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22. 《로동신문》 4면
한 가정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공장과 일터마다에서 사회주의근로자의 보람찬 삶을 누리고있는 녀성들가운데는 강서구역원료기지사업소에 탄원진출한 녀성들도 있다.
《오늘 우리 혁명의 새로운 고조기, 격변기는 전체 녀맹원들이 조선녀성의 강의한 정신력과 애국적헌신으로 시대의
그들이 탄원을 결심하게 된것은
제일먼저 기치를 든 사람은 당시 강서구역 서기동에서 녀맹초급일군으로 사업하고있던 김복실동무였다.지난 시기 그는 인민군대원호와 중요대상건설에 대한 지원을 비롯하여 나라를 위한 좋은 일을 많이 찾아하였으며 그 나날 당의 은정속에 국가적인 대회와 회의들에도 여러 차례 참가하였다.
지금도 그의 집에는 그가 제4차 전국어머니대회에 참가하여
성천군에서 지방공업혁명의 장엄한 포성이 울려퍼진 그날에도 그는 기념사진앞에서 생각했다.우리 당의 숭고한 뜻을 받드는데서 누구보다 당과 조국의 사랑과 믿음을 많이 받아안은 자기가 앞장서야 한다고.
그가 구역원료기지사업소에 선참으로 탄원하자 김윤실, 김금실동무를 비롯한 서기동의 많은 녀성들이 따라나섰다.
그들이 탄원하게 된 사연은 서로 달랐다.그러나 그들의 가슴마다에 뜨겁게 간직되여있는것은 하나같았으니 그것은 날을 따라 더해만 가는 당과 국가의 은덕에 천만분의 하나라도 보답하려는 불같은 애국충성의 일념이였다.
한 가정의 울타리에서만 맴돌던 수십명의 녀성들이 당의 은덕을 가슴깊이 새기고 나라위한 길에서 인생의 새 출발을 한것은 정말 자랑할만한 미거이다.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결심을 내렸다고 해도 그것이 그대로 실천으로 이어지는것은 아니며 탄원의 첫걸음도 끝까지 이어가야 빛나는 법이다.
농사일은 생각했던것보다 훨씬 힘들었다.농사일에 지친 나머지 밭고랑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곯아떨어져 다음날 아침 남편과 자식들을 마주보기가 면구스러웠던 때도 있었다.
어느날 한 녀성은 작업과정에 뜻밖의 일로 몸을 다치고 앓아눕게 되였다.가뜩이나 일도 힘든데 앓아눕기까지 하니 별의별 생각이 다 났다.
그때 함께 탄원한 동무들이 집에 찾아왔다.갖가지 음식과 약재를 마련해가지고 찾아와 병문안도 하고 그동안 밀린 집일을 거들어주는 동무들의 모습을 보며 그는 가슴이 찌르르해졌다.터밭농사나 하며 제 집살림만 돌볼 때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집단과 동지들의 고마움을 가슴뜨겁게 안아보는 그에게 김복실동무는 말하였다.
우리가 하는 일이 힘든것은 사실이다.그러나 생각해보자.우리가 걷는 이 길이 어떤 길인가.당의 은덕에 보답하기 위해 나선 길이며 우리 가족들, 자식들에게 더 좋은 생활을 안겨주기 위한 길이다.이보다 더 보람있는 길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그의 말은 사업소에 탄원한 녀성들모두에게 충격을 주었다.아이들에게 안겨지는 《소나무》책가방과 《민들레》학습장, 《해바라기》학용품, 새 교복과 신발, 영양가높은 젖제품앞에서 늘 고마움의 눈물을 흘리던 그들이였다.그런데 오늘은 또다시 인민들에게 질좋은 식료품과 생활필수품을 넉넉히 안겨주기 위해 지방공업혁명의 불길을 세차게 지펴주었으니 그 사랑을 과연 그 어디에 비길수 있을것인가.
당과 조국을 받드는 보람찬 일터에서 보답의 자욱을 끝까지 수놓아가자.
이렇게 결심한 그들은 사업소의 일군들과 종업원들에게서 하나하나 배우며 이악하게 농사를 지었다.
