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은 나의 어머니
대를 두고 받아안은 크나큰 은덕
지난 3월 뜻깊은 선거의 날 우리 천성의 탄부들은 그립고그립던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우리들의 선거구에 모시는 최상의 영광을 지니였다.
그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우리모두를 존경하는 천성의 탄부동지들이라고 정담아 불러주시며 당중앙은 동지들을 굳게 믿는다고 힘주어 말씀하실 때 나는 우리같은 평범한 탄부들이 얼마나 크나큰 사랑과 믿음속에 대를 이어 영광과 행복을 누리고있는가를 새삼스럽게 절감하였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병든 자식, 상처입은 자식을 탓하지 않고 더 마음을 쓰며 사랑과 정으로 품어주고 아픈 상처를 감싸주며 또다시 일으켜 내세워주는 품, 이것이 어머니 우리당의 품입니다.》
최순일이라고 하면 지금도 천성의 많은 탄부들이 첫 김혁청년돌격대 대장으로 그 이름을 기억하고있다.그가 바로 나의 아버지이다.
탄광의 오랜 탄부들이나 새세대 탄부들모두가 복된 삶을 산 행운아였다고 자주 추억하는 나의 아버지에게는 자책속에 돌이켜보군 하던 지난날의 가슴아픈 추억이 있었다.
청년돌격대가 조직되기 전까지만 하여도 아버지는 청춘시절의 귀중한 하루하루를 헛되이 보낸 불미스러운 청년이였다.
온 나라 청년들이 조국과 인민을 위한 길에 자기 한몸을 내대고 제일 어렵고 힘든 일터로 앞다투어 달려나가던 그때 순천시에서 살고있던 아버지는 시대의 벅찬 흐름에 발을 맞추지 못하고있었다.
나라를 위해 많은 일을 하고 사회와 집단앞에 무엇인가 이바지해야 할 대신에 자기 하나의 편안만을 추구하며 안일한 생활에 빠져있던 아버지였다.그러다나니 점점 사람들의 눈밖에 나게 되였고 나중에는 나라의 법까지 어겨 숨어다니는 신세가 되였다.
오죽했으면 한생토록 모범로동자로 일해온 나의 할아버지까지도 오래동안 속을 태우다 못해 사람구실하기 전에는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하며 자기 자식을 아예 외면해버렸겠는가.
잘못을 빌고 다시 직장에 다닐가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종시 결심을 내리지 못하였다.오래동안 사람들속에 애꾸러기로 인박힌 자기의 인생이 그런다고 바로잡힐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던 아버지가 진짜 정신을 차리게 된 동기가 있었다.
자기와 같이 밀려다니며 사람들의 눈밖에 났던 한 청년이 탄광에 자원진출하여 일을 잘해서 국가적인 대회에도 참가하고 위대한 장군님께서 아시는 청년이 되였다는것이 아닌가.
그 소식을 전해들은 날 아버지는 자기의 처지를 두고 밤새도록 자책했다.계속 이대로 나가다가는 앞으로 자기는 물론 《동생》이라고 하며 데리고다니는 청년들까지 아무데도 쓸모없는 버럭돌로 만든다는 생각에 소스라쳐 일어난 아버지는 탄광당조직을 찾아갔다.그것도 혼자가 아니라 20여명의 불량청년들을 다 데리고갔다.그리고는 지난날 잘못 살아온 청년들로 청년돌격대를 무어달라고 제기하였다.당조직에서는 아버지를 비롯한 청년들이 내린 개준의 결심을 적극 지지해주면서 청년돌격대를 새로 무어주었다.
그런데 어찌 알았으랴.
며칠후 많은 사람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청년들이 《김혁청년돌격대》라는 글발이 새겨진 기발을 앞세우고 막장으로 향하던 그 시각 위대한 장군님께서 청년들의 소행을 두고 못내 기뻐하신줄을.
청년들의 소행에 대하여 보고받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군들에게 최근에 순천시안의 불량청년 29명이 개준의 길에 들어설것을 결심하고 천성청년탄광에 집단진출하였다고 하시면서 최순일이네 돌격대를 널리 소개하라고, 앞으로 완전히 개준되여 일을 잘하게 되면 평가도 잘해주어야 한다고 다심히 이르시였다.
