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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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29일 금요일 3면

당은 나의 어머니

운명을 지켜주고 보살펴준 손길


윤광섭이라고 하면 이제는 그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하지만 희극적인 연기로 수십년동안 교예무대에서 관중을 곧잘 웃기군 한 키가 큰 막간배우였던 나의 아버지의 얼굴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있다.

지금도 관람석에 앉아 막간극들을 볼 때면 잊지 못할 추억들이 되살아나면서 아버지의 운명을 지켜주고 보살펴주며 삶의 절정에 세워준 어머니당에 대한 다함없는 고마움으로 눈굽을 적시군 한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 당은 어머니당입니다.》

생전에 아버지를 두고 사람들은 몸가짐이나 목소리 지어 얼굴생김새까지도 희극배우로서의 천성을 타고났다고 했다.하지만 아버지가 처음부터 만사람에게 웃음을 안겨주는 희극배우였던것은 아니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싸우는 고지우로 탄약과 포탄을 실어나르는 자동차병이였던 아버지는 전후에도 어느한 뻐스사업소에서 운전사로 일하였다.

그러던 아버지가 막간배우로 인생전환을 하게 된것은 온 나라에 천리마대고조의 불길이 세차게 타오르던 시기였다.그때 어디 가나 천리마조선의 기상을 떨치기 위해 일터마다에서 기적과 혁신을 창조하고있는 사람들에게 웃음과 랑만을 안겨주겠다는 하나의 열망을 안고 아버지는 자진하여 배우가 되였다.

그러나 어렸을 때 어리광대들의 연기와 경험을 귀동냥해들은것이 고작인 아버지에게 있어서 배우생활은 결코 헐한것이 아니였다.지어 자기가 창조하는 웃음이 어떤것으로 되여야 하는가 하는 옳바른 견해도 없이 다른 나라의것을 그저 기계적으로 옮기면서 사람들을 웃기기만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고있었다.그런 아버지를 손잡아 이끌어 하나하나 가르쳐주신분은 위대한 장군님이시다.

당시 극장의 영화보급사업때문에 필림을 가지러 어느한 영화보급소에 갔던 아버지는 그곳에서 뜻밖에도 위대한 장군님을 만나뵙는 영광을 지니게 되였다.

그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아버지에게 몇살인가, 교예막간배우는 언제부터 했는가, 배우가 되기 전에는 무슨 일을 하였는가 하나하나 물어주시고 동무가 무대에 출연하는것을 여러번 보았다고 하시면서 사람을 웃기기란 힘든 일인데 아주 잘한다고 과분한 치하를 해주시였다.

그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막간극을 지도해주시면서 우리의 교예막간극은 웃음으로 사람들을 혁명과 건설에로 더욱 힘있게 고무하는 무기로 되여야 한다고 그 혁명적사명도 뚜렷이 밝혀주시였다.

그렇게 위대한 스승의 가르치심을 받아안으면서부터 아버지는 막간배우로서 인생길에 뚜렷한 자욱을 새길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아버지는 얼마나 위대한 사랑과 믿음의 손길이 자기의 운명을 지켜주고 보살펴주고있었는가를 다는 알지 못했다.

사실 아버지는 출신성분때문에 마음고생을 많이도 하였다.얼굴표정 하나만으로도 남들의 웃음집을 건드려놓는다는 희극배우가 마음속그늘을 안고있었다면 아마 사람들은 잘 믿지 않을것이다.무대우에서는 희극적인 연기를 하면서도 무대뒤에서는 가정주위환경이 떳떳하지 못해 늘 마음속에 응어리를 안고있던 사람이 바로 나의 아버지였다.

일부 편협한자들이 출신성분이 어지러운 사람들은 교예무대에 더는 있을수 없다고, 궁벽한 산골로 보내야 한다는 좋지 못한 말을 들고다닐 때에도 아버지는 남몰래 마음을 조이면서도 묵묵히 무대생활을 이어갔다.

그렇게 주눅이 들어있는 아버지의 마음속을 남먼저 헤아려주신분은 위대한 장군님이시였다.

어느날 이른새벽 아버지는 뜻밖에도 위대한 장군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였다.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푸러질듯 달려온 아버지의 손을 다정히 잡으시고 기다렸다고 하시며 동무가 만두국을 좋아하기때문에 오늘 만두국을 먹이고싶어서 자신께서 이렇게 오라고 하였다고 친히 부르신 사연을 알려주시였다.

자신의 옆자리에 앉혀주시고 이 동무는 청년시절부터 자신께서 사랑해주었다고 하시며 아버지와 처음 만나던 때를 떠올리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문득 아버지에게 동무가 교예무대를 떠날번한 일이 있은것을 알고있는가고 물으시였다.

아버지가 모르고있었다고 말씀올리자 그이께서는 모를것이라고 하시면서 그런 일이 있었는데 자신께서 부결하였다고 교시하시였다.

그제서야 아버지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지금껏 본인자신도 모르게 운명을 지켜주고 보살펴주시였다는것을 알게 되였다.그날 아버지는 너무도 놀랍고 격동되여 고마움의 인사도 변변히 올리지 못하였다.

그이께서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에게 사람에게 있어서 출신성분이 문제가 아니라고, 사람의 진심을 믿어야 한다고 하시며 자신께서는 동무를 믿는다고 힘주어 교시하시였다.

그날 아버지는 하늘같은 그 은혜에 한생토록 보답할 맹세를 다지고 또 다지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평범한 막간배우인 아버지에게 안겨주신 사랑과 믿음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진정 끝이 없다.

위대한 수령님의 존함이 모셔진 손목시계는 물론 새해와 명절을 맞으며 꼭꼭 보내주신 년하장과 사연깊은 선물들에도, 70고령에 인민배우로 내세워주신 은정어린 조치에도 아버지를 자신의 품에 꼭 껴안고 보살펴주시던 위대한 장군님의 웅심깊은 사랑이 뜨겁게 어리여있다.하기에 아버지는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그 사랑과 믿음에 보답하겠다고 하면서 막간무대를 떠나지 않았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2010년 2월 한생토록 교예막간무대를 지켜온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화환까지 보내주시였다.

정녕 그 위대한 사랑과 믿음의 품에 안기지 못했다면 아버지가 어떻게 인민들의 사랑을 받는 배우로 성장할수 있었으며 빛나는 삶의 절정에 오를수 있었겠는가.

인민이 사랑하고 기억하는 희극배우, 그것은 결코 천부적인 재능이나 흐르는 세월이 나의 아버지에게 가져다준 값높은 부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슬하에 품어안은 자식이라면 그가 누구이든 걸음걸음 손잡아 이끌어 삶을 빛내여주고 남몰래 안고있는 마음속상처까지도 깨끗이 가셔주며 지어 죽어서도 영생하는 삶을 안겨주는 위대한 조선로동당의 품에서만 받아안을수 있는 우리 인민특유의 영광이고 행운이라고 나는 세상에 대고 소리높이 자랑하고싶다.

모란봉구역 서흥동 64인민반 윤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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