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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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8월 19일 수요일 6면 [사진있음]

마을의 주인들

없어지는것과 생겨나는것

고원군 상옥리를 찾아서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농촌이 진보하고 변혁되자면 무엇보다먼저 농업근로자들의 사상정신과 문화기술수준이 혁명적으로, 문명하게 개변되여 모든 농업근로자들이 새시대 사회주의농촌발전에서 주력군의 역할을 훌륭히 감당할수 있게 준비되여있어야 합니다.》

새 농촌마을이 번듯하게 일떠선 고원군 상옥리에서도 무연하게 펼쳐진 포전마다 논벼들이 실하게 자라고있었다.

새 마을의 어구에서 우리와 만난 제2작업반 농장원 오영선동무는 복이 쌍으로 찾아왔던 그날에 대해 감회깊이 추억하였다.

지난해 12월 12일, 농장에서는 새 살림집의 입사모임과 결산분배가 동시에 진행되였다.그날 살림집리용허가증을 손에 꼭 쥐고 분배몫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오영선동무의 가슴에 넘친것은 기쁨과 환희만이 아니였다.

상옥리에 새 농촌마을의 조감도가 나붙었을 때까지도 그는 화폭속의 그 황홀경이 한해동안에 현실로 되겠는가 하는 생각이 없지 않았다.그런데 불과 얼마후에는 새 살림집의 면모가 확연히 나타났다.어머니당의 사랑이 농장원들에게 하루빨리 가닿게 하기 위해 낮과 밤을 모르고 헌신하는 건설려단 로동자들의 모습을 바라보느라니 사람의 힘과 능력에도 한계가 있다고 늘 입버릇처럼 외우던 자신의 지난날이 뚜렷한 대조속에 안겨왔다.

사실 농사일에서는 막힘이 없다고 자부하던 오영선동무에게도 어쩔수 없다고 여기는것이 있었다.담당포전에서 정보당수확고를 높이는 문제였다.그는 지력을 개선하는데도 한도가 있고 정보당소출을 높이는것은 더우기 쉽게 접어들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군 했다.그러다나니 지력이 높지 못한 담당포전에서 알곡수매계획만 수행해도 농사군의 본분을 다한것으로, 그이상의 수확고는 기대하기 힘들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어제와 오늘이 다르게 변모되는 고향의 모습은 그로 하여금 자신에게 실지 부족한것은 힘과 능력이 아니라 노력이였음을 스스로 깨닫게 했다.

이제라도 끊임없이 노력하고 분발하자.반드시 맡은 포전에서 더 많은 알곡을 생산하고 새 보금자리에 떳떳이 들어서자.

이렇게 새 출발을 한 그는 포전마다 질높은 거름을 듬뿍듬뿍 냈고 병해충의 피해를 막기 위해 밤깊도록 참고도서를 보며 과학농사의 앞장에 섰다.그리하여 그는 정보당수확고를 훨씬 높이였고 새집들이경사가 있은 날에는 그 전해보다 훨씬 많은 분배몫을 받아안았다.

지금 오영선동무는 늘 《복이 쌍으로 차례졌는데 일도 곱으로 해야지.》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외운다고 한다.

이것이 어찌 그 한사람의 심정만이겠는가.

새집에 보금자리를 편 많은 농장원들은 오래동안 습관되여왔던 《어쩔수 없다.》는 말대신 결심하면 못해낼것이 없다는 확고한 자신감에 넘쳐있다.

올해 4월 이 농장에도 가물현상이 지속될것이라는 기상예보가 전해졌다.지난 시기 이곳 농장원들은 일단 가물이 들이닥치면 농작물이 일정하게 피해를 입는것은 어쩔수 없는것으로 여기였다.하지만 새 마을의 새 주인이 된 후 결심도 각오도 달라진 이들은 하늘을 쳐다보며 비가 내리기를 기다리던 어제날의 상옥리사람들이 아니였다.

하늘을 보지 말고 땅을 보자.당의 사랑이 뜨겁게 깃든 대지에서 보답의 마음으로 하늘의 변덕을 이겨내고 풍요한 작황을 안아오자.

이렇게 분기해나선 농장원들은 가물과의 투쟁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섰다.아늑한 새 보금자리가 곁에 있었지만 이들은 포전에서 살다싶이 했다.힘들고 지칠 때마다 불밝은 새집의 창가들을 바라보면 힘이 솟았다.그 나날 이들은 불리한 기후속에서도 올곡식농사에서 장훈을 불렀다.

그 이야기를 들려주며 리의 일군은 나날이 성장하는 농장원들의 모습을 바라볼수록 어깨가 무겁다고, 사실 자기들은 지난 시기 만족병에 사로잡혀있었다고 솔직한 심정을 터놓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우리는 경희극 〈산울림〉의 송재관리위원장과도 같았습니다.》

지력이 낮은 조건에서도 해마다 알곡수매계획을 수행하고 군적인 순위에서도 앞선 축에 속하게 되자 저도 모르게 자그마한 성과에 쉽게 만족해하는 우물안의 개구리가 되였다고 하면서 그는 3년전 유치원을 개건하던 때에 있었던 일에 대해 들려주었다.