그러시고는 당조직들과 사로청조직들에서는 청년시절에 과오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지난날의 과오를 뉘우치고 개준의 길에 들어설 때에는 지난날을 문제시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과 꼭같이 평가해주어야 한다고 간곡히 교시하시였다.
해당 일군들로부터 사랑과 믿음이 어린 교시를 전달받고 아버지는 아이들처럼 눈이 퉁퉁 붓도록 울고 또 울었다.못난 자식의 상처입은 마음에도, 남들보다 참된 인생의 길에 뒤늦게 들어선 지각생들에게도 살뜰한 어머니의 손길이 닿아있다는 생각때문이였다.
그날 아버지와 청년돌격대원들은 아직은 어머니조국을 위해 석탄 한삽도 바친것 없는 자기들이 받아안은 하늘같은 은덕에 한생을 다 바쳐 보답할 결의를 다지였다고 한다.
당의 품속에서 새로 태여난 청춘을 빛내이기 위해 아버지는 불같이 살았다.
탄광적으로 조건이 제일 불리한 막장을 타고앉아서도 계획을 언제한번 드틴적이 없었다.탄광에서 어렵고 힘든 일이 나설 때면 그 앞장에는 언제나 김혁청년돌격대가 서있었다.
오직 자기의 피땀으로 한돌기한돌기 실적을 쌓아야만, 그것도 가장 어렵고 힘든 전구에서 희생까지 각오하고 투신해야만 조국앞에 떳떳한 청년이 될수 있다는 자각을 안고 그들은 하루를 열흘맞잡이로 살며 일하였다.
그 나날 아버지는 고마운 당조직의 손길에 이끌려 청년돌격대의 첫 당원이 되였고 천성의 김혁청년돌격대는 온 나라가 다 아는 혁신자집단으로 자라나게 되였다.
청춘시절을 영영 잃을번했던 아버지에게 참다운 삶을 안겨주고 영광의 단상에 내세워준 당의 하늘같은 은덕을 무슨 말로 다 전할수 있겠는가.
받아안은 당의 사랑에 비해보면 한 일이 너무도 보잘것없는 아버지를 영광의 대회장들에 세워준 그 사랑과 믿음에서 아버지는 물론 온 가족과 탄광사람들은 위대한 조선로동당의 진모습을 보았다.
그 품이 아니라면 한때 길을 잘못 들었던 아버지가 어떻게 김일성청년영예상수상자로, 로력영웅으로 성장할수 있었으며 세상을 떠난 후에도 후대들의 기억속에 영생하는 삶을 누릴수 있었겠는가.
아버지는 생전에 우리 자식들에게 자기가 일을 잘해서 영웅이 된것이 아니라 당에서 영웅으로 키워 내세워준것이라고, 그 믿음에는 대를 이어가며 보답이 따라야 한다고 늘 말하군 하였다.
당에서는 아버지의 당부를 새겨안고 대를 이어 막장길을 걷고있는 나에게 아버지가 일하던 청년돌격대 대장으로 사업하도록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었다.
세대를 이어가며 안겨주는 당의 크나큰 믿음에 석탄산을 높이 쌓는것으로써 보답하기 위해 애쓰던 나날에 나는 여러 국가적인 대회에도 참가하였으며 지난해에는 김일성청년영예상수상자의 영예를 지니고 올해에는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창립 80돐 기념대회와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 제11차대회에 참가하여 경애하는 아버지원수님을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는 최상의 영광을 지니였다.
정녕 이 땅에 태를 묻은 사람들 누구나 참되고 값높은 삶을 누리는것은 잘난 자식, 못난 자식 차별없이 사랑과 믿음의 한품에 안고 보살펴주는 어머니당이 있기때문이다.
나는 대해같은 사랑과 믿음을 안겨주는 고마운 우리 당을 위해 아버지세대가 그러했던것처럼 석탄증산으로 조국과 혁명을 보위하는 길에 지혜와 열정을 깡그리 다 바쳐나가겠다는것을 굳게 결의한다.
천성청년탄광 김혁청년돌격대 대장 최대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