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고불멸의 항쟁사를 길이 전하는 혁명의 성지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를 찾아서(1)
조국해방 81돐이 하루하루 다가오고있는 이 시각 우리 인민은 해방의 은인이신
정녕 불패의 사회주의강국으로 빛을 뿌려온 우리 조국의 승승장구의 로정과 보다 휘황찬란한 래일, 적극적인 개척과 견결한 분투로 사회주의전면적발전기를 장엄하게 열어나가는 우리 인민의 강의하고 존엄있는 모습은
본사편집국은 조국해방의 날을 맞으며 혁명의 성지 백두산에로 달리는 전체 인민들과 인민군장병들의 열화같은 마음을 담아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에로의 련재기행을 내보내게 된다.
렬차의 차창으로는 아름다운 조국의 산천과 변혁으로 들끓는 시대의 숨결이 벅차게 안겨들었다.구름우로 련면히 뻗어간 수려한 산발들과 수정같이 맑디맑은 골짜기의 내물들이 량강도특유의 고유한 향취를 자아내고 산굽이 몇개를 지나기 바쁘게 앞다투어 다가드는 아름다운 새 농촌마을들이 유정한 정서를 불러일으켰다.
나날이 젊어지는 조국의 강산은 이채롭고 독특한 모습들을 끝없이 펼쳐보이고있었지만 우리의 생각은 어느 사이엔가 이번 기행길의 첫 시작점인 혜산시에 가있었다.
혜산,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에도
《백두대지는 우리 혁명의 만년초석이 다져진 성지입니다.바로 이 광활한 백두대지에서 우리 혁명이 력사의 닻을 올렸으며 우리 혁명의 뿌리인 백두의 혁명전통이 창조되였습니다.》
우리가 혜산시에 도착하니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이 제일먼저 안겨왔다.
일제의 발굽밑에 짓밟히는 사랑하는 조국산천을 가슴아프게 바라보기도 하시고 적진을 꿰뚫어보시며
한없이 경건한 마음 안고 층계를 오른 우리는
지금으로부터 70년전인 1956년 6월
그날
압록강!
그 용용한 흐름을 바라볼수록
조선아, 조선아, 나는 너를 떠난다.너를 떨어져서는 한시도 살수 없는 몸이지만 너를 찾으려고 압록강을 건는다.압록강만 건느면 남의 나라 땅이다.그러나 남의 땅에 간들 내 너를 잊을소냐.조선아, 나를 기다려다오.
이런 생각을 하시다가는 《압록강의 노래》를 부르시던 우리
조선이 독립하지 않으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비장한 맹세를 다지시며 압록강을 건느신 그날로부터 우리
압록강의 저 물결을 따라가면 우리
더듬을수록 깊어만지는 생각을 안고 우리는 괘궁정을 내려 다음로정인 유서깊은 고장 보천보를 향해 걸음을 다그치였다.
보천보!
올적마다 늘 몸보다 마음이 먼저 달려가군 하는 이곳은 짓밟히고 억눌린 우리 인민에게 조선은 죽지 않고 살아있으며 일제와 맞서싸우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필승의 신심을 안겨주신 항일의 전설적영웅이신
보천보에 거의 다달으자 항일전의 그날 방차대가 기관총을 걸어놓았던 절벽바위가 안겨오고 그 기슭을 유유히 감돌아흐르는 가림천의 여울물소리가 뜨거운 추억을 불러왔다.
우리 인민이 력사의 땅 보천보를 늘 마음에 안고 사는것은 바로 여기에 굴할줄 모르는 조선사람의 고귀한 넋과 정신이 깃들어있기때문이며 크지 않은 북변의 시가에 타오르던 혁명의 홰불이 근 한세기가 흐른 오늘까지도 자주의 억센 신념과 무한한 혁명적열정을 백배해주기때문이다.
지금도 귀기울이면 암흑에 잠긴 강토를 밝히며 활활 타오르는 삼단같은 불길을 가리키시며 이 나라 동포들에게 하시던 빨찌산
《여러분! 저 불길을 보십시오.거세차게 타번지는 저 불길은 놈들의 최후를 보여주고있습니다.저 불길은 우리 민족이 죽지 않고 살아있으며 날강도 일제놈들과 싸우면 승리할수 있다는것을 온 세상에 보여주고있습니다.》
진정 보천보에 홰불을 올리시여 온 나라에 항일전의 불길을 더욱 세차게 지펴주신 우리
우리는 일제의 경찰관주재소와 소방회관, 면사무소를 비롯한 적통치기관들이 조선인민혁명군에 의해 순식간에 습격소탕된 그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보천보혁명박물관 관장 리영옥동무의 해설을 들으며
항일의 빛나는 혁명전통이야말로 우리 혁명의 영원한 생명선이라는 삶과 투쟁의 고귀한 진리를 더욱 뜨겁게 새기며 우리는 자지러진 총소리가 오늘도 곁에서 들려오는듯싶은 보천보전투지휘처에 이르렀다.
지휘처자리에는 당시 이곳에 서있었던 황철나무가 유리관속에 보존되여있었다.
우리는 치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경찰관주재소로부터 지휘처가 너무나 가까운 곳에 자리잡고있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발걸음으로 재여보니 불과 180여자국이였다.관장은 우리를 보고 그 거리는 100여m라고 말했다.그는 습격전투에서 사령부가 전장으로부터 100여m밖에 되지 않는 곳에 위치한 실례는 세계전쟁사에 없다고 하면서 이 한가지 사실만 보아도
우리는
지금도 근 90년전 보천보전투의 메아리를 담아싣고 흐르는 가림천가에는
동상은 1937년 6월 4일
보천보의 홰불과 더불어 온 세상에 알려지게 된 가림천은 오늘도 우리
총대의 숲인듯 울창한 이깔나무숲이 설레이는 곤장덕으로 우리는 발걸음을 옮기였다.보천보시가지의 전경이 예나 지금이나 한눈에 안겨오는 력사의 언덕이다.
보천군인민들의 열화같은 지성과 충성의 마음에 받들려 더욱 훌륭하게 개건되여가는 보천보혁명박물관, 원상그대로 보존되여있는 보천보의 옛 거리, 몇해동안에 산과 물을 다스려 그 어떤 큰물에도 끄떡없게 변모된 가림천호안, 곤장덕지구에 새로 일떠선 수백세대의 현대적인 살림집들, 읍농장, 꽃봉농장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 펼쳐진 산간특유의 새 농촌풍경…
세월은 멀리 흐르고 많은것이 변모되였지만 붉은기를 휘날리며 보천보거리에 들어서는 답사행군대오는 항일유격대오에 넘치던 그 정신이 한점의 변색도 퇴색도 없이 련면히 이어지고있음을 세상에 전해주는듯싶었다.
참으로 보천보는
가슴속 깊은 곳에서 끓어번지는 격정을 안고 우리는
본사기자 박세진
특파기자 전철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