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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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13일 월요일 4면 [사진있음]

조국이 있어야 대학교정도, 우리의 미래도 있다

김일성종합대학 교원, 학생들의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투쟁행로를 더듬어


얼마전 창립 80돐을 뜻깊게 맞이하기 위해 들끓고있는 김일성종합대학을 찾았던 우리는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이곳 교원, 학생들이 세운 위훈자료에 대하여서도 알게 되였다.

조국이 가장 어려운 때 김일성종합대학의 첫 세대 교육자들과 학생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명령을 높이 받들고 청사에 길이 남을 불멸의 위훈을 세움으로써 조국이 있어야 대학교정도, 우리의 미래도 있다는 진리를 력사에, 후배들앞에 고귀한 유산으로 남기였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김일성종합대학은 당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제일생명으로 하는 대학의 자랑스러운 력사와 전통을 변함없이 고수하고 세대와 세기를 이어 빛내여나가야 합니다.》

전쟁 전 기간 3명이 공화국영웅칭호를, 20명이 국기훈장 제1급을, 15명이 국기훈장 제2급을 수여받은것을 비롯하여 2 289명의 수훈자들을 배출.

룡남산의 아들딸들은 이렇게 펜을 총으로 바꿔잡고 전선과 후방에서 용감히 싸워 조국의 존엄과 명예를 끝까지 지켰고 성스러운 모교의 명함을 영광스럽게 빛내이였다.

이것은 김일성종합대학이 영광스러운 80년의 자랑찬 연혁사와 더불어 당과 조국앞에 쌓아올린 공적중의 귀중한 공적인 동시에 력사적인 당 제9차대회 결정관철을 위한 투쟁에서 우리모두가 따라배워야 할 또 하나의 교본으로 된다.


《김장군님 부르시는 곳으로 가자!》


1950년 6월 28일부 《로동신문》에는 김일성종합대학 교원, 학생들이 전선으로 탄원하기 위한 궐기모임을 진행하였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리였다.

김일성종합대학에서는 27일 11개 학부 남녀학생들이 각각 회의를 열고 조국을 위하여 전선에 총동원할것을 결의하였는바 이에 참가한 학생은 력사학부 2학년 조용규, 외국어문학부 3학년 염기순, 경제학부 3학년 백승필을 비롯한 2 800여명이다.》

50여년간을 대학에서 사업하고있는 김일성종합대학 혁명사적관 공훈사적강사 리순영동지는 우리에게 2 800여명이면 당시 학생수의 97%에 해당되는 인원이였다고 하면서 전쟁직후 룡남산기슭에 차넘쳤던 탄원열기에 대하여 상세히 이야기해주었다.

모든 힘을 전쟁승리에로 동원할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방송연설에 접한 룡남산은 그야말로 불도가니처럼 끓어번졌다.

연 이틀에 걸쳐 진행된 전선탄원궐기모임들에서는 무려 180여명에 달하는 학생들이 결의토론을 하였다고 한다.

그때의 상황과 토론들에 대하여 다 이야기할수는 없지만 대학의 부피두터운 연혁사를 펼쳐보느라면 원쑤격멸의 의지로 높뛰는 심장의 박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앞을 다투어 연탁으로 달려나와 격동된 심정을 토로하던 열혈청춘들의 목소리가 귀전에 생생히 들려오는것만 같다.

《나는 자기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전쟁터로 나갈것이다.》, 《나는 나의 조국의 부강발전과 학생청년들의 행복한 장래를 위하여 전쟁대렬에 나서겠다.》, 《우리 김장군님이 부르시는 곳으로 가자.우리는 행복한 학원을 유린당하지 않기 위하여, 전쟁에서 부상당한 인민군대를 간호하기 위하여 인민군대에 지원한다.》…

이런 열기띤 토론에 이어 김일성장군의 노래》가 장내를 진감하며 울려퍼지였다.

이렇게 룡남산의 아들딸들은 용약 전선으로 달려나갔다.

