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별거리에 보금자리를 편 해외군사작전 참전렬사들의 유가족들을 만나보고
새별거리!
이 거리는 일떠서기 전부터 온 나라 아니 세계가 알고있었다.
조국의 존엄과 명예를 지키기 위하여 푸르른 젊음과 고귀한 생을 아낌없이 바친 참전렬사들의 사랑하는 유가족들의 보금자리인 이곳에 얼마나 가슴뜨거운 만단사연들이 고여있는것인가.
《새별거리는 우리 세대의 영예이며 또한 평양의 자랑, 우리 국가의 자랑입니다.》
우리 당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나날이 젊어지는 평양에서 새집들이는 해마다 있다.하지만 그때마다 느끼군 하던 모든것과는 다른 감정이 새별거리에 흐르고있다.이 땅에서의 모든 새집들이가 안겨주는 환희에 앞서 이름못할 숭엄함과 경건함으로 새 보금자리의 주인들도, 그들을 축하해주는 사람들도 가슴뭉클 젖어들게 하는 새별거리의 새집들이이다.
정녕 새별거리는 조국의 장한 아들들, 영웅들에 대한 당과 인민의 영원한 감사와 경의심의 응결체이고 이곳에서의 새집들이이야기들은
당중앙위원회 명의로 된 살림집리용허가증
새별거리에서 우리가 제일먼저 찾은 집은 화성구역 새별동 42인민반 5층 1호였다.바로 이 집에 뜻깊은 준공식날
60살을 가까이하는 렬사의 안해 리향란녀성과
마음이 숭엄해졌다.허가증에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라는 글발이 빛나고있었던것이다.
살림집리용허가증은 인민생활을 책임진 호주인 해당 지역 인민정권기관의 명의로 발급되는것이 상례이다.그러나 새별거리의 살림집리용허가증은 당중앙위원회의 명의로 되여있으니 여기에는 해외군사작전 참전렬사들과 그 유가족들에 대한 우리 당의 사랑과 믿음이 뜨겁게 어리여있었다.
리향란녀성은
그러고보니 정말 살림집리용허가증에 《허가증발급번호 제1호》라고 씌여져있었다.렬사의 맏아들인 김진혁동무도 지난해 10월
이 세상 모든 영광과 행복을 자기 가정이 다 독차지한것같아, 그 심정을
리향란녀성만이 아닌 참전렬사들의 유가족모두의 절절한 심정이 담겨져있는 그 말을 마음속으로 되새겨보며 우리는 5층 2호집에 들렸다.덕천시에서 살던 공화국영웅 어태철렬사의 어머니 박년식로인은
어태철렬사가 군복을 입은 후부터는 늘 집을 떠나 살았기때문에 로인은 아들과 함께 지낸 날이 그리 많지 못했다고 한다.그것이 늘 마음에 걸렸던 로인이였다.그런데
박년식로인은 새 살림집에 오니
세개의 살림방과 부엌, 세면장과 앞이 탁 트인 베란다 등으로 이루어진 집은 참으로 훌륭하였다.또한 출입문옆의 신발장과 벽거울로부터 시작하여 공동살림방의 안락의자와 TV탁, 부엌의 가시장과 식탁 그리고 침대와 책상, 세면장의 비누받침대에 이르기까지 살림살이에 필요한 모든것이 일식으로 갖추어져있었다.
그것을 우리에게 일일이 보여주며 로인은 《어쩌면 그리도 세심하신지…》라는 말을 줄곧 뇌이였다.그리고는 또다시 옷고름으로 눈굽을 찍었다.그러다가 눈물젖은 얼굴에 웃음을 띠우며 말했다.
이런 절절한 이야기를 우리는 화성구역 새별동 26인민반에서 사는 주유성렬사의 어머니인 김애련녀성에게서도 들을수 있었다.
집에는 김애련녀성 혼자뿐이였다.알고보니 초기복무사관이였던 그의 남편은 10여년전 군사임무수행중에 희생되였고 막내아들인 렬사의 동생은 남포혁명학원에서 공부하고있었다.
김애련녀성은 렬사가 몇해전 여름 마지막으로 보내온 편지를 보여주었다.그 편지를 앞에 놓고 우리는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애련녀성은 두 아들을 어릴 때부터 엄하게 키웠다.어린 나이에
그가 바란대로 아들들은 대바르게 자랐다.조국보위초소에 선 맏아들이 군사복무를 잘하고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을 때마다 김애련녀성은 아들이 돌아오면 온 동네가 부럽게 칭찬해주리라 생각하군 했다.
