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꿈을 가꾸어가는 사람들
《우리 인민은 실생활을 통하여 우리 나라 사회주의제도야말로 자기들에게 문명하고 행복한 생활을 마련해주는 가장 우월한 사회제도라는것을 확신하고있습니다.》
육체적장애를 굴함없이 이겨내고 화려한 무대에서 자기의 재능을 마음껏 과시하는 조선장애자예술협회 예술소조원들,
오늘 우리는 그들의 가슴속에 간직된 아름다운 꿈을 소중히 가꾸어가는 고마운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조선장애자예술협회 예술부원 조금란동무가 이곳에서 사업을 시작한지도 이제는 10년이 넘었다.
그에게 맡겨진 임무는 기악조를 책임지고 장애자들에게 손풍금을 비롯한 악기를 배워주는것이다.사실 일반사람들에게 악기를 배워주는것도 헐한 일이 아니다.하물며 대부분이 시력장애자들로 구성된 기악조를 책임지고 가르치는것은 참으로 헐치 않은 과제였다.
조금란동무는 일요일, 명절날이 따로없이 매일 훈련실에서 살다싶이 하며 소조원들이 쉽게 리해할수 있는 연주방법을 탐구하기 위해 부단히 사색하고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나갔다.앞을 못보는 이들에게 악보를 하나하나 읽어주느라 목이 쉬기도 하였고 직접 손풍금을 타며 한명한명 맡은 연주부분을 배워주느라 팔과 어깨에 강직이 오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는 자식의 등교길은 같이 걷지 못해도 소조원들과 출근길과 퇴근길을 함께 하며 그들을 극진히 돌봐주었다.
소조원들에게 무용을 가르쳐주는 예술부원 김선영동무는 또 어떠한가.
그가 처음 사업을 시작하였을 때 제일 애를 먹은것은 청력장애자인 무용수들과의 의사소통이였다.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열성껏 손말을 배워나갔다.섬세한 무용동작을 배워주기 위하여 세부적인 손말에 이르기까지 놓치지 않았다.애타게 노력한 결과 그는 몇달후에는 마침내 그들과 소통을 할수 있었다.
그러나 의사소통을 할수 있다고 하여 결코 모든것이 해결되는것이 아니였다.음악을 듣지 못하는 무용수들이 충분한 자감을 느끼도록 하기 위하여 그와 련관된 도서들을 열심히 탐독하며 끊임없이 사색하고 노력을 기울여갔다.
이들만이 아니다.장애자들의 예술적기량을 높여주고 공연준비를 손색없이 하기 위해 서기장으로부터 시작하여 작곡가에 이르기까지 협회의 모든 성원들이 아낌없는 진정을 바쳐가고있다.
너무도 힘이 들어 주저앉고싶은적도 많았다고 한다.노력을 들인데 비해 기량이 눈에 띄게 오르지 않고 자주 진행되는 지방공연을 보장하느라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느낄 때면 이길을 끝까지 갈수 있겠는가 하는 걱정도 들군 하였다.
저도 모르게 마음이 나약해질 때마다 과연 무엇이 이들을 새롭게 분발시켜주었던가.
지방공연을 나가면 의례히 제일 훌륭한 극장의 무대에 세워주고 출연자들의 생활상편의를 전적으로 책임지고 돌봐주기 위해 애쓰는 각지 당, 정권기관 일군들의 모습에서 이들은 장애자들을 따뜻이 위해주고 돌보아주는 사회주의제도의 고마움을 뜨겁게 절감하였다.공연이 끝날 때마다 관중들이 보내는 열렬한 박수소리는 협회성원들에게 남다른 사명감을 깊이 새겨주었다.
공연에 대한 사람들의 반향도 그들을 크게 고무하였다.
수많은 관람자들이 지금까지 많은 예술단체들의 공연을 보았지만 오늘의 공연처럼 이토록 커다란 감동을 받아안기는 처음이다, 한점 그늘없이 밝게 웃으며 장애자들이 마음껏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을 바라보며 공연 전 기간 정말 좋은 제도에서 우리가 살고있다는 생각이 떠날줄 몰랐다고 자기들의 격동된 심정을 터놓았다.
장애자들이 지닌 뛰여난 예술적재능에 대한 감탄과 함께 이를 꽃피워주고 내세워주는 고마운 품에 대한 이런 감격의 목소리는 공연이 진행되는 곳 어디서나 울려나왔다.
그럴수록 협회성원들은 힘이 솟았다.
나라의 관심과 인민들의 기대속에 살고있는 우리의 장애자들을 위해 모든것을 다해나가자.
이런 마음으로 그들은 소조원들의 예술적기량을 높여주기 위한 사업에 뜨거운 사랑과 헌신을 기울여나갔다.심혈을 다하여 배워주고 살뜰하고 세심하게 돌봐주는 협회성원들은 소조원들의 마음속에 예술적기량을 키워주는 스승이기 전에 따뜻한 정을 부어주는 친부모의 모습으로 간직되였다.
그들의 모습은 장애자예술소조원들에게 아름다운 꿈과 재능의 나래를 마음껏 펼치도록 온갖 사랑과 혜택을 베풀어주는 어머니조국에 대한 고마움을 더해주고있다.
박설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