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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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9월 30일 수요일 2면

《혁명전우관》련속참관기

은정어린 피아노에서 울린 첫 선률


조선혁명박물관 《혁명전우관》에는 주체음악발전사에 뚜렷한 자욱을 남긴 작곡가 리면상선생에 대한 자료도 전시되여있다.

리면상선생이 조국과 인민이 기억하는 국보적인 명곡들을 창작할수 있은것은 단순히 음악적인 재능이 특출해서가 아니였다.위대한 당의 품속에서 값높은 삶을 누리며 참된 작곡가로 성장해왔기에 그는 시대의 명곡들을 훌륭히 창작하여 세상에 내놓을수 있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혁명동지들을 자신처럼 믿고 사랑하시였으며 동지들에게 주실수 있는 사랑을 다 안겨주시였습니다.》

1978년 4월 8일이였다.

어느한 회의에 참가했던 리면상선생은 당중앙위원회 일군으로부터 빨리 집으로 가보라는 전화를 받게 되였다.

(집에 무슨 일이 생겼는가?)

이런 생각을 하며 그는 급히 집으로 향했다.집에 도착하니 안해도 영문을 몰라하며 웬일인가고 묻는것이였다.

온 가족이 의문을 품고 서성거리는데 창밖에서 자동차의 경적소리가 울리더니 얼마후 사람들이 그의 집에 들어섰다.그들과 함께 온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군은 리면상선생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바로 그 전날에 있은 일이였다.

일군들에게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한동안 생각에 잠기시였다가 오늘이 7일인가고 물으시였다.

잠시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래일이 바로 음악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동무의 생일이라고 하시는것이였다.

일군들은 그처럼 분망하신 속에서도 한 전사의 생일을 잊지 않으시고 마음쓰시는 위대한 장군님을 우러르며 가슴이 뜨거워옴을 금할수 없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리면상동무는 해방직후부터 우리 당의 문예사상과 로선을 관철하기 위하여 적극 투쟁하였으며 나라의 음악예술발전에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고 하시면서 생일 70돐을 맞는 그에게 새 피아노를 선물로 보내주어야겠다고 말씀하시였다.

뜻깊은 사연을 전달받은 리면상선생과 가족들은 감격에 겨워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리면상선생은 수난의 세월 자기가 작곡한 첫 노래의 선률을 듣고싶어 밤에 학교의 피아노에 그 선률을 태워보다가 일제순경에게 들켜 《피아노도용자》의 굴욕을 당하고 퇴학처분까지 받던 일이 생각났다.

그렇게 가지고싶었던 피아노를 안겨주신분은 위대한 수령님이시였다.

해방후 어느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지금 작곡가들이 피아노가 없어 음악창작에서 지장을 받고있다고, 피아노가 없으면 작곡을 제대로 할수 없다고, 아직 나라사정이 좀 어려운 형편이지만 피아노를 작곡가들에게 해결해주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그에게 피아노를 선물로 보내주시였다.

그 은정어린 피아노와 함께 그는 수많은 노래를 창작하였다.

가렬한 조국해방전쟁과 전후복구건설, 사회주의건설 등 격변하는 시대의 흐름속에서 자기의 열정과 지혜를 깡그리 바치며 그 피아노와 더불어 인민이 사랑하는 명곡들을 창작하였다.그런데 오늘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어버이수령님의 사랑을 그대로 이으시며 새 피아노를 보내주신것이다.

리면상선생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피아노를 뜨거운 격정속에 어루쓸었다.그리고는 피아노에 마주앉아 자기가 작곡한 가요 《어머니당이여》를 타기 시작했다.

…

하늘에 비기랴 그대의 사랑

바다에 비기랴 그대의 은혜

우리는 행복한 당의 아들딸

광활한 미래로 달음쳐가네

…

이 세상 그 어느 당도 지닐수 없었던 어머니당이라는 부름, 우리 인민이 위대한 당에 드린 그 고귀한 명함이 깃든 명곡이 은정어린 피아노에서 숭엄히 울려퍼졌다.

진정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품은 곡절많았던 리면상선생의 운명을 구원해주고 값높은 삶을 안겨준 한없이 자애로운 품이였다.우리 인민모두가 하늘땅 끝까지 믿고 따르고 대대손손 안겨살 위대한 사랑의 품, 은혜로운 삶의 품이였다.

본사기자 최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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