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근로자로 떳떳이 살자!
다같이 고심하고 분투해야 혁신자집단이 될수 있다

2024.07.15. 《로동신문》 4면


 

힘있는 집단, 앞서나가는 단위는 누구나 부러워한다.

그러나 선구자집단, 그 영예는 결코 쉽게 지닐수 있는것이 아니다.집단의 모든 성원들이 한결같이 고심하며 분투할 때만이 자기 단위를 선구자집단으로 끌어올릴수 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자기 일터, 자기 초소를 사랑하고 맡은 일을 성실하게 하는 유명무명의 애국자들에 의하여 나라가 부강해지고 사회주의락원이 일떠서게 되는것입니다.》

박천잠업관리소는 현재 군은 물론 도적으로도 힘있는 단위, 어디서나 찾는 단위로 널리 알려져있다.최근년간만 놓고보아도 맡겨진 인민경제계획수행은 물론이고 군의 국수집개건공사와 유용동물보호구를 꾸리기 위한 사업에서도 자랑찬 위훈을 세웠으며 농촌살림집건설과 수도의 전위거리건설에서도 남다른 성과를 이룩하였다.

하지만 사실 관리소는 10여년전까지만 해도 군적으로 제일 뒤떨어진 단위의 하나였다.그러다나니 종업원들의 대다수는 자기 일터에 대한 영예감이 없이 출근하여서도 맡겨진 일보다 개인부업에 더 극성을 부리였다.

현재 군적으로도 소문난 혁신자인 박철복동무도 그때에는 어떻게 하면 집살림을 풍족하게 할것인가 하는 생각만 앞세우면서 맡은 일을 바로하지 못했다.

사실 제대되여 관리소에 갓 배치되였을 때까지만 해도 군사복무시절 중요대상건설에 참가하여 위훈을 세운것처럼 본때있게 일해보리라는 그의 마음속열의는 대단했다.그러나 관리소의 뒤떨어진 실태에 대하여 알게 되면서부터 그는 자신감을 잃고 일을 건성건성 하기 시작했다.그리고 자기의 기술과 기능은 가정을 위한 일에만 써먹었다.

이런 그가 자기를 돌이켜보게 된 계기가 있었다.언제인가 관리소를 찾아왔던 한 녀인이 그를 알아보고 종업원들에게 그의 일솜씨에 대해서 칭찬한적이 있었다.그가 일전에 녀인의 집수리를 해준적이 있었던것이다.그때 그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싶은 심정을 금할수 없었다.관리소에서는 한창 청사건설을 하고있었는데 그는 자기의 재간을 감추고 뒤전에서 조력이나 해주고있었기때문이였다.그가 얼굴을 들지 못하고있는데 일군들이 다가오더니 그게 사실인가고, 우리 관리소에 이런 보배덩이가 있는줄 여태 모르고있었다고, 함께 손잡고 청사건설을 본때있게 해보자고 하는것이였다.그러면서 그에게 한개 작업조를 맡겨주었다.자기를 탓할 대신 책임적인 임무까지 맡겨주는 집단앞에 미안한감도 없지 않아 그는 종전보다 마력을 내여 일하였다.그런데 별치않은 성과를 두고서도 대중앞에 적극 내세워주고 자기 집안일까지 온갖 지성을 다해 보살펴주는 진정어린 모습을 보면서 차츰 그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혼심을 다해 하나의 건물을 짓고 또 다른 건물을 지을 때면 어떻게 더 멋있게 일떠세울것인가 하고 남모르게 고심했고 자기의 기술기능을 다른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배워주기 위해 적극 노력했다.

지금은 관리소의 어렵고 힘든 일을 도맡아하는 청년작업반의 반장이지만 한때 김광휘동무에게도 일터에 정을 붙이지 못하고 살아온 나날이 있었다.

그가 반장으로 배치되였을 당시 작업반의 형편은 시원치 않았다.고치생산에서 응당한 실적을 내지 못하고있는것도 문제였지만 작업반원들이 안착되지 못한것은 더 큰 난문제였다.손털고 나앉은 그의 머리속에는 온통 한창 발전하고있는 대학동창들에 대한 생각뿐이였다.그들에 비해보면 자기는 마치 고치를 트는 누에처럼 한자리에서만 머무를것같았다.

