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애국공로자들의 인생관을 따라배우자!
《애국은 조국과 인민에 대한 헌신이고 투신입니다.》
최근 당에서는 드높은 애국적자각과 헌신적인 노력으로 맡겨진 혁명과업수행에서 모범을 보이고있는 일군들과 근로자들을 사회주의애국공로자로 값높이 내세워주었다.그들이 지닌 아름다운 인생관을 통해 만사람이
혁명의 명맥은 신념으로 지켜야 한다
지난 40여년간 우리 당의 령도업적이 집대성되여있는 성스러운 혁명초소에서 일하면서 당원들과 근로자들의 사상정신적성장의 밑거름이 되고 애국적투쟁의 자양이 되여온 함경남도혁명사적관 관장 한정옥동무의 값높은 삶의 자욱자욱은 우리 혁명의 명맥을 지켜가는 혁명사적부문 일군들의 가슴속에 어떤 신념과 량심이 간직되여있어야 하는가를 말해주고있다.
처음으로 도혁명사적관에 출근한 날 한정옥동무는 경건한 마음을 안고 사적관의 호실들을 돌아보았다.
혁명과 건설의 매 시기마다 도를 찾으시고 도안의 로동계급과 인민들에게 크나큰 사랑과 믿음을 안겨주신 절세위인들의 자애로운 모습을 우러를수록 그의 가슴은 격정으로 세차게 높뛰였다.하나의 전시물에도 절세위인들의 비범한 풍모와 당을 받드는 우리 로동계급의 결사관철의 투쟁정신이 력력히 어려있었다.
이날부터 그의 마음속에는 자기가 지켜선 초소가 당을 받드는 우리 인민의 사상정신적풍모가 더욱 공고한것으로 뿌리내리도록 하는 성스러운 교단이며 혁명의 명맥을 지키는 전초선이라는 자각이 언제나 떠날줄 몰랐다.
당의 령도업적을 소리높이 구가하자면 마땅히 다방면적인 지식을 소유한 정치활동가가 되여야 한다.바로 이것이 그가 스스로 제기한 높은 목표였다.
그는 자질과 능력을 높이는 문제를 단순히 실무적인 문제가 아니라 당의 령도업적을 빛내이기 위한 사활적인 문제로 내세우고 당정책학습을 심도있게 진행하였으며 그에 기초하여 현실을 깊이 연구하였다.기계, 화학, 재료를 비롯한 과학의 세계에도 주저없이 뛰여들었고 그것을 파악하기 위하여 밤길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의 피타는 노력에 받들려 방대한 분야의 수많은 사적물에 대한 강의안들이 폭넓고 깊이있게, 손색없이 완성되였다.
적지 않은 녀성들이 한가정의 살림을 먼저 걱정하면서 때로 일터를 비우던 고난의 시기에도 성스러운 혁명초소를 지켜선 한정옥동무의 자세는 조금도 흐트러진적 없었다.
혁명사적강사의 변함없는 한모습, 한목소리에서 참관자들은 당의 목소리, 시대의 부름을 자각하였고 새로운 결심을 다지며 떠나간 그들이 일터마다에서 혁신의 소식을 전해올 때면 그는 무한한 긍지와 보람을 느끼군 하였다.
그 나날 그는 공훈사적강사의 영예를 지니게 되였으며 당의 높은 신임에 의하여 교양과장을 거쳐 사적관관장으로 사업하게 되였다.
우리 당의 령도업적을 전하는 성스러운 혁명교단에 서있는 혁명사적강사들에게는 한결같은 소원이 있다.그것은 단 한번만이라도
언제면 오실가 기다리기에 앞서 떳떳한 자격을 갖추고 그이를 모실수 있도록 준비하자.이것은 한정옥동무가 오늘까지 간직하고 살아온 남다른 지론이였다.하기에 그는 강의합평에 앞서 신입강사들에게 늘 이렇게 강조하군 한다.
우리
이 나라 그 어디에나 당의 령도업적이 뜨겁게 깃들어있으며 거기에는 혁명의 명맥을 지키고 빛내여가는 이처럼 충성스럽고 애국적인 근로자들이 있다.
혁명전통이라는 거목이 영원토록 이 땅에 억세게 뿌리내리게 하는 버팀목이 되고 자양분이 될 굳은 신념을 지니고 혁명초소를 믿음직하게 지켜가는 그들이야말로 얼마나 돋보이는 인간들인가.
