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답의 일념으로 철산봉에 새겨가는 청춘의 자욱
무산광산련합기업소 청년동맹위원회 지도원 오충현동무
《이 땅에 태여나 자라난 청년이라면 한사람도 남김없이 모두다 공산주의사회까지 데리고가자는것이 우리 당의 확고한 의지입니다.》
지난 4월에 진행된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 제11차대회의 높은 연단에 함경북도청년동맹조직대표인 무산광산련합기업소 청년동맹위원회 지도원 오충현동무가 나섰다.그는 떳떳치 못한 지난날때문에 마음속고충을 안고있던 자기가 당의 크나큰 믿음속에 고귀한 삶을 받아안고 영광의 절정에 오르던 잊지 못할 나날에 대하여 긍지높이 토론하였다.
그가 걸어온 생의 자욱자욱에는 우리 당의 청년중시사상의 정당성과 생활력이 비껴있고 당을 따라 영원히 한길을 가려는 우리 시대 청춘들의 열렬한 지향이 어려있다.
당의 믿음속에 두번다시 받아안은 값높은 삶
5년전 2월 어느날 저녁 차유령으로 한 청년이 오르고있었다.나라앞에 죄를 짓고 법적제재를 받았던 과거를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오충현동무였다.
흰눈덮인 령마루에 서서 무산읍으로 뻗어간 길을 바라보는 그의 마음은 괴로왔다.어린시절 영웅이 되여 돌아오는 모습을 자주 그려보던 이 령마루에 불명예스러운 비난의 대상이 되여 올랐으니 눈앞이 캄캄하였다.
어둠을 타고 마을로 들어와 고향집문을 열었지만 가족들은 따뜻한 눈길 한번 보내주지 않았다.
조용히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리에 누웠으나 잠들수가 없었다.눈보라치는 창밖을 하염없이 내다보며 줄담배를 피우고 한숨을 쉬는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그는 집밖을 나서지 못하였다.중학교시절의 선생님과 동창생들은 어떻게 만나고 앞으로 훌륭한 사람이 되여 철산봉을 지켜선
끝없이 이어지는 고민과 괴로움속에 며칠이 흘렀다.
어느날 저녁 련합기업소의 한 청년동맹일군이 그의 집을 찾아왔다.새로운 결심을 가지고 용기를 내여 일어나야 한다, 예술영화 《줄기는 뿌리에서 자란다》의 원형을 비롯하여 얼마나 많은 청년들이 지난날과 결별하고 새 출발하여 시대의 선구자로 되였는가고 하면서 그를 깨우쳐주고 고무해주었다.
(맥을 놓고 주저앉아서는 안된다.인생을 다시 시작하자.)
다음날 그는 련합기업소청년동맹조직을 찾아갔다.
《저를 련합기업소에서 제일 어려운 일터에 보내주십시오.》
이렇게 되여 로천분광산 보수직장 로동자가 된 그는 낮과 밤을 모르고 일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이였다.한 굴착기운전공이 찾아와 설비가 제대로 동작하지 않는데 좀 봐달라고 하였다.
오충현동무는 그달음으로 현장에 나갔다.그러나 아무리 보아야 고장원인을 찾을수 없었다.굴착기에 대하여 아는것보다 모르는것이 더 많은 그였던것이다.시간이 흐를수록 안타까움은 커졌다.
(이런 때
그의
새날이 밝아오는 철산봉마루에 아들과 함께 앉은
《욕망만으로는 뜻을 이룰수 없다.배워야 한다.아는것이 많을수록 더 많은 일을 할수 있고 나라앞에 지은 죄도 더 빨리 씻을수 있다.》
로당원인
그날부터 오충현동무는 열심히 공부했다.철산봉을 오르내리는 출퇴근길에서도 책을 놓지 않았고 작업의 휴식시간에도 오랜 기능공들을 찾아다니며 꾸준히 배웠다.