비록 어머니는 그렇게 하지 못했지만 당에서는 아들에게 어머니의 칭찬에 대비할수 없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며 김애련녀성은 《사실 우리 유성이를 제가 키웠습니까.나는 그애를 낳기만 했을뿐 고마운 어머니당이, 사회주의제도가 키워주었고 조국보위초소에서 그렇게 훌륭하게 성장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렬사의 편지를 다시 읽어보았다.
가렬한 싸움터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만세를 웨치며 최후를 마친 렬사, 그의 애국심을 우리 당은 값높이 내세워주었다.
유가족들 한사람한사람의 아픔을 모두 품어안으시고 그들이 못다 산 렬사들의 생을 이어 행복한 삶을 누리게 해주시려고
며칠전인 3월 16일
화성구역 새별동 44인민반에서 사는 최은실녀성은 말하였다.
《바로 그날 우리는 새별거리에 이사왔습니다.우리가 새집을 받아안고 좋아할 때
이것이 어찌 그 어머니 한사람만의 심정이겠는가.
참전렬사들의 유가족들에게 온갖 사랑을 다 베풀어주는 어머니 우리당의 손길이 뜨겁게 어려있는 희한한 새 살림집에서 당중앙위원회 명의로 된 살림집리용허가증을 눈물속에 보고 또 보며 그들은 한목소리로 말한다.우리는
낮이나 밤이나 보답의 한생각
새별거리의 주인들 누구나 한결같이 간직하고있는것이 있다.온 나라가 경의를 드리는 해외군사작전 참전렬사들의 유가족이라는 그 부름앞에 자신을 세워보며 최상의 영광과 존대, 행복의 단상에 올려세워주신
우리는 화성구역 새별동 14인민반 1현관 3층 1호에도 들려보았다.거기에서는 《이 아들이 조국의 아들답게 싸웠다고 우리 어머니에게 전해달라.》는 말을 남기고 최후를 마친 공화국영웅 길정훈렬사의 유가족들이 살고있었다.
참전렬사들의 숭고한 정신세계를 뜨겁게 안아보게 하는 영웅의 마지막웨침이 담겨진 서예작품과 그의 초상사진이 벽에 나란히 걸려있었다.
그가 판가리싸움에 나서면서 그처럼 그리워한 어머니인 김명실녀성은 우리에게 렬사의 사진에 대한 감동깊은 추억을 들려주었다.
이 가정에는 군복을 입은 렬사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두장뿐이였다.하나는
《아들에게 편지할 때마다 사진을 꼭 찍어보내라고 하였지만 매번 사진은 없고 빛나는 위훈을 세운 다음 어머니에게 떳떳하게 사진을 보내겠다는 회답만 오지 않았겠습니까.》
그렇게 오랜 세월 기다리며 보고싶어한 아들의 사진을 그가 본것은 지난해 8월 당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진행된 조선인민군 해외작전부대 지휘관, 전투원들에 대한 국가표창수여식에 참가해서였다.추모의 벽에서 군관견장을 단 아들의 사진을 처음으로 본 김명실녀성은 그 모습을 마음속에 영원히 새겨두려고 오랜 시간 그앞을 떠나지 못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얼마후
렬사의 사진앞에서 그는
화성구역 새별동 44인민반에서 사는 박종혁렬사의 유가족을 만났을 때 우리는 한가지 사실을 알게 되였다.
그들이 천성청년탄광에서 왔다는것이였다.
렬사의 할아버지는 운반갱에서 일하면서 전차수리에 한생을 바쳤고
그들이 평양의 새별거리에 이사간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온 탄광마을 사람들이 기뻐하였다고 한다.새 생활을 시작하는 그들에게 보탬을 주고싶다며 모두가 떨쳐나섰다.
그들이 마련해준 가정용품들을 새 살림집에 모두 펼쳐놓으니 살림방 하나가 꽉 찼다면서 오송희녀성은 우리 집에 어머니당의 사랑과 함께 탄광마을사람들의 성의가 꽉 차있다고, 그들의 마음까지 합쳐 대를 이어 탄전을 지켜가던 어제날과 마찬가지로 온 가족이 조국이 맡겨주는 초소에서 성실히 일하겠다고 이야기하였다.
