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덕등판의 새 모습
강계염소목장 사덕2분장을 찾아서
10여년전까지만 하여도 사덕등판은 사람들의 발길이 미치지 않던 곳이였다.그러던 이 외진 등판에 오늘은 염소떼가 흐르고 현대적인 설비들을 갖춘 젖가공기지가 번듯하게 꾸려졌다.이 소식은 우리로 하여금 서둘러 사덕등판에 대한 취재길에 오르게 하였다.
강계시내를 벗어나 도로를 따라 한동안 차를 타고 달리니 흰구름을 떠이고있는 등판이 우리앞에 나타났다.함께 동행한 강계염소목장 지배인 허경심동무가 저 등판이 바로 사덕등판이라고 말하였다.
가파로운 산길을 따라 사덕등판에 오른 우리는 저도 모르게 탄성을 올렸다.등판이라기보다 경치좋은 휴양소에 들어선듯한 느낌이 들었던것이다.
눈뿌리 아득히 펼쳐진 수백정보는 실히 될 자연풀판, 방풍림으로 둘러막힌 곳에 조화롭게 들어앉은 염소호동들이며 틀지게 자리잡은 젖가공장과 살림집들, 사무청사, 흰구름마냥 무리지어 흐르는 염소떼들…
사덕등판의 전경은 그야말로 한폭의 그림을 방불케 하였다.
《우리는 조국의 미래인 어린이들을 잘 키우기 위한 사업에 언제나 깊은 관심을 돌려야 합니다.》
우리는 사덕2분장 분장장의 안내를 받으며 먼저 상사덕으로 향하였다.
그곳에 가면 혁신의 주인공들인 《산매》부부를 만나게 된다는 분장장의 이야기는 우리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알고보니 남편 심철동무와 그의 안해는 제대군인들이였다.
어떻게 되여 이런 외진 등판에 삶의 좌표를 정하게 되였는가고 묻는 우리에게 심철동무는 당에서 중시하는 문제를 제일 앞장에서 풀어나가야 할 사람들이 바로 우리 제대군인들이 아닌가고 하면서 못잊을 그날로 추억의 노를 저어갔다.
사실 그가 목장에 왔을 당시까지만 해도 등판에는 염소기르기에 알맞춤한 풀들이 많이 자라고있었지만 해발고가 높아 누구도 선뜻 축산기지를 꾸릴 용단을 내리지 못하고있었다.
바로 이러한 때 허리치는 생눈길을 헤치며 등판으로 오르는 사람들이 있었다.도와 목장의 일군들이였다.사덕등판의 여러곳을 밟아본 그들은 여기에 축산기지를 내올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였다.
그로부터 얼마후에는 인적드문 이곳 등판에 분장이 새로 일떠서고 염소기르기가 대대적으로 벌어지게 되였다.
그때로부터 적지 않은 세월이 흘렀다고 하면서 심철동무는 이제는 염소들이 병에도 잘 걸리지 않고 많은 젖을 낸다고, 이제 얼마후이면 1 000여마리나 되는 염소가 이곳으로 올라오게 되는데 그러면 온 등판에 염소들이 차넘칠것이라고 자랑하는것이였다.
그의 이야기를 흐뭇하게 듣는 우리의 눈에 멋쟁이건물이 안겨왔다.가락맞게 울리는 기계동음에 이끌려 가보니 현대적인 설비들이 갖추어진 젖가공기지였다.
해발고가 1 300여m나 되는 등판에 이런 기지까지 있다는것이 놀랍기만 하다는 우리에게 지배인은 이곳에 젖가공기지를 일떠세울것을 발기하고 건설에 필요한 모든것을 우선적으로 보장하도록 빈틈없는 조직사업을 안받침한 도당책임일군에 대한 이야기며 가파로운 산길로 젖가공설비들을 운반할 때 설비가 상할세라 담요로 감싸고 운반했다는 한 종업원에 대한 이야기, 하루빨리 젖가공설비들을 능숙하게 다루는 기능공으로 준비하기 위해 맡은 기대에 정통하느라 밤을 밝히며 애쓰던 청년들에 대한 이야기 등을 들려주었다.
어느덧 퍼그나 시간이 흘러 석양노을에 사덕등판이 곱게 물들자 염소들을 몰고 돌아오는 방목공들이 보이였다.
등판에 흐르는 염소떼는 노을빛과 더불어 더욱더 이채롭게 안겨왔다.
우리와 만난 방목공처녀는 흐르는 땀을 훔치며 당의 혜택속에 무럭무럭 자라나는 아이들을 그려보면 힘든줄 모르겠다고 말하였다.
우리는 이들의 성실한 땀과 노력이 더 좋은 결실을 맺게 되리라는것을 확신하였다.석양노을이 혁신의 기상으로 약동하는 분장을 아름답게 장식하며 사덕등판을 더욱더 붉게 물들이고있었다.
글 특파기자 고철명
사진 본사기자 리강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