혁명의 명맥은 신념으로 지켜야 한다!
이런 고결한 인생관을 안고 한정옥동무는 오늘도 혁명사적사업에 순결한 량심을 바쳐가고있다.
글 및 사진 김성훈
실력에 진정이 합쳐져야 책임을 다할수 있다
일군이라면 크든작든 자기가 맡은 단위 사업을 당과 국가앞에 책임져야 한다.
하다면 그를 위해 일군들이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그에 대한 대답을 황해북도농촌경리위원회의 어느한 단위 일군인 김택규동무의 모습에서 찾아보게 된다.
일군에게 있어서 높은 실력은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자질이다.
김택규동무가 바로 그런 실력가이다.그가 제구실을 못하고 시대에 뒤떨어져있던 단위를 안팎으로 멋있는 3대혁명선구자집단으로 추켜세울수 있은 비결은 자기 분야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풍부한 경험, 높은 실무능력에 있다.
그는 군사복무를 마치고 고향인 연탄군에서 농장원, 초급일군, 관리일군을 거쳐 군농업지도기관 일군으로 사업하면서 언제나 자기앞에 맡겨진 임무를 책임적으로 수행하였다.
대학졸업생이 아닌 그는 평범한 농장원시절부터 농업과학기술지식을 배우기 위해 피타게 노력했고 여러 차례 직무가 오르고 하는 일이 달라졌지만 밤을 새워가며 열심히 학습하여 실력을 쌓는것은 변함없는 일과로 굳어졌다.
그 결과가 사업실적으로 이어졌다는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지배인으로 사업한 지난 9년간만 놓고보아도 그는 주변의 무진장한 원료원천에 의거하는 석회로를 건설해놓고 산성화된 땅을 개량하여 정보당 알곡수확고를 배로 끌어올리였다.자신뿐 아니라 종업원들속에서 과학기술학습의 된바람을 일으켜 수많은 과학기술성과들을 이룩하였으며 단위의 면모도 일신시키였다.
하지만 그 모든 성과는 결코 실력으로만 이루어낸것이 아니였다.
우리와 만난 자리에서 그는 이야기했다.실무능력이 없는 일군이 자기 책임을 다할수 없다는것은 명백한 사실이다.하지만 일군의 실무능력이 높다고 해서, 요구성만 높다고 해서 단위의 일이 다 잘되는것은 아니다.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것이 뜨거운 인간미를 지니는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와 함께 일하는 한 종업원은 김택규지배인은 언제나 사람들의 마음속을 속속들이 헤아리고 누구든 차별하지 않고 아끼고 위해준다고, 바로 그 진정에 이끌려 어제날 말썽만 부리던 자기도 오늘날에는 혁신자가 되였다고 솔직한 심정을 터놓았다.
사업소의 당초급일군이 말했듯이 자기의 두 딸은 수수하고 평범하게 내세우면서도 종업원들의 자식들을 위해 진정을 바친 사람이 다름아닌 김택규동무였다.
만나보는 사람마다 가슴속에 품고있던 사연, 스스럼없이 터놓는 이야기는 서로 달랐지만 지배인의 인간성에 대한 공감의 목소리는 하나같았다.
그가 지배인으로 임명되여왔을 때 처음으로 시작한 일이 아이들의 통학조건을 보장해준것이고 지금도 아침마다 꼭꼭 학교로 가는 아이들을 바래워주고있는 사실, 지금도 제일 잊혀지지 않는것이 미장칼을 들고 땀젖은 작업복이 마를새 없이 종업원살림집을 하나하나 일떠세우던 그의 모습이라는 이야기, 부모잃은 종업원의 결혼상을 차려준 이야기…
그뿐이 아니다.새로 번듯하게 일떠서 아이들의 글소리, 노래소리 울려퍼지는 아담한 분교에도 그의 뜨거운 진정이 깃들었으니 어찌 대중이 그를 우리 대의원이라 스스럼없이 부르며 존경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그렇듯 종업원들을 위해 바치는 일군의 뜨거운 진정이 대중을 힘있게 불러일으키는 말없는 정치사업이 되였고 그 결과 사업소는 유명무실한 단위라는 인식을 털어버리고 당정책관철의 앞장에 선 애국자집단으로 전변될수 있었다.