김매기작업이 한창이던 어느날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오전작업에 지친 그들은 점심식사를 하고는 노그라졌다.
바로 그때 리정숙동무가 마이크와 증폭기를 들고 앞에 나섰다.그리고는 탄원하기 전에 녀맹돌격대활동으로 농장포전들과 건설장들을 들끓게 하던 그때처럼 노래선창을 떼였다.그러자 좀전까지 숟가락을 쥘 맥도 없다고 하던 그들이 한명두명 일어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얼굴에 비껴있던 지친 기색은 사라지고 어깨춤까지 추었다.
결국 그들은 그 기세로 그날 계획하였던 김매기와 다음날 하기로 했던 영양액분무까지 다 끝냈다.
그때부터 그들은 힘들 때마다 노래를 부르군 했다.제일 많이 부른 노래는 당에 대한 노래였다.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의 마음속소원도 모두 헤아려 날이 갈수록 크나큰 사랑을 베풀어주는 어머니당에 대한 노래를 부르고나면 온몸에 새로운 용기가 솟아 아무리 일해도 힘든줄 몰랐다.
보답의 한마음을 안고 포전을 가꾸어나가는 과정에 서로의 정도 두터워졌으니 그 나날 그들은 혼자 앞서나가는것보다 서로 도와주며 꼭같이 전진하는것이 더 보람있으며 다같이 땀흘려 일하고 오붓이 모여 나누어먹는 음식이 이 세상의 산해진미를 다 합친것보다 더 달고 맛있다는 생활의 진리도 깨달았다.
하루일을 끝낸 그들이 웃고 떠들면서 마을에 들어설 때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처음 그들이 일을 시작했을 때에는 힘든 농사일을 꽤 해낼수 있겠는가 하고 생각했는데 날이 갈수록 혈색도 좋아지고 걸음걸이도 씩씩해진다고, 새 출발도 좋지만 당의 은덕에 보답하려는 그 마음이 더 장하다고.
그럴 때마다 그들은 자기들의 성장에 고여진 진정을 가슴뜨겁게 되새겨보았다.
고향을 위해, 자신을 위해 새 출발을 한 그들의 결심을 그처럼 장하게 여겨 탄원모임도 크게 조직해주고 작업복과 신발, 작업도구까지 일식으로 갖추어주고 그들이 일하는 포전에 자주 들려 걸린 문제도 풀어주군 한 구역당책임일군과 여러 단위 일군들,
걸음걸음 이끌어주고 고무해주는 그 따뜻한 손길에 이끌려 그들은 온갖 애로와 난관을 이겨내며 포전마다에 깨끗한 구슬땀을 아낌없이 바쳐갔다.
뒤그루강냉이를 심던 지난 6월 그들의 마음은 타드는듯하였다.심한 가물에 강냉이포기들이 시들어갔던것이다.그러나 그들은 주저앉지 않았다.
가렬한 전화의 나날 전세대들은 폭격속에서도 다수확을 이룩하지 않았던가.그들처럼 우리도 기어이 곡식들을 살리고 우리 손으로 로적가리를 높이 쌓자.탄원의 그날에 다진 보답의 맹세를 값높은 실천으로 이어가자.
이런 자각을 안고 그들은 강냉이포기들을 살리기 위해 온종일 쉴새없이 뛰여다니였다.
끝끝내 가물을 이겨내고 푸르싱싱 자라는 곡식들을 볼 때의 그 기쁨은 얼마나 컸던가.
그들이 사업소에서 일을 시작한지는 몇달밖에 되지 않는다.하지만 길지 않은 그 나날에 그들은 한 가정의 뜰안에서는 한생을 산다 해도 다 배울수 없는 인생과 애국의 참뜻을 배웠다.그것은 바로 끝없이 베풀어지는 어머니당과 조국의 사랑을 가슴깊이 간직하고 순간순간을 값높은 위훈과 혁신으로 수놓아가는 성실한 근로의 삶, 바로 여기에 참다운 행복도 영광도 있다는것이다.
그 소중한 인생의 진리를 가슴깊이 새겨안고 그들은 오늘도 포전마다에 애국의 땀방울을 묻어가고있다.
글 본사기자 김송이
사진 본사기자 주대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