김일성종합대학 교직원, 학생들은 비록 군사복무경력이나 적과 싸워본 경험은 없었지만 빠른 시일안에 군사기술과 전투기재에 정통하고 싸움에서 무비의 용감성을 발휘하였다.

신문 《민주청년》 1953년 9월 3일부는 룡남산의 장한 아들딸들의 위훈에 대하여 《전화속에서 배우며 싸웠다》라는 제목으로 이렇게 전하였다.

《…

김일성종합대학이 낳은 공화국영웅 정연팔동무를 비롯한 수많은 학생들이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당과 수령을 위하여 마지막피 한방울을 다하여 싸움으로써 청사에 길이 빛날 위훈을 세웠다.

공화국영웅 정연팔동무는 전쟁전 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학생이였다.

그는 전선에 출동하여 땅크부대에 배속된 보병소대장으로 봉강, 조막산, 성진, 북청, 원산 등 전투에 참가하였다.

그후 원쑤들의 비행기사냥에서도 로획한 무기로 고사기관총을 조립하여 적기 4대를 격추하는 빛나는 위훈을 세웠다.…

이러한 영웅적위훈은 다만 남자학생들에게만 있는것이 아니다.

대학출신의 많은 녀학생들이 또한 영용한 조선인민의 충직한 딸로서 조국과 인민앞에 자기의 애국적열성을 다하여 과감하게 투쟁하였던것이다.

전쟁전 대학에서 공부하던 표정희동무는 간호원으로 복무하였다.

그는 최전선의 어느한 고지에서 적락하산부대의 포위로부터 12명의 환자들을 생명을 걸고 구원하였다.》

전선에 나간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가운데는 한몸이 그대로 육탄이 되여 2대의 적땅크를 까부시고 3개의 적중기화점과 적포진지를 파괴한 공화국영웅들도 있다.

김일성종합대학 학생이였던 리환식동지도 고성남쪽 884고지방어전투에서 17일동안이나 적의 공격을 물리치고 적 350여명을 살상하는 위훈을 세웠다.

당시 전선으로 달려나간 김일성종합대학 교원, 학생들의 대부분이 인민군대에서 지휘관으로 활동하였다고 한다.

법학부 학생이였던 최구현동지는 전쟁이 시작되자 선참으로 인민군대에 입대하여 군사지휘관으로 용감히 싸웠으며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에는 송악산밀림지대를 근거지로 하여 적들과의 투쟁을 과감히 벌렸다.

그는 탄원궐기모임에서 《우리를 키워주고 가르쳐준 조국과 인민에게 목숨을 바쳐 복무할 시기가 닥쳐왔다.》라고 웨치면서 전선으로 탄원하였고 노도와 같이 진격하는 부대의 선두에서 항상 모범적인 군사지휘관으로 용감히 싸웠다.

그가 송악산일대에서 빨찌산장풍지대 지대장으로 활동하던 1950년 11월 어느날 밤이였다.

그때 최구현동지는 적 한개 대대가 부대가까이의 어느한 지역에 몰려들었다는 정찰보고를 받게 되였다.

적들의 기도를 간파한 그는 대담하게 먼저 들이칠것을 결심하였다.하여 그의 인솔밑에 불과 14명으로 무어진 기습조는 그날 밤 적들이 도사리고있는 곳을 불의에 기습하여 적유생력량에 막대한 손실을 주고 각종 무기들을 수많이 로획하는 전과를 거두었다.그후에도 그가 지휘한 부대는 적후에서 적의 통신망을 파괴하고 적을 교란하는 한편 강점지역의 인민들에게 승리의 신심과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는 정치선전사업을 진행하였다.그 하나하나의 전투에서 거둔 빛나는 전과는 원쑤들을 전률케 하였다.

조국해방전쟁사에 가장 가렬하고 가장 장기적인 격전인 동시에 영웅이 제일 많이 배출된 전투로 기록된 1211고지방위전투!