련합기업소와 분광산의 청년동맹일군들도 자주 그를 찾아와 일은 힘들지 않은가, 애로되는 문제는 없는가 등을 알아보면서 인생의 참된 길을 변함없이 걸어가도록 떠밀어주었다.
그해 8월
며칠후 그는 렬차에 몸을 실었다.평양에로의 출발을 알리는 렬차의 기적소리가 인생의 새 출발에로 부르는 어머니당의 목소리로 들려와 그의 가슴은 흥분으로 높뛰였고 입으로는 노래 《나를 부르는 소리》의 구절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
당이여 그대 아니면 누가 나를 부르랴
그대가 아니면 누가 나를 부르랴
평양에 도착하여 경축행사의 나날을 보내는 오충현동무는 꼭 꿈을 꾸는것만 같았다.
(어머니당의 이 사랑에 어떻게 보답할가.)
하지만 그에게 꿈속에서도 그려보지 못한 크나큰 영광과 축복이 또다시 안겨질줄 누가 알았으랴.
가슴에 훈장을 번쩍이는 로력혁신자도 아니고 남을 위해 자기를 바친 미덕과 미풍의 소유자도 아닌, 부끄러운 지난날과 결별하고 인생의 새 출발을 한것밖에 없는 자기의 소행을 귀중히 여기시며 몸가까이 불러주신
허물있는 자식을 더 따뜻이 품어주는 친어버이의 심정으로 자기의 손을 다정히 잡아주시는 그 믿음이 너무도 고마워 보답의 맹세를 다진 오충현동무는
정녕 그날은 오충현동무에게 있어서
그가 고향으로 돌아올 때였다.온 광산이 떨쳐나 그를 맞이하였다.마을사람들과 광부들은 물론 나어린 학생들까지 길가로 달려나와
오충현동무의 얼굴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당의 믿음속에 두번다시 받아안은 생은 그 얼마나 고귀한것인가?!)
운명을 꽃피워준 은혜로운 그 품이 고마워
평양에서 돌아온 다음날 오충현동무는 련합기업소당위원회를 찾아갔다.
《저를 더 어렵고 힘든 부문으로 보내주십시오.》
며칠후 그는 로천분광산 1광구 대형굴착기운전공이 되였다.
무게만도 380t이나 되고 높이가 5층아빠트만한 덩지큰 굴착기를 다룬다는것이 쉽지 않을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운전공일이 그처럼 어렵고 힘이 들줄은 몰랐다.해발 800m가 넘는 철산봉에서 한여름이면 굴착기전체가 불덩이처럼 달아올라 땀으로 미역을 감으며 운전을 하고 겨울이면 강추위속에서 높이가 10여m나 되는 굴착기의 팔끝에 매달려 수리정비를 해야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잊을수 없는 영광의 그날 보석같은 애국의 마음을 안고 조국의 부흥과 진보를 위하여 분투하는 청년영웅이 되여야 한다고 하신
주저앉을수도 물러설수도 없는 그길에서 그는 조직과 집단의 지도와 방조를 받으며 6개월만에 굴착기운전과 수리를 자체로 할수 있는 기능을 소유하였다.
당조직과 청년동맹조직에서는 그를 혁신자축하무대에 내세워주었고 영예게시판에도 크게 소개해주었다.자그마한 성과를 두고도 온 련합기업소가 기뻐하며 평가해주자 그의 마음속에서는 그것을 응당한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언제인가 련합기업소에서 한주일동안 도로보수작업을 조직한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광구장을 찾아가 도로작업에 내가 꼭 나가야 하는가, 낮에도 일하고 밤에도 다음날 작업준비를 해야 하는데 좀 고려해줄수 없는가고 제기하였다.
그날 저녁 련합기업소당위원회 책임일군이 그를 찾아왔다.
