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생활의 향기

2024.08.08. 《로동신문》 5면


 

전승절 아침에

 

올해의 뜻깊은 전승절 아침이였다.

창성군 읍에 살고있는 전쟁로병들의 가정에는 이른아침부터 문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전쟁로병들의 집집을 찾은 사람은 창성군 읍 114인민반에 살고있는 전명희녀성이였다.그는 로병들을 위해 준비한 갖가지 별식을 그 가족들에게 안겨주며 명절을 축하해주었다.

전화의 불길속을 헤쳐온 로병동지들이 있어 오늘의 우리가 있다고, 고마운 은인이며 참다운 스승인 로병동지가 건강하여 로당익장하기를 바란다고 절절히 이야기하는 그를 대하는 로병들과 가족들은 감동을 금할수 없었다.

벌써 20여년세월 해마다 전승절이 오면 읍안의 전쟁로병들에게 성의껏 별식을 만들어 안겨주느라 온갖 성의를 다한 전명희녀성이였다.

이제는 나이가 많아 일손을 놓은지도 퍽 오랬지만 로병들을 위하는 그의 마음만은 변함이 없었다.

사람들이 정말 쉽지 않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을 때마다 그는 이렇게 말하군 한다.

《저의 아버지도 전쟁로병이였습니다.조국을 피로써 지켜싸운 아버지세대를 위하여 자식으로서 도리를 다하는것이야 너무도 응당한 일이 아닙니까.》

전쟁로병들을 위해 뜨거운 진정을 기울이는 전명희동무의 소행을 통해서도 우리는 혁명선배들을 존대하고 내세워주는것이 숭고한 도덕의리로, 고상한 기풍으로 되고있는 우리 사회의 참모습을 가슴후덥게 안아보게 된다.

 

제자가 아들이 된 사연

 

몇달전 대동강구역 문수1동 58인민반에 살고있는 신동규로인의 생일날이였다.

가족, 친척들이 모이고 다정한 이웃들도 찾아와 그의 생일을 축하해주려고 하는데 로인은 아직 아들이 도착하지 않았다며 생일상을 받을념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의아해하지 않을수 없었다.몇해전 그의 외아들이 조국보위초소에서 희생되고 애국렬사증을 받은 사실을 누구나 알고있었기때문이였다.

이때 온몸을 땀으로 적시며 한사람이 들어섰다.그때에야 사람들은 로인이 기다린 아들이 다름아닌 혁명사적지건설국 연공사업소 일군인 박대성동무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는 수십년전 로인이 조선체육대학에서 교편을 잡고있을 때의 제자였다.오랜 세월 스승에 대한 도덕의리를 다해가던 박대성동무는 그의 아들이 뜻밖에 희생된 후부터는 자기가 아들이 되여 온갖 지성을 다해왔던것이다.

더우면 더울세라, 추우면 추울세라 수시로 집에 찾아와 건강은 어떠한가, 생활에서 애로되는것은 없는가를 늘 알아보며 깊은 관심을 돌려주어 어느덧 신동규로인의 가슴속에 친아들의 모습으로 자리잡은 박대성동무였다.그는 남포혁명학원에서 공부하고있는 스승의 손자도 친아버지의 심정으로 돌봐주었다.

하여 이제는 그에 대해 신동규로인의 가족, 친척들은 물론 마을사람들도 잘 알고있었다.

이날 로인의 가정에서는 사람들모두가 고락을 함께 하는 우리 사회에만 있는 아름다운 덕과 정이 한껏 흘러넘쳤다.

본사기자 백광명

  

 

피해복구전역에 필요한 의약품들을 성의껏 마련하여 보내주고있다.

-평양시에서-

본사기자 리강혁 찍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