바로 이 전투에서 리수복영웅을 배출한 중대가 김일성종합대학출신인 렴종률동지가 정치부중대장으로 사업한 구분대라는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리수복영웅이 희생된 후 피절은 그의 군복에서 렴종률동지는 작은 병사수첩을 찾게 되였다고 한다.거기에는 영웅이 지은 시 《하나밖에 없는 조국을 위하여》도 적혀져있었다.

렴종률동지에 의해 오늘도 우리 인민들에게 널리 애독되고있는 이 유명한 시가 세상에 전해지게 되였다.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교편을 잡고있다가 종군기자로 활동한 박팔양동지는 대학교직원, 학생들의 전투위훈에 대하여 시 《그 이름 받들어 용감히 싸우리라》에서 이렇게 격조높이 구가하였다.

원쑤들이 지른 전쟁의 불길로 하여

하루아침에 그들은 펜대를 던지고

든든한 손아귀에 총대를 갈아잡고

두려움없이 조국방위에로 내달았나니

아 아 그곳 그 보금자리에서 자라난

수천의 용맹한 범들이여! 수리개들이여!

한목숨 아낌없이 조국에 바쳐싸운

수많은 영웅들이여! 우리 학생들이여!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의 품속에서 성장한 룡남산의 아들딸들은 이렇게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앞에서는 생각도 실천도 하나였다.수령께서 부르시는 곳이 바로 우리가 설 자리이다!

이 투철한 신념으로 룡남산의 첫 세대는 생사를 판가리하는 준엄한 전쟁시기에 빛나는 삶의 자욱을 새기였다.


학생증을 가슴에 품고 싸운 군인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의 투쟁내용을 담은 한편의 예술영화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우리 대학의 학생증에는 위대한 장군님의 존함이 모셔져있지 않나요.이 학생증은 단순히 대학생의 증서가 아니라 장군님의 친자식, 조국의 기둥감이라는 믿음의 상징이예요.…》

이 작품은 김일성종합대학 교원 손광수선생이 대학창립 50돐을 맞으며 쓴 영화문학에 기초하여 만든것이다.

그때를 돌이켜보며 손광수선생은 이 말은 단순히 영화의 대사가 아니라고,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은 언제나 학생증을 가슴에 품고 싸웠다고 감회깊이 추억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은 전쟁의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조금도 굴함없이 자기의 청춘도 생명도 다 바쳐 희생적으로 잘 싸웠다고 하시면서 바로 이것은 그들이 자기들에게 모든 행복과 배움의 길을 열어준 당과 조국의 고마움을 잘 알고 다시는 어제날과 같이 망국노의 생활을 되풀이할수 없다는것을 똑똑히 깨달았기때문이라고 교시하시였다.

룡남산의 아들딸임을 증명하는 학생증의 가치와 무게에 대하여 너무나 잘 알고있는 이들이였기에 가슴속에 언제나 그것을 소중히 간직하고 수령의 명령관철에서 그 누구보다 충실하였고 죽음앞에서도 그처럼 용감하였다.

김일성종합대학 학생이였던 김지영동지는 수기 《잊을수 없는 전우들》에서 이렇게 썼다.

《…

대학시절 우리와 한학급 학생이였던 김동무가 희생되였다는 뜻밖의 소식이였다.

그 동무는 자강도 산간도시의 중학교에서 민청위원장(당시)사업을 하다가 졸업후 우리 김일성종합대학에 입학한 동무였다.야전병원을 찾았을 때 군의소장이 침통한 어조로 나를 보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김동문… 정말 뜻밖이였소.그저께 우리 야전병원이 적기들의 공습을 받았소.그때 김동문 7호병실의 중환자들을 구출하다가…〉

나는 군의소장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부상병들은 다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고 그만… 기총탄에 복부관통상을 입었는데 치명상이였소.그 동무를 장례할 때 사품을 정리하였는데 안주머니에 깊숙이 간수한것이 있어 꺼내보니 김일성종합대학 학생증이였소.〉

피묻은 학생증을 보는 순간 나의 두눈에서는 눈물이 걷잡을수 없이 흘러내렸다.》

전쟁시기 간호장으로 싸우면서 2 000여명의 환자들을 완쾌시킨 안정실동지도 전쟁전에는 화학부의 학생이였다.

