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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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9일 목요일 5면 [사진있음]

마을의 주인들

3대혁명으로 흥해간다

신포시 보주리를 찾아서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농촌이 진보하고 변혁되자면 무엇보다먼저 농업근로자들의 사상정신과 문화기술수준이 혁명적으로, 문명하게 개변되여 모든 농업근로자들이 새시대 사회주의농촌발전에서 주력군의 역할을 훌륭히 감당할수 있게 준비되여있어야 합니다.》

북청군 죽상리를 떠난 취재차는 신포시 보주리를 향해 경쾌하게 달렸다.

차창으로는 갈매기들이 날아예는 아름다운 동해가 비껴흘렀다.

파도에 선체를 흥떡거리며 떠있는 고기배들, 바둑판처럼 규모있는 양식장구역에 남실거리는 하얀 떼들…

볼수록 아름다운 풍치였다.우리의 마음은 동해의 푸른 물결처럼 끝없이 일렁이였다.

어찌 그렇지 않으랴.

우리당 지방발전정책의 정당성과 생활력이 날을 따라 더욱 뚜렷이 발휘되고있는 신포시에 들어선것이다.

그 옛날 《빈포》라 불리우던 고장에 《부자시》의 새 력사가 펼쳐지는 격동적인 현실만으로도 가슴벅찬데 새시대 농촌혁명강령의 밝은 해발아래 희한하게 변모된 또 하나의 선경마을이 이곳에 있다는 소식은 우리를 더욱 기쁘게 하였다.

신포시 보주리, 불과 몇해전까지만 해도 시에서 뒤떨어진 리들중의 하나로 인박혀있던 고장이다.그러나 당의 크나큰 은덕속에 약동하는 새 문명, 새 생활창조의 기운은 새 마을로 향한 동구길의 입구에서부터 확연히 안겨왔다.

마을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의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탄성이 흘러나왔다.지역의 특성이 살아나게 아담하게 꾸려지고 원림록화로 풍치를 돋군 단층살림집들이 한눈에 안겨왔던것이다.

리일군인 김일룡동무를 만나 보주리에서 받은 첫 소감을 이야기하자 그는 새시대 농촌혁명강령실현의 첫해에 120여세대의 새 살림집이 일떠선 후부터 사람들의 생활방식과 일본새가 또다시 달라지고있다고, 몇해어간에 사과나무와 살구나무를 비롯하여 20여종에 수천그루의 나무들이 뿌리내리였으며 새 마을의 4개 인민반이 사회주의생활문화모범인민반이 되였다고 자랑하고나서 이렇게 덧붙였다.

《누구나 보주리사람들이 달라진다고 합니다.사람들이 그 비결에 대해 물을 때면 저는 세폭의 붉은기가 새 인간들을 키우고있다고 말해줍니다.》

세폭의 붉은기가 새 인간들을 키운다!

의미깊은 그의 말에서 우리는 3대혁명을 힘있게 벌려 모든 농업근로자들을 농촌혁명가들로 준비시키며 농업생산의 지속적인 장성을 이룩하고 농촌의 면모와 환경을 개변시키는것을 기본과업으로 내세운 새시대 농촌혁명강령의 생활력이 현실로 실증되고있음을 뿌듯이 느낄수 있었다.

이윽고 김일룡동무는 우리를 제1, 3작업반마을로 이끌었다.

알고보니 두 작업반은 3대혁명붉은기단위였다.이 두 작업반이 2중3대혁명붉은기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에서 뚜렷한 진일보를 내짚고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어느한 살림집에 들어서니 집주인인 남용혁동무가 반갑게 맞아주었다.우리가 찾아온 사연을 듣고나서 그는 얼굴에 홍조를 띠우며 말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전 한때 〈울타리〉가 매우 높았던 사람입니다.》

현재 제3작업반 1분조장으로 일하고있는 그는 지난 시기에는 담당포전의 농사를 잘 짓는것만으로 족했다고 한다.자기 가정, 자기 포전이라는 말밖에 몰랐고 공동작업이 제기되면 이런저런 구실을 대가며 몸을 사리기도 하였었다.

그러나 몇해전 당의 은정속에 새 보금자리를 받아안고 생각을 고쳐먹었다.살림집리용허가증을 안고 새집에 들어서는 순간 얼마나 크나큰 사랑이 자기 생활속에 와닿았는가를 새삼스럽게 절감한 그였다.