새 거리에 보금자리를 편 사람들 누구나 체험하는것이 있다.
새집에 들어선 순간부터 초인종소리가 끊기지 않는것이다.군인건설자들이 찾아와 생활에 불편한것이 없는가를 몇번이나 물어보았고 상점판매원들이 나라에서 공급하는것이라면서 각종 기초식품과 부식물, 생활필수품을 안고 찾아왔다.의료일군들도 가족들중에 앓는 사람이 없는가 알아보고 혹 이상이 있으면 찾으라면서 전화번호를 남기고 갔다.
그러니 어찌 그들의 가슴가슴이 보답의 열망으로 달아오르지 않을수 있으랴.
초인종소리가 쉬임없이 울리는 낮에는 낮대로, 거리에 희한한 불야경이 펼쳐진 밤에는 또 밤대로 어머니당의 은덕이 가슴에 사무쳐와 보답의 열망이 세차게 일어솟는다고 새별거리 주인들은 한결같이 이야기하였다.
화성구역 새별동 18인민반에 입사한 최정남동무는 은산군의 어느한 고급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있었다고 한다.
그는 평양으로 오기 전에 자기가 담임한 학급학생들모두를 집에 불렀었다.이제 얼마 안있어 학교를 졸업하고 인민군대에 입대하게 될 학생들앞에서 그의 안해 김정애녀성은 아들이 조국보위초소로 떠나던 날 읊어주었던 시 《어머니의 당부》를 다시 읊었다.
지금도 그날 《우리도 반드시 영웅이 돼서 새별거리에 계시는 선생님을 찾아가겠습니다.》라고 결의다지던 학생들의 힘찬 목소리가 귀에 쟁쟁하다면서 최정남동무는 말하였다.
《지금 온 나라 각지의 고급중학교 졸업반학생들속에서 최전연국경초소들로 탄원하는 열기가 더욱 고조되고있습니다.그들이 다지는 조국보위의 맹세속에는 언제나 〈리수복영웅처럼!〉이라는 지향과 함께 〈해외군사작전 참전렬사들처럼!〉이라는 불같은 열망이 담겨져있습니다.렬사의
우리가 취재하는 동안에도 새집들이는 계속되였다.시간이 흐를수록 새별거리는 어머니당에 대한 고마움으로 더 세차게 끓어번지고 그 은덕에 보답하려는 마음은 더욱 열렬해지고있었다.새 살림집에 입사한 유가족들가운데 어렵고 힘든 초소에 보내줄것을 절절히 청원한 사람들도 있고 조국보위초소에 달려나갈것을 결의다지는 학생들도 늘어나고있다고 새별동사무소 일군은 말하였다.
새집들이와 더불어 꽃펴나는 이야기들을 듣는 우리의 눈앞에는 렬사들의 고귀한 넋이 깃들고 온 나라의 존경심과 경의심이 모여오는 이 새별거리가 당과 조국을 위해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치는 참된 애국자들의 거리로 더욱 빛나게 될 그날이 선히 어려왔다.
* *
취재를 끝냈을 때는 거리에 어둠이 깃든 늦은저녁이였다.새별거리 상공에서 힘차게 나붓기는 거폭의 공화국기가 빛을 뿌리며 선명하게 안겨왔다.
우리 전투원들이 가슴에 품고 혈로를 헤친 국기, 장한 아들들을 정히 싸안아 어머니조국의 품에 데려온 국기, 렬사들과 그들이 그처럼 사랑했던 가족들도 나란히 영예의 단상에 세워주려는 열화같은 진정을 담아
우리의 마음속에 노래 《조국의 별들》과 《기억하리》의 선률들이 되새겨졌다.
그러느라니 조국을 위해 바친 생을 그리도 값높이 내세워주는 우리 당이 있고 영웅들이 지녔던 애국의 넋을 줄기차게 이어가는 인민이 있어 렬사들의 삶은 오늘도 래일도 길이 이어지고 그와 더불어 존엄높은 우리 공화국의 국기는 영광과 영예의 절정에서 영원히 빛나리라는 확신이 더욱 굳어졌다.
글 본사기자 김송이
김진희
사진 본사기자 리충성
본사기자 김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