병사에게는 혹간 쉴참이 있을수 있어도 간호원에게는 휴식이 따로 있을수 없었다.깊은 밤에도, 이른새벽에도 환자들을 돌보는 간호원들의 눈은 언제나 잠들줄 몰랐다.단 한명의 병사가 남아 싸운다고 해도 거기에는 간호원이 있어야 한다는 결사의 각오를 가지고 전투때에는 용감히 싸우다가도 전투가 끝나면 환자들을 돌보고 부상병들을 호송하였다.

호흡이 멎어가는 중상자의 피고름을 입으로 빨아내여 숨길을 열어주고 욕창이 생긴 환자를 두손으로 받쳐든채 한밤을 새우기를 그 몇번…

그러던 어느날 군의소로는 심한 부상을 당한 병사가 또다시 들어왔다.

생명이 경각에 다달은 환자를 보는 순간 안정실동지는 주저없이 한팔을 걷어올리고 제손으로 직접 주사바늘을 꽂았다.

그리고는 곁에 서있는 간호원에게 다른 한팔에서도 피를 뽑아달라고 부탁했다.

전우를 무조건 살려내야 한다는 비상한 각오를 안고 두팔에서 동시에 피를 뽑는 안정실동지의 모습은 그대로 결사전에 나선 전투원의 모습그대로였다.

그는 이렇게 전쟁 전 기간 60여명의 환자들에게 자기의 피를 수혈해주었다.

전쟁전에는 조선어문학부 학생이였고 그후에는 학부장으로 사업한 김금석동지가 쓴 수기 《화선일기》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

《1951년 8월 10일

오늘 사단에 당원증을 수여받으러 가라는 련락이 왔다.

그러나 나는 갈수가 없다.당장 전투가 벌어지겠는데 군관인 내가 자리를 뜰수 있겠는가.

내가 입당하려는 목적은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더 많은 일을 더 잘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내가 사단에 가서 당원증을 받는 그 순간에 이 고지는 불바다가 될수도 있다.

만약 내가 고지를 떠나있는 동안에 우리의 방어지역이 적들에게 돌파당한다면 당원증을 가슴에 품은들 나의 마음이 과연 얼마나 기쁘겠으며 또 당원된 영예가 그 어디에 있겠는가.

반대로 내가 이 방어전투에서 쓰러진다 해도, 하여 나의 가슴에 평생소원이던 로동당의 당원증을 품어볼수 없게 된다 해도 나는 정녕 당의 아들, 조국의 아들로 부끄럽지 않을것이다.

그렇다.이번 전투를 끝내고 떳떳하게 사단에 가서 당원증을 수여받자.

1951년 8월 29일

밤새 주룩주룩 그치지 않고 내리던 비가 아침녘에야 좀 멎는가싶더니 오후에 불어온 바람이 또 먹장구름을 몰아온다.

아, 내 심정도 울적하다.한팔이 없는 어깨를 들여다보니 기가 막히고 억울하고 분노로 가슴이 타번진다.

상처가 깨끗이 아문다 해도 나는 전투원으로서의 역할을 할수 없다.나는 이제 무엇을 할것인가.나는 의식이 회복된 다음부터 이 말을 백번도 더 외웠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무엇을…

나는 다시 대오로 돌아가겠다.받아줄가?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난 아직도 싸울수 있다.수류탄도 던질수 있고 총탄도 재울수 있다.무기청소도 할수 있고 하다못해 중기방열통에 랭각수를 부어넣을수도 있다.

그렇다.나는 싸울수 있다.

…》

불비쏟아지는 전선에서 발휘된 이런 무비의 희생성과 용감성은 유명한 백송리정신을 낳는 자양분으로 되였다.

