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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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9월 12일 토요일 6면

군국주의부활에로 끊임없이 질주해온 일본의 행적(1)

되살아난 전범자들


신군국주의의 길에 확고히 들어선 일본이 광활한 아시아태평양지역에 대한 지배를 꿈꾸며 전쟁능력보유에 발광하고있다.

이러한 현실은 전쟁방화자로서 세계의 엄정한 징벌을 받았던 일본군국주의가 어떻게 되여 시대의 변천속에서 부활하고 대결광으로서의 흉체를 뻐젓이 드러내고있는가를 돌이켜보지 않을수 없게 하고있다.

독초는 뿌리채 뽑아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언제든지 다시 자라나 더 큰 피해를 줄수 있다.

패망의 수치를 당한 일본군국주의가 렬도에 또다시 뿌리를 내리고 독을 쓰며 성장할수 있은것은 바로 전범세력을 깨끗이 청산하지 못한데 원인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종식후 일본의 주요전범자들에 대한 극동국제군사재판이 진행되였다.

지금으로부터 80년전인 1946년 5월 3일에 극동국제군사재판이 열리였다.재판기간 주요전범자 28명에 대한 사건심의를 진행하였다.심의도중 2명은 죽고 1명은 정신병에 걸렸다.

결국 1948년 11월 25명에 대하여서만 판결하였다.판결에서는 전 일본수상이였던 도죠 히데끼를 포함하여 7명에게는 교수형을, 16명에게는 종신금고형을, 1명에게는 20년 금고형을, 1명에게는 7년 금고형을 선고하였다.

재판에는 수백명의 증인들이 참석하여 전범자들의 죄행을 증언하였다.

기소된 전범자들의 죄행이 얼마나 엄중하였는가 하는것은 재판에 제출된 각종 증거문건이 2만여통, 판결문은 180페지, 재판기록은 무려 5만페지에 달하였다는 사실이 뚜렷이 실증해주고있다.

하지만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일본군국주의의 청산은 철저하게 진행되지 못하였다.

미국이 일본전범자들에 대한 재판을 각방으로 방해하였던것이다.첫째가는 전범자인 왜왕 히로히또를 기소하지 않았으며 200여명에 달하는 전쟁범죄자들에 대해서도 《범죄사실이 애매하다.》느니 하며 여러가지 구실을 내대고 석방을 제기하였다.

재판에서 종신금고형을 언도받았던 특급전범자들도 1950년대중엽까지 모두 석방되였다.

미국은 또한 패망전 일본의 악명높은 사상탄압기구였던 특별고등경찰과 그 관계자들을 극동국제군사재판에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

그후 특별고등경찰은 공안경찰로 재조직되여 군국주의부활책동을 반대하는 정당들과 사회단체, 국민들에 대한 탄압소동에 광분하였다.

극악한 전범자들을 살려놓은 미국의 흉심은 패망한 일본군국주의를 재생시켜 저들의 아시아침략의 돌격대로 써먹으려는데 있었다.

미국의 비호밑에 살아난 전범자들을 싹으로 하여 일본에서는 군국주의가 부활되기 시작하였다.

일본정계에 전범자들이 둥지를 틀었다.1946년 5월 수상자리에 올라앉은 요시다 시게루, 1954년 12월 수상이 된 하또야마 이찌로, 1957년에 집권한 수상 기시 노부스께 등은 다 전범자, 군국주의자들이였다.

권력을 틀어쥔 이 전범자들은 패망의 앙갚음을 하려는 야망을 품고 일본을 군국주의길로 내몰기 위해 음으로양으로 획책하였다.

특급전범자인 기시 노부스께는 《평화헌법》을 패망의 산물로 규정하고 뜯어고치려고 책동하였으며 일본의 핵무기보유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공공연히 떠들었다.

현세기에 들어와 수상자리에 틀고앉아 군국주의부활을 로골적으로 제창하며 그 실현에 피눈이 되여 날뛰던 아베는 바로 기시 노부스께의 외손자였다.

력사가 보여주는바와 같이 미국의 비호밑에 되살아난 전범자들은 일본이 패망한지 얼마 안되여 인차 정계를 장악하고 온 사회를 군국주의화하는데 달라붙었다.

김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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