그렇다.바로 이런 일군이 당에 충실한 사람이고 애국자이다.직무가 어떠하고 하는 일이 어떠하든 일군이라면 누구나 높은 실무적자질을 갖추기 위해 피타게 노력해야 한다.또한 뜨거운 진정을 바쳐 대중을 불러일으키는 참인간이 되기 위해 자신에 대한 요구성을 부단히 높여야 한다.이것을 체질화한 일군은 어떤 조건에서도 당과 인민의 크나큰 신임에 보답할수 있고 국가앞에 지닌 자기 책임을 다할수 있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 강금성
종업원들을 일터의 주인으로, 이것이 나의 애국이다
려명피복공장은 지난 10여년간 해마다 인민경제계획을 넘쳐 수행해온 2중3대혁명붉은기단위이다.이 성과속에는 어떤 비결이 있는것인가.
2017년 4월, 현대건축거리의 표준으로 일떠선 려명거리의 준공식이 진행된 날 깊은 밤이였다.
희한하게 꾸려진 공장의 새 모습을 다시금 가슴뜨겁게 안아보며 지배인 강옥춘동무는 오래도록 현장을 떠날줄 몰랐다.
먼지 하나, 소음 하나 없도록 꾸려진 이 공장이 우리 일터가 옳긴 옳은가고 그처럼 감격에 겨워하던 종업원들의 목소리가 계속 귀전에 메아리쳤다.
나의 제일가는 직분은 무엇이겠는가.이 복받은 일터에서 한생토록 충성과 애국의 삶을 빛내여갈 참다운 주인들을 키워내는것이 아니겠는가.
다음날 종업원들은 현장마다에 전개된 글발을 볼수 있었다.
우리의 일터는 우리가 지켜선 조국!
바로 이것이 새 일터에서 새 기대의 동음과 더불어 지배인 강옥춘동무의 마음속에서부터 종업원 한사람한사람의 마음속으로 끝없이 울려간 애국의 호소였다.
공장의 연혁실에는 공장이 받아안은 명예칭호들에 대한 기록이 자랑스럽게 새겨져있다.
2중3대혁명붉은기단위칭호를 비롯하여 많은 명예칭호들을 다 합치면 아마도 일터에 진정을 묻으며 사는것이 어떤것인가를 뜨겁게 체험해온 지난 10여년간의 이야기가 될것이라고 하면서 재봉3작업반 반장 최금련동무는 이렇게 말하였다.
《기대를 눈동자와 같이 아끼고 사랑하라.이것은 우리 지배인동지가 입버릇처럼, 정말 귀에 못이 박히게 하는 당부입니다.》
아무리 계획을 넘쳐 수행한 재봉공이라고 해도 예방보수를 깐지게 하지 않는 종업원들은 지배인동지의 드센 손탁에서 배겨낼수 없었다고, 이제는 하나하나의 기대가 곧 우리 종업원들의 애국의 마음을 비쳐주는 거울과도 같다고 그는 자랑스럽게 말하였다.
언제인가 한 의복류의 다량생산을 앞두고 자재소요량을 비롯한 여러 문제를 현장에서 토의하던 강옥춘동무는 누구에게라없이 물었다고 한다.이 옷 한벌을 만드는데 몇m의 천과 실, 몇g의 솜이 드는가고.
저저마다 두서없이 하는 대답을 들은 강옥춘동무는 소수점아래수자까지 정확히 말해보라고 하였다.허나 재단사, 재봉공들은 아무 대답도 할수 없었다.
그때 강옥춘동무는 이렇게 절절히 말하였다고 한다.
우리가 소홀히 여기며 놓쳐버리군 하는 소수점, 이것은 결코 작은것이 아니다.하루에도 수백m가 넘는 천을 다루는 우리가 이 소수점에 비낀 나라의 재산을 소홀히 여기고 일하는데 습관된다면 국가적손실에 앞서 우리의 애국적량심에 커다란 공백이 생기고만다.그 수자에 우리의 애국심이 비낀다고 생각해보라.
이처럼 수자를 따져가며 사업을 예견성있게, 실리있게 진행해나가는 강옥춘동무의 높은 실무능력과 요구성, 치밀하게 세워놓은 사업체계가 있었기에 생산공정이 치차처럼 맞물려야만 성과를 거둘수 있는 피복공장에서 설비의 만가동, 만부하의 동음은 어느 한순간도 끊긴적이 없었다.
많은 종업원들이 일하면서 배우는 교육체계에 망라되여 공부하고있는 사실, 수십명의 종업원들이 발명 및 창의고안증서를 수여받은 사실에도 공장의 오늘뿐이 아닌 먼 래일까지 내다보며 분투해온 그의 남다른 사업기풍이 비껴있다.