농사군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그는 늘 포전에 나가 살다싶이 하였다.

이런 그를 온 집단이 도와주었다.오랜 실농군은 자기의 경험을 배워주었고 또 누구는 뜻밖에 앓아누운 그를 대신하여 포전을 관리해주었다.다수확을 거두었을 때에는 모두가 자기 일처럼 기뻐하였다.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는 자신과 가정, 담당포전에만 극성이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며칠후 리당일군을 찾아간 그는 자기비판을 하였다.그날 리당일군은 오늘의 농촌혁명은 남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으로 여기고 동지들의 기쁨에서 행복을 찾으며 서로가 뜨겁게 위해주고 사회와 집단을 위하여 모든것을 바치는 공산주의적미풍, 집단주의의 위력으로 전진하고 승리하게 된다고, 년로보장을 받기 전까지 성실하게 일한 동무의 아버지는 우리 작업반, 우리 농장이라는 부름을 더 소중히 여기였다고 하면서 이렇게 타일렀다.

참된 인간이였던 아버지처럼 살라고.

나라의 쌀독을 책임진 본분을 다하고 3대혁명붉은기작업반의 영예를 빛내이자면 자기뿐 아니라 모두가 다같이 농사를 잘 지어야 한다는것을 자각한 그는 그때부터 남을 위해 자기를 아낌없이 바치는데서 보람을 찾았다.

분조장이 된 후에는 다른 분조의 농사일을 성심성의로 도와주었다.

언제인가 다른 분조에서 물보장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물길가시기가 벌어졌을 때였다.공사량을 타산해보니 그 분조의 힘으로는 한주일 남짓이 걸려야 했다.남용혁동무는 분조원들과 함께 그들의 작업을 도와나섰다.이것은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모두의 일이고 작업반의 다수확을 위한 일이라고 하면서 너도나도 떨쳐나섰다.하여 물길가시기는 이틀만에 결속되였다.

우리 농장, 우리 작업반, 우리 분조.

자기뿐 아니라 새집의 주인들모두가 《우리》라는 이 부름에 담겨진 뜻을 깊이 새기고 집단주의기풍을 높이 발휘해나가고있다는 남용혁동무의 말을 듣느라니 우리도 더없이 기뻤다.

3대혁명이 사람들을 얼마나 몰라보게 성장시키고있는가 하는 이야기는 제1작업반 농장원 박영수동무에게서도 들을수 있었다.

《전 몇해전까지만 해도 낡은 경험에 매여달려 농사를 짓던 집요한 경험주의자, 선진적인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은 완고한 보수주의자였습니다.》

다수확농장원인 그는 한동안 머뭇거리다가 이렇게 서두를 뗐다.

하늘만 쳐다보던 그가 경험주의, 보수주의라는 굳잠에서 깨여난 계기가 있었다.

네해전 12월 꿈같이 새집을 받아안던 날 그는 농사를 본때있게 지으리라 마음먹었다.그러자면 땅을 기름지워야 한다고 생각한 그는 열두바닥파기는 물론 밤잠을 잊어가며 멀리에까지 나가 도시거름을 실어들이면서 이악하게 농사를 지었다.

그러나 이듬해 가을 담당포전의 작황은 그리 좋지 못했다.꼭같은 종자를 심고 같은 량의 비료와 영양액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포전들의 작황이 더 좋은것을 목격하였다.원인은 다른데 있지 않았다.다른 농장원들은 비료를 한번 주고 영양액을 한번 쳐도 농작물의 생육상태를 따져가며 과학적으로 하였던것이다.

그는 농사는 경험이 아니라 과학으로 지어야 하며 바로 그길에서 3대혁명붉은기단위의 영예도 빛난다는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그때부터 그는 이동통신용농업과학기술봉사프로그람 《황금열매》의 열성가입자가 되였다.그의 생활에서는 농한기란 낡은 말도 헐어버린 옛집처럼 가뭇없이 사라져버렸다.

우렝이유기농법을 도입하여 담당포전에서 해마다 다수확을 이룩하고있는 그는 지난해에 1t의 알곡을 증수하였다.올해에도 농사를 본때있게 지어 기어이 다수확을 이룩하겠다고 말하는 그의 열정적인 모습은 지식형의 농업근로자가 되여 세폭의 붉은기앞에 떳떳하려는 이 고장 사람들의 강렬한 지향을 그대로 느끼게 하였다.

