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의 날에 태여난 공장대학
가렬처절했던 전쟁의 불길속에서 태여난 전설같은 이야기들은 오늘도 만사람의 심금을 울려준다.
그가운데는 일하면서 배우는 공장대학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파괴의 대명사로 불리우는 엄혹한 전쟁속에서 승리의 래일이 그려지고 이를 떠메고나갈 인재들이 자라난 이 하나의 사실을 통해서도 천재적인 예지와 필승의 신념을 지니시고 우리 인민을 빛나는 승리에로 이끌어주신
우리 삼가 주체조선의 국보적도서
1951년 1월 어느날
이날 공장일군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공장복구방향과 방도적문제를 토의하시던
일제식민지통치의 후과로 나라에는 기술인재가 절대적으로 모자랐고 더우기 병기생산에 대한 기술과 경험을 가지고있는 기술자들은 거의나 없었다.물론 전시조건에서도 외국에 학생들을 보내여 공부시키고는 있으나 그들만을 가지고서는 모자라는 기술인재를 다 충족시킬수 없었다.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계시던
순간 일군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한것은 여직껏 살아오면서 일하면서 배우는 대학이라는것을 본적도 들은적도 없었기때문이였다.그것도 평화시기가 아닌 준엄한 전쟁시기에…
로동자들이 생산에서 리탈함이 없이 일정한 고등교육체계에 망라되여 선진과학과 기술을 마음껏 배울수 있게 하는 공장대학,
정녕 그것은 천재적인 예지와 선견지명, 담대한 배짱과 웅지를 지니신 절세의 위인께서만이 내놓으실수 있는 새롭고 독창적이면서도 가장 혁명적인 교육체계였다.
하지만 일군들은 공장대학에 대한 개념조차 부족한데다 처음 해보는 일인지라 무엇부터 어떻게 시작하고 전개해나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있었다.
그러한 때인 1951년 2월 어느날 군자리를 또다시 찾으신
기술인재양성사업을 잘하는것은 공장앞에 나선 중요한 과업의 하나이라고 하시면서
공장대학의 창설과 운영에서 나서는 문제들에 대하여 명백히 밝혀주시는
이날에 있은
어찌 그뿐이랴.
당시 전국의 거의 모든 대학들에도 교원들이 부족하였지만 전선에서 소환한 대학교원들을 제일먼저 이곳에 파견하도록 하시고 또 언제인가는 일부 교원들의 건강이 좋지 못하다는것을 아시고는 그들의 건강회복에 좋은 귀중한 약까지 보내주신
뜨거운 사랑과 은정을 받아안던 그 나날 군자리병기공장의 일군들과 교원들이 터친 격정은 그 얼마나 컸던가.
이렇듯
전화의 나날에 태여난 공장대학, 이것은
본사기자 리현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