이런 그를 다잡아준것은 관리소의 일군들이였다.남들이 다 꾸려놓은 일터에서 헐하게 일하려고만 한다면 어떻게 청춘이라고 말할수 있겠는가, 그 어떤 난관이 가로막아도 작업반장부터 앞장서서 뚫고헤쳐야 우리 관리소의 미래인 청년들이 용감하게 일떠설수 있지 않겠는가고 하며 그를 이끌어주었다.

그 손길에 이끌려 분발해나선 그는 밤을 새워가며 작업반을 위해 고심하기 시작했다.작업반원들을 관리소의 기둥감들로 키우기 위해 모든것을 바쳐가는 나날에 작업반원들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가정을 이룬 후 개인사정만을 내세우며 일터를 뜨려고 했던 차인성동무가 오늘은 작업반의 핵심으로 자라난것을 비롯하여 나어린 처녀들까지도 관리소적인 혁신자로 성장했다.

그 나날 김광휘동무는 청년동맹 제10차대회에 참가하여 경애하는 아버지원수님을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는 영광을 지니게 되였다.

지난 시기 리관호동무는 자기 일만 잘하면 되는것으로 생각하고있었다.그러다나니 관리소일군들이 그에게 학암작업반 반장사업을 맡겼을 때 그의 마음속에는 놀라움보다 두려움이 앞섰다.더구나 그 작업반은 관리소적으로 제일 뒤떨어진 단위였던것이다.

그에게 일군들은 말했다.혼자서만 일을 잘해서야 집단에 무슨 큰 도움을 줄수 있겠는가고, 모두가 성실하게 일하도록 이끌어주어야 우리 관리소가 하루빨리 일어설것이 아닌가고.

하여 그는 학암리에 이사짐을 풀고 작업반장사업을 시작하였다.땅도 사람들도 너무나 생소했다.그러나 그는 락심하지 않고 오랜 세월 실천적모범으로 자기만을 위해 살던 작업반원들을 작업반을 위해, 관리소를 위해 고심어린 노력을 기울일줄 아는 혁신자들로 키웠다.

관리소도 종업원들도 이렇게 변모되기 시작했다.10여년전에는 군적으로도 잘 알려져있지 않던 단위가 오늘은 전국적인 보여주기사업을 진행하는 단위로 전변되였고 국가적인 중요대상건설장들에도 달려나가 혁혁한 위훈을 세워가는 그들을 누구나 부러움에 넘쳐 바라보게 되였다.

하기에 그들은 이렇게 자랑하군 한다.자기네 관리소에는 3명의 도인민회의, 군인민회의 대의원이 있으며 많은 종업원들이 여러 차례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은정어린 선물을 받아안았다고.

최근년간 몰라보게 성장한 박천잠업관리소 종업원들의 모습은 그들을 위해 남모르게 헌신해온 소장 김창룡동무를 비롯한 일군들을 떠나 생각할수 없다.친혈육의 심정으로 량부모를 잃은 청년작업반원의 결혼상도 차려주고 생활의 구석구석을 따뜻이 보살펴주어 그가 맡은 일에 전심전력하게 한것을 비롯하여 종업원가정들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까지 환히 꿰들고 도와주는 그 진정에 이끌려 누구나 일터에 몸을 푹 잠그게 되였다.

소장은 우리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우리 관리소의 자랑스런 오늘은 모두가 한결같이 고심하며 분투하여 이룩해놓은 결과입니다.아마도 제힘으로 일떠세운 단위에서 일하는 재미보다 더 큰 인생의 락은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들겁니다.》

참된 생활의 진미가 과연 어디에 있는가를 여운있게 시사해주는 그의 말을 들으며 우리는 생각했다.

오늘의 거창한 변혁의 시대에 앞장서나가자면 몇몇 사람의 재능이나 실력만으로는 한개 단위를 응당한 높이에로 끌어올릴수 없다.누구를 막론하고 자기 집단의 번영과 발전을 위하여 다같이 고심하고 다같이 노력할 때 산수적합계로는 산출해낼수 없는 크나큰 힘이 발휘된다.그 무진한 위력을 뿌듯이 체감할 때, 그 거대한 힘의 원천이 다름아닌 자신들의 마음속에 있다고 생각할 때 가슴에 벅차오르는 희열과 보람을 과연 어디에 비길것인가.

그렇다.우리 생활의 진미, 그것은 다같이 고심하고 분투하여 안아온 자랑많은 혁신자집단의 한 성원이라는 가슴뿌듯한 긍지와 자부에 있는것이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 김일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