여기에 부모없는 로동자를 비롯하여 종업원들을 일터의 주인으로 참답게 키워온 나날에 강옥춘동무가 바쳐온 뜨거운 진정에 대한 하많은 이야기들을 우리는 다 적지 못한다.
강옥춘동무가 새겨온 생의 자욱자욱을 통해 우리는 알수 있다.
일군에게 있어서 대중을 일터의 주인으로 키우는것이야말로 제일가는 직분이고 애국이라는것을.
글 및 사진 리경희
우리 고장의 창조물에는 나의 자욱이 남아야 한다
단발머리처녀시절부터 근 40년을 미장공으로 일해온 한 녀성로력혁신자가 있다.자강도인민회의 대의원인 자강도 룡림군건설려단 로동자 리영옥동무이다.
너무도 평범한 녀인, 하지만 그가 걸어온 인생행로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
삼지연시건설, 강계애육원과 강계교원대학건설 등 50여개의 대상건설에 참가하여 헌신적인 노력으로 수십년간 애국의 자욱만을 새긴 리영옥동무!
1980년대에 중학교를 졸업하고 군건설대(당시)에 배치받았을 때 그의 일욕심은 남달리 컸다.
함께 일하는 로동자들이 애어린 처녀라고 쉬운 일을 맡기려 했지만 그는 자기 손으로 자기 고장을 훌륭하게 꾸리는데 이바지하겠다고 하면서 짬이 생길 때마다 오랜 기능공들을 따라다니며 미장기술습득에 자기의 모든 정력을 기울였다.
하루종일 일하고나면 팔목이 뚝 떨어지는듯했고 다리가 저려왔으나 그는 남들이 휴식할 때에도, 모두가 퇴근한 후에도 밤늦도록 혼자 남아 미장련습을 하였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피타게 노력한 결과 그는 몇해후부터 미장작업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으며 높은 기능을 소유한 혁신자가 되였다.
군소재지에 정중히 모신
그는 가정을 이루고 두 자식을 가진 어머니가 된 후에도 자기가 맡은 초소에서 성실한 애국의 자욱을 새기였으며 그 나날 조선로동당원으로, 도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자라났다.
그에게 있어서 제일 큰 보람과 긍지는 자기 손으로 일떠세운 군안의 모든 창조물들을 바라볼 때이다.
언제인가 미장작업을 끝내고 밤늦게 집에 들어온 그에게 딸이 원망어린 목소리로 미장하는 일이 그렇게도 좋은가고 물은적이 있다.
딸의 두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주며 리영옥동무는 조용히 말했다.
어머니는 당원이고 대의원이 아닌가고.
그라고 왜 단란한 가정의 행복을 맛보고싶지 않았고 제손으로 끼니때마다 따끈한 식찬을 남편과 자식들에게 해주고싶지 않았으며 남들처럼 집에서 잠시나마 피로를 풀고싶은 마음이 없었으랴.
하지만 그는 자기의 넋과 숨결이 조국번영의 창조물들에 비껴있다면 더 바랄것이 없다는 숭고한 인생관을 안고 지금까지 근 40년세월 변함없는 한모습으로 살아오고있다.
과연 무엇이 평범한 이 나라의 한 녀인을 값높은 애국의 길에 스스로 뛰여들게 하였고 그길에서 무한한 긍지와 보람을 찾게 하였는가.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설사 평범한 로동자라고 해도 공민이라면 나라를 위해 무엇인가 자기의 자욱을 남겨야 하지 않겠는가고.우리 고장의 창조물마다에 나의 땀과 노력이 깃들었다고 생각하면 그보다 더 큰 보람이 없다고.
그의 인생이 그토록 값있고 그가 남긴 애국의 자욱이 사람들의 가슴속에 깊은 여운을 주는것은 일신의 생활상고충, 자기 집걱정은 모두 묻어두고 오로지 나라를 위해 묵묵히 헌신하며 그길에서 인생의 긍지와 보람을 찾는 고결한 정신세계때문이다.
그렇다.조국과 자기의 운명을 하나로 잇고 공화국의 승리와 영광에 바쳐가는 생을 가장 영예롭고 행복한 삶으로 여기는 리영옥동무와 같은 애국자들의 대오가 숲을 이루고있기에 우리 국가의 활기찬 발전은 더욱 힘차게 이룩되고있는것이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 김청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