《우리 보주리사람들의 문화수준도 종전과는 달라졌습니다.》

박영수동무의 집문을 나서는 우리에게 김일룡동무가 하는 말이였다.그리고는 제3작업반 농장원 리향심동무의 집으로 안내하였다.

깨끗하게 정리된 집뜨락에 들어서니 갖가지 과일나무들이 울타리를 따라 가지런히 심어져있었다.창문가에 비낀 화분들은 또 어떠한가.

척 보기에도 깐진 살림군의 손길이 구석구석 미치고있다는것이 대번에 알리였다.우리의 마음을 알아차린듯 일군은 숫저워하는 리향심동무를 내세우며 농장포전과 집터밭을 가꾸는데서는 실농군이고 자기가 사는 집을 깨끗이 거두고 관리하는데서는 깐진 살림군이라고 하는것이였다.

리향심동무는 사실 몇해전까지만 해도 낡은 생활인습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고 집안팎거둠에도 별로 큰 관심을 돌리지 않았다.그 습성은 새집에 보금자리를 편 후에도 쉬이 고쳐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어느한 자본주의나라의 농촌살림집가격에 대한 자료가 실린 출판물을 읽게 되였다.글줄을 따라가던 그는 저으기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다.

자기가 쓰고사는 수십㎡짜리 농촌살림집의 가격이 그 나라에서는 수십만US$라는것이 아닌가.

그 나라에서 집값을 마련하자면 온 가족이 수십년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돈을 벌어야 한다는 대목을 몇번이나 읽어보며 그는 눈굽을 적시였다.

자본주의사회에서라면 상상조차 할수 없는 희한한 살림집을 평범한 농장원에게 무상으로 배정해준 나라의 은덕을 잠시나마 잊고 주인의 본분을 다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으로 얼굴을 들수 없었다.

사랑의 보금자리를 번듯하게 꾸리고 나도 3대혁명붉은기작업반의 농장원답게 떳떳이 살자.

그때부터 그는 터밭에서도 꽃을 가꾸고 집안에서도 꽃을 키웠다.옷차림새는 물론 말과 행동도 달라져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다른 농장원들도 생활문화확립에 너도나도 떨쳐나섰다.

새 문명의 주인이 되려는 열의가 높아지는 속에 《꽃집》이 하나둘 늘어나고 저녁이면 집집마다에서 노래소리가 울려나오고있다는 그의 이야기는 들을수록 우리의 마음을 흥그럽게 해주었다.

세폭의 붉은기가 키워낸 새 인간들이 어찌 이들뿐이랴.

본위주의를 부리던 지난날과 대담하게 결별하고 다른 작업반을 성심성의로 도와주는 미풍의 소유자로 성장한 박광명동무, 잘못 살아온 지난날을 탓하지 않고 새 농촌살림집을 안겨준 당의 은덕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겠다고 하면서 과학농법을 열심히 터득해가고있는 오종환동무를 비롯하여 포전에 나가면 다수확자로, 무대에 서면 배우로, 오락회때는 시인으로 불리우는 농장원들이 갈수록 늘어난다는 이야기는 들을수록 흐뭇하였다.

그 누구를 만나보아도, 어느 집에 들려보아도 궁궐같은 새 보금자리를 안겨준 당의 은정에 대한 고마움의 목소리를 들을수 있었고 사상의식도, 창조력과 일본새도, 문화수준도 종전과는 판다른 새 인간으로 성장해가고있다는 자랑뿐이였다.

정녕 우리가 돌아본 새 선경마을은 꽃과 나무로 하여서만 아름다운것이 아니였다.3대혁명의 기치높이 더 좋은 래일을 앞당겨가는 미더운 주인들의 모습이 새 마을의 흐뭇한 새 풍경을 펼치고있었다.

돌아볼수록 정이 들고 만나볼수록 감동깊어지는 취재길을 마무리하고 보주리를 떠나는 우리의 귀전에 마을사람들이 한결같이 터치던 목소리가 쟁쟁히 되울려왔다.

《당에서 가리키는대로 3대혁명을 해야 흥하고 잘살수 있습니다.》

글 본사기자 심학철

본사기자 신철

사진 본사기자 신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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