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생지옥의 대명사-겸이포
《당원들과 군인들, 근로자들속에서 교양사업을 강화하여 그들이 높은 계급의식을 지니고 그 어떤 정황속에서도 혁명적원칙성과 계급적립장을 확고히 지키며 계급적원쑤들과 무자비하게 투쟁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철의 기지인 황해제철련합기업소가 자리잡고있는 송림시는 해방전에 겸이포라고 불리웠다.이 고장의 지명이 겸이포로 불리우게 된데는 가슴아픈 사연이 있다.
지난 세기초에 이르러 우리 나라의 풍부한 자원을 략탈해가기 위하여 이곳에 기여든 일제는 먼저 철도공사에 달라붙었다.
일제가 진행한 철도공사로 하여 수많은 농민들이 일시에 땅을 잃고 집과 일자리도 없이 한지에 나앉게 되였다.
이곳에 주둔한 일본군 공병대대장 와다나베 겐지란 놈은 철길을 놓는 공사를 끝내고나서 이곳의 지명을 제놈의 이름을 따서 《겐지흐》라고 불렀다.조선사람들의 피땀을 악착스럽게 짜내여 인간도살장, 인간생지옥의 대명사로 불리운 저주로운 겸이포라는 이름은 이렇게 되여 생겨났다.
그후 일제는 철자원이 풍부하고 대동강을 끼고있어 수송에도 유리한 이곳이야말로 제놈들의 침략과 략탈에 리상적인 야금공업기지로 될수 있다고 보고 여기에 제철소를 세웠다.
제철소가 생겨나자 일자리가 없어 고생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그들속에 10대의 소년인 덕만이도 있었다.지주놈에게 진 빚을 갚고 머슴살이로 고생하고있는 어머니를 돕기 위하여 벌이가 좋다는 소문을 듣고 여기로 왔지만 어른들도 힘에 부친 제철로동을 하기에는 너무도 어리고 연약하였다.
덕만이는 매일 아침일찍 일어나 모래알같은 깡조밥과 멀건 소금국을 들이키고는 아득히 높은 곳으로 손잡이도 없는 발판을 타고 쇠돌을 가득 채운 질통을 지고 올라가서 시뻘건 불길이 무섭게 확확 뿜어오르는 용광로안에 쏟아넣는 일을 하였다.
어른들도 견디기 힘든 고역을 치르다나니 며칠도 안되여 어깨와 등골이 퉁퉁 부어올라 못견디게 쑤셔났고 바람에 날리여 들어간 쇠돌가루로 하여 눈이 가시로 찌르는것처럼 띠끔띠끔 아파나서 견딜수 없었다.
이렇게 고역을 치르며 어느덧 한달이 흘러 임금을 타는 날이 왔다.덕만이는 처음 자기 힘으로 번 돈을 타게 되였다는 기쁨을 안고 줄을 서서 차례가 되기를 기다렸다.한참만에야 돈봉투를 손에 쥐고 그안을 들여다보니 무엇인가 적어넣은 글쪽지밖에 없었다.
식비, 직장알선사례금, 벌금 등의 명목으로 돈을 제하다나니 결국은 빈봉투밖에 차례지지 않은것이였다.대다수의 로동자들이 빈봉투를 받아들고 항의를 들이대였으나 일제놈들은 오히려 채찍을 휘두르며 일에 내몰았다.
그러던 어느날 놈들은 가스가 채 빠지지 않은 작업장에 로동자들을 강제로 들이밀었다.얼마후 그들이 중독되여 실신상태에 놓이자 놈들은 《약골》들은 소용이 없다고 하면서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해고해버렸다.
일본인계장놈은 앓으면서도 일자리를 떼우지 않기 위해 일터에 나와 일하는 한 로동자를 발로 차서 거꾸러뜨리고는 그를 《태공분자》라고 하며 즉시 내쫓았다.
이렇듯 겸이포는 말그대로 인간생지옥이였다.매일 13~14시간을 왜놈들의 채찍밑에 쇠물을 녹이고 먼지속에서 주물을 해야만 하였다.조금만 허리를 펴도 어느새 십장놈의 채찍이 목덜미에 떨어졌다.
이것은 결코 지나간 옛이야기가 아니였다.세상을 둘러보면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강점한 략탈자들이 저지른 죄악이 수없이 기록되여있다.
그러나 왜놈들처럼 조선사람들을 고역장에 강제로 내몰고 사람잡이를 쾌락으로 여긴 잔인하고 악랄한 인간백정, 살인마들은 없을것이다.
우리는 세월이 아무리 흐르고 세대가 열백번 바뀌여도 일제가 우리 인민에게 들씌운 죄악의 력사를 한시도 잊지 않고 기어이 천백배로 복수하고야말것이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 안성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