 가득찬 인생으로 되고말았을것이며 오늘과 같은 영광을 받아안지 못했을것이다.

3.8국제부녀절기념공연과 관련한 보도를 TV로 시청하던 만경대구역 칠골남새농장 농산제3작업반 반원들은 깜짝 놀랐다.관람석에 나오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자기들과 한작업반에서 일하는 박계심동무의 험한 손도 뜨겁게 잡아주시는것이 아닌가.

그 모습을 눈물속에 보고 또 보며 작업반원들 누구나 생각했다.평범한 농장원이 그렇듯 크나큰 영광을 받아안기까지 걸어온 쉽지 않은 인생길에 대하여.

박계심동무는 지난 10여년간 모판관리공으로 성실히 일하면서 작업반농사에 크게 이바지하였다.모판관리에는 애기어머니의 마음과 같은 지극한 정성이 필요하다.날씨가 더우면 벼모가 피해를 입지 않게 신경을 써야 하고 또 날이 저물면 모판에 찬바람이 스며들지 못하게 비닐박막을 꼭꼭 여며주어야 한다.이렇게 모판관리에서 중요한 기술적요구들을 철저히 지키며 벼모들을 정성껏 관리하느라면 언제한번 가족들과 함께 식사 한끼 단란하게 할새가 없다.하지만 박계심동무는 그렇듯 어렵고 힘든 모판관리를 책임적으로 해오고있다.

그도 농장원이기 전에 한 가정의 주부이고 안해이며 어머니이다.그라고 왜 명절날 가족들과 함께 즐겁게 쉬고싶은 생각이 단 한번이라도 없었겠는가.

그때마다 그의 뇌리에 갈마든것은 풍요한 가을은 봄날의 벼모판에서부터 시작되며 자신이야말로 다수확의 첫 관문을 지켜선 전초병이라는 자각이였다.하기에 그는 한포기도 허실함이 없이 벼모들을 충실하게 키우는것을 농장원의 가장 깨끗한 량심으로, 더없는 애국으로 여기였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뜻깊은 3.8국제부녀절에 뜨겁게 손잡아주신 한명한명의 녀성들은 이렇듯 순결하고 대바르며 강한 조선녀성의 전형들이다.바치는 지혜와 열정만큼 조국의 재부와 영예가 빛난다는 자각을 안고 묵묵히 애국의 한길을 걷는 녀성들, 어렵고 힘든 일터에서 한두해가 아니라 오랜 세월 로력혁신자로 삶을 빛내이는 불같은 인간들이다.

이런 녀성들이 많기에 우리 사회가 아름답고 조국의 존엄과 지위가 더욱 높아지며 혁명의 미래가 무궁창창한것이다.

하기에 조국을 위하여, 혁명을 위하여, 미래를 위하여 자신을 깡그리 바치고 그길에서 인생의 보람을 느끼는 참된 애국자들에게 우리는 다시한번 열렬한 축하의 인사를 삼가 드린다.

본사기자 정영철

본사기자 심학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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