그때 농장에서는 본래의 건물에 외장재를 칠하고 책상과 걸상도 새로 놓아주었으며 자그마한 놀이터도 꾸려주었다.달라진 유치원의 모습을 바라보며 일군들은 농촌에서 이만하면 손색이 없다고, 도시수준에야 어떻게 따라가겠는가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불과 몇년후 이들앞에는 새 농촌살림집과 함께 농장마을아이들을 위해 나라에서 일떠세워주는 도시부럽지 않은 유치원의 설계가 놓여졌다.

그때 일군들도 농장원들도 자기들이 도달해야 할 리상과 목표의 경지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다시금 새기게 되였고 《이쯤하면》이라는 말자체도 자취를 감추게 되였다.지금 상옥리사람들은 자기들의 농장을 몇해안에 온 나라에 소문난 최우수농장으로 만들겠다고 열의들이 대단하다.

이런 달라진 분위기를 우리는 원병삼로인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느낄수 있었다.

농촌살림집건설이 마감단계에 이르렀던 지난해 11월 로인은 농사일을 시작한지 불과 3년밖에 안되고 또 독신인 아들에게도 새집이 배정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다.로인은 그 사실이 너무도 믿어지지 않아 아들을 데리고 리당조직을 찾아갔다.

리당일군은 그에게 아들이 앞으로 좋은 처녀를 만나 가정을 이루어야 하겠는데 그때에는 새로 받은 집에서 농장이 떠들썩하게 결혼식을 하자고 하는것이였다.그리고 원성국동무에게는 제대군인이고 당원인 동무가 군사복무시절의 그 정신으로 더 많은 일을 하여 농장의 기둥이 되기 바란다고 이야기하였다.

이날 원성국동무가 받은 충격은 더욱 컸다.사실 지난 시기 농장일의 앞장에서 일자리를 푹푹 내는 그에게 많은 사람들이 공부를 하라고, 농사를 더 잘 지으려면 알아야 하고 배워야 한다고 권고하였다.하지만 그때마다 그는 다른 일은 다 해도 공부만은 정말 힘들다고, 농사군이야 농사일만 직심스레 하면 그만이라고 대답하였던것이다.

하지만 평범한 농장원인 자기에게 베풀어지는 당의 은덕을 뜨겁게 새기며 그는 공부만은 정말 힘들다고 하던 어제날을 자책속에 돌이켜보았다.그로부터 얼마후 그는 새집들이준비가 한창인 고향마을을 정답게 바라보며 과학기술로 튼튼히 무장한 실농군이 되여 새집의 문패에 자기의 이름을 떳떳이 써넣을 결심을 안고 고원군농업기술학원으로 떠나갔다고 한다.

감동없이는 들을수 없는 가지가지의 이야기들에 심취되여 우리는 사위가 어스름에 잠긴것도 느끼지 못했다.

불밝은 창가마다 웃음소리 넘쳐나는 새 마을의 저녁정취에 점도록 취해있던 우리는 퇴근길에 오른 상옥기술고급중학교 소학반 교원 최수정동무를 만나게 되였다.새 마을이 일떠선 후 진행된 첫 학년말성적총화에서 그가 담임한 학급의 많은 학생들이 최우등의 성적을 쟁취하였을 때 그는 생각이 많았다고 한다.

지난 시기 그는 학부형들이 자녀들의 학습에 선차적인 관심을 돌리지 못하는 문제를 두고 고충이 컸다.학생들의 실력제고에서 학교교육과 함께 부모들의 관심이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안타깝게 호소도 하였다.하지만 적기를 놓치지 말아야 하는것이 농사일인데 바쁜 고비를 넘기고는 꼭 자식들의 학습지도에 품을 들이겠다고 하는 학부형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한켠으로는 그들의 심정도 리해가 되였다.

그런데 부모도 교원도 어쩔수 없다고 생각하던 이 문제는 현대적인 새 살림집이 즐비하게 일떠선 후 절로 해결되였다.

앞으로 더욱 변모될 상옥리의 래일을 떠메고나가야 할 자식들을 문명한 인간, 지식형의 인간으로 키우자고 학부형들이 서로서로 약속했던것이다.

지금껏 우리에게 부족한것은 결코 시간이 아니라 고향땅의 오늘과 래일을 다같이 책임지려는 자각이였다고 하며 농장원들은 짬시간을 효과적으로 리용하여 자식들의 학습지도와 교양에 많은 품을 들이였다.이 과정에 열성학부형들이 늘어나고 학생들의 실력도 몰라보게 높아졌다.

새 농촌마을과 더불어 불과 반년 남짓한 기간이 흘렀지만 상옥리사람들의 생활에서는 참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그중에서도 가장 뚜렷한 변화는 바로 새로운 리상, 드높은 목표를 향해 전진의 힘찬 보폭을 내짚고있는 그들의 미더운 성장이였다.지난날 누구나 입버릇처럼 외우던 《어쩔수 없다.》는 말은 점차 없어지고 새 마을과 함께 생겨난 《무엇이나 할수 있고 이룰수 있다.》는 신심넘친 목소리들이 어디서나 울리고있다.

글 박설림

사진 본사기자 장성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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