1951년 8월 3일 군사위원회 특별지시문 《대학졸업생 및 대학생소환에 관하여》에 이어 12월 8일에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명령 《입대전 학생조사에 대하여》, 1952년 1월 26일에는 최고사령부 지령 《입대전 대학생소환에 대하여》가 전선에서 싸우고있는 조선인민군 각 부대들에 하달되였다.

세계전쟁사에 있어본적이 없는 사랑의 특별명령을 받들고 김일성종합대학의 학생들도 교정으로 돌아왔다.

1952년 4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백송리에 자리잡고있던 김일성종합대학을 몸소 찾아주시였다.

군대식으로 힘있게 구령을 내리고 영접보고를 올리는 학생들이 모두 제대군인들이라는것을 아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의 전투위훈을 높이 평가해주시며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무엇보다도 공부를 잘해야 한다.당은 전후복구건설을 예견하고 어려운 전쟁을 하면서도 동무들을 공부시키고있다.동무들은 당의 의도를 잘 알고 더 열심히 배워 자기의 실력을 부쩍 높여야 한다.승리의 날은 멀지 않았다.동무들은 전선에서 돌아오지 못한 전우들의 몫까지 배워야 한다.

그러시면서 이제부터는 학습전선에서 잘 싸우라고 힘주어 교시하시였다.

학습도 전투이다! 바로 이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준엄한 조국해방전쟁시기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에게 주신 명령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총을 펜으로 바꾸어쥔 어제날 화선병사들에게 그들모두가 학습전선에서도 잘 싸우도록 전투명령을 내리신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명령을 높이 받들고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은 당이 맡겨준 또 하나의 전선인 학습전선에서도 자신들이 지닌 충실성을 높이 발휘하였다.

전쟁시기여서 모든것이 부족하였다.

하지만 이들은 종이가 떨어지면 모래판우에 글을 썼고 밤을 새워 교과서를 돌려가며 공부를 하였다.

불타는 고지에서 나무껍질에 맹세문을 쓰던 그 정신으로 자기의 밥그릇을 덜어서 쑨 풀로 자체로 학습장을 만들어 리용하기도 했다.

탄알이 떨어지면 수류탄으로, 수류탄이 떨어지면 육탄으로 원쑤의 숨통에 복수의 총창을 꽂던 그 기백으로 학습과 과학연구사업을 줄기차게 벌려나갔다.

이들의 가슴속에 간직된 불같은 충성의 맹세는 백송리를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께 삼가 올린 헌시 《수령님께 드리는 노래》에 그대로 맥맥히 흐르고있다.

피끓는 심장에 혁명의 불길은 타올라라

미제를 쓸어눕힌 승리한 이 땅우에

공산주의의 조국을 높이 세우리라!

김일성장군님의 나라를 온 세계에 빛내리라!


학과학습에서 특출한 모범을 보인 대학생들에게 수여하는 김일성장학금도 바로 이 시기인 1952년 4월 3일 내각결정 제64호로 제정되였다.

전화의 나날 군인증과 함께 학생증을 가슴에 품고 수령의 명령관철의 전구에서 돌격로를 열어나간 전세대들의 투쟁정신은 김일성종합대학의 력사와 더불어 숭고한 혁명정신으로 길이 빛나고있다.

* *

1950년대 준엄한 포화속에서 더욱 굳세여진 룡남산의 특질을 자기의 유전성으로 하여 오늘도 김일성종합대학은 세대와 세기를 이어 조국과 인민앞에 지닌 성스러운 사명과 임무를 원만히 수행해나가고있다.

조국이 있어야 행복도 미래도 있고 수령의 의도를 결사관철하는데 삶의 가치와 존엄도 있다는 고귀한 철리를 다시금 새겨준 룡남산의 첫 세대의 공적과 값높은 삶은 전승사와 더불어 영원할것이다.

본사기자 김성민

허원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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