《지금 사람들은 동무를 기대어린 눈으로 보고있는데 오늘의 행동을 두고 어떻게 생각하겠소.사상적변질은 바로 자기를 특별하게 여기는데서부터 시작되는 법이요.》
오충현동무는 가슴이 철렁하였다.귀중한 청춘시절의 첫걸음을 잘못 뗀 뼈저린 자책과 후회를 안고 인생의 새 출발을 결심하던 때가 언제인데 사랑과 믿음이 커간다고 그것을 응당한것처럼 여기였으니 이것이야말로 배은망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스스로 택한 인생의 참된 길을 자그마한 탈선도 없이 곧바로 걸어가라고 아픈 매도 들어주고 원칙적인 비판도 해주는 일군들과 청년동맹조직의 손길에 이끌려 그는 잘못을 뉘우치고 분발해나섰다.
운전대를 잡은채로 잠에 들었다가도 꿈속에서 이 말을 외우며 벌떡 일어나 일손을 잡았다.때로는 언 밥을 삼키면서도 이악하게 노력하여 해마다 맡겨진 인민경제계획을 150%이상 넘쳐 수행하였다.
그 나날 로력혁신자로, 일하면서 배우는 교육체계에 망라된 대학생으로 자라난 그를 조직과 집단은 1광구 초급단체위원장으로 내세워주었다.
당시 련합기업소적으로 제일 뒤떨어진 그 초급단체에는 맡은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몇마디안팎에 목소리부터 높이는 청년이 두명 있었다.
오충현동무는 그들을 교양대상으로가 아니라 친형제로 여기고 이끌어줄 때 얼마든지 바른길에 세워줄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그들과의 사업에 품을 들이였다.부모없는 그들이 일하면서 추워할세라 솜옷도 안겨주었고 생일이나 명절이면 성의껏 준비한 음식상도 차려주었다.그들에게 자기의 떳떳하지 못한 과거를 이야기해주면서 우리 함께 분발하여 혁신자였던 부모들앞에,
그 나날 두 청년동맹원은 로력혁신자들로 자라났다.
지난해 250만산대발파를 위한 준비작업이 진행될 때였다.
오충현동무는 로천분광산 당조직에 찾아가 청년들로 갱도굴진의 돌파구를 열어제낄것을 제기하였다.당조직에서는 그의 발기를 지지하였다.
청년동맹기발을 갱입구에 세워놓고 굴진속도를 높여나가는 청년들의 앞장에는 오충현동무가 서있었다.그의 능숙한 조직자적역할에 의해 로천분광산의 청년들은 련합기업소적으로 갱도굴진을 계획보다 50여일이나 앞당겨 결속하는데서 선구자의 본때를 떨칠수 있었다.
그 나날 1광구초급단체는 청년전위2중모범초급단체칭호를 수여받았으며 오충현동무는 꿈결에도 소원하던 조선로동당원의 영예를 지니였다.
입당을 심의하는 당세포총회가 진행되던 날 오충현동무는 누구에게도 선뜻 터놓을수 없었던 마음속소원을 꽃피워준 당의 사랑에 목이 메여 끝내 입당청원서를 다 읽지 못하였다.
운명의 갈림길에서 방황하던 자기의 인생을 구원해주시고 고귀한 믿음을 안겨주신
《쓸모없는 버럭처럼 영영 내버려질번했던 저를 따뜻이 품에 안아 오늘처럼 내세워주신
그것은 오충현동무가 생의 은인이신
당세포총회지도를 위해 회의에 참가하였던 련합기업소당위원회 책임일군은 오충현동무의 두손을 뜨겁게 잡았다.그리고 오늘의 맹세를 언제나 잊지 말고 우리
오충현동무가 당세포총회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을 때였다.어둠짙은 마당에서 회의가 끝나기를 기다리던
그후 오충현동무는 련합기업소청년동맹위원회 지도원으로 되였다.
* *
오충현동무의 집에는 그가 5년전 8월 청년절경축행사에 참가하여
사연깊은 그 사진을 우러를 때마다 그는 인생의 새 출발을 하던 잊지 못할 그날에 다졌던 맹세를 더욱 굳히군 한다.
(철산봉과 더불어 보답의 이길을 끝까지 걸으리라!)
글 및 사진 본사기자 김승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