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에 집단주의구호가 더 높이 울린다

2024.08.09. 《로동신문》 4면


 

고락을 함께 나누는 심정으로

 

며칠전 은파군농기계작업소에는 출근시간이 되기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피해복구전구로 달려가는 탄원자들의 명단에 제일먼저 이름을 써넣고 피해지역으로 달려가게 된 작업소의 리철국동무를 축하해주기 위해서였다.

얼마후 그가 작업소에 들어서자 종업원들은 장한 결심을 한 동무가 부럽다고, 자기들도 피해복구전구로 함께 달려가고싶은 심정을 금할수 없다고 하면서 성의껏 마련한 작업복과 생활필수품을 안겨주었다.그렇듯 친혈육의 심정으로 자기의 결심을 적극 지지해주고 축하해주는 종업원들의 진정어린 마음에 청년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였다.

지배인 김인철동무는 그에게 가정에서 마련한 여러장의 모포를 들려주며 많지는 않아도 피해지역 인민들에게 전해달라고, 우리 종업원들도 언제나 그곳 인민들과 고락을 같이하는 심정으로 일하고있다는것을 전해달라는 부탁을 하였다.그뿐이 아니였다.종업원들도 가정에서 마련한 지성어린 물자들을 안겨주며 수재민들이 하루빨리 안정된 생활을 하기 바라는 마음을 꼭 전해달라고, 우리들의 마음까지 합쳐 일을 잘하여 당의 믿음과 기대에 꼭 보답하라고 절절히 당부하였다.

그 소박한 부탁들마다에는 진정 어려운 때일수록 온 나라가 서로 돕고 이끄는 화목한 대가정이 되여 고락을 같이해나가는 우리 인민특유의 참모습이 비껴있었다.

안정철

 

한곬으로 흐르는 마음

 

얼마전 모란봉구역 전승1동 2인민반의 한 창가에서는 밤이 깊도록 불빛이 꺼질줄 몰랐다.윤영실동무의 집이였다.

수재민들이 겪고있을 고생을 생각하니 무엇이든지 자기 손으로 지원물자를 마련하여 그들에게 보내주어야 마음이 편할것같았다.현재 그들의 생활에 제일 긴요한것이 무엇일가 하고 골똘히 생각하고있는데 문득 일이 바빠 퇴근할것같지 못하다고 하던 남편이 집에 들어서는것이였다.옷도 갈아입을념을 안하고 그와 마주앉은 남편은 이때껏 직장에서 수재민들에게 무엇을 더 보내줄것인가를 두고 생각을 거듭하다가 아무래도 가정주부인 안해와 함께 토론해야 보다 현실적인 방안이 나올것같아 이렇게 왔다고 하는것이였다.

그때였다.밤새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던 윤영실동무의 어머니가 함께 토론하자고, 아무래도 그런 측면에서야 오랜 생활체험을 가지고있는 이 전쟁로병이 낫지 않겠는가고 하며 그들에게 자기의 생각을 터놓았다.

그러면서 로병은 우리 전승세대는 언제한번 남이 아픔을 겪는것을 보면서 강건너 불보듯 한적이 없었다고, 천리마대고조시기에도 그랬고 고난의 시기에도 그랬다고, 지금 불시에 재난을 겪는 사람들에게 모두가 다문 한가지라도 보탬을 주면 그들의 생활이 하루빨리 안정되게 되고 당의 걱정이 조금이라도 덜어질게 아닌가고 이야기하는것이였다.그러면서 몸이 불편한 속에서도 자기 손으로 직접 지원물자들을 포장하였다.

그날 밤 윤영실동무는 가족과 함께 소박한 지원물자들을 마련하면서 이렇듯 뜨거운 마음들이 있는한 자연의 광란이 아무리 기승을 부린다고 해도 우리 인민의 행복한 생활과 밝은 웃음만은 절대로 빼앗지 못할것이라는 진리를 다시금 깊이 새겨안았다.

본사기자

 

온 마을의 자랑

 

며칠전 문천발브공장 고압발브직장 직장장으로 일하는 강문혁동무의 가정으로는 아침부터 마을사람들이 쉼없이 찾아왔다.

《우리 마을에 당원련대성원이 있다는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지척이라면 매일이라도 그곳에 찾아가고 싶지만 늙은 몸이라 마음뿐이구만.집걱정일랑 하지 말고 마을사람들의 마음까지 합쳐 우리 원수님의 어깨우에 실린 무거운 짐을 어서 빨리 덜어드리라구.》

이렇게 말하며 찾아온 로인내외를 비롯하여 색다른 음식과 물자들을 안고오는 마을사람들의 발걸음은 끊길줄 몰랐다.

친자식, 친형제가 조국과 인민을 위한 전구로 떠나가는 장한 모습을 안아보는듯 무엇인가 한가지라도 더 보내려고 세심히 마음쓰는 마을사람들의 진정을 받아안으며 강문혁동무는 눈시울을 뜨겁게 적셨다.

그는 당의 걱정과 아픔을 덜어드리는 길에 뜻도 마음도 함께 하려는 마을사람들의 몫까지 합쳐 남보다 흙 한삽이라도 더 뜨고 블로크 한장이라도 더 쌓아 우리 당이 굳게 믿는 당원의 본때를 남김없이 떨치리라 굳게 맹세다지며 만사람의 바래움속에 큰물피해복구전구로 떠나갔다.

온 마을의 자랑, 바로 여기에는 어렵고 힘들수록 사람들모두가 서로 돕고 위해주며 고락을 같이해나가는 우리 인민의 고상한 정신세계가 그대로 비껴있는것이다.

김예경

 

선경마을주인들이 쓴 편지

 

얼마전 홍원군 운포로동자구 93인민반의 주민들은 한자리에 모여앉았다.그들로 말하면 지금으로부터 4년전 뜻하지 않은 자연의 광란으로 집과 가산을 다 잃고 한지에 나앉았던 사람들이였다.

낳아키워준 친부모와 피를 나눈 형제들도 걱정만 할뿐 찾아올념조차 하지 못했던 그 바다가마을에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제일먼저 오시고 그이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떨쳐나선 온 나라 인민의 지성이 매일같이 와닿던 그때 얼마나 뜨거운 눈물을 흘리였던가.

그 나날을 되새기며 그들은 우리야 고마운 사회주의의 덕을 그 누구보다 눈물겹게 받아안은 사람들인데 오늘의 이 어려움을 가시는데 응당 앞장서야 하지 않겠는가고, 너도나도 지원물자를 보내주자고 결의해나섰다.그 모습을 감동깊은 눈길로 바라보던 인민반장 김영옥동무가 자기의 생각을 터놓았다.

《제 생각에는 지원물자와 함께 우리가 받아안은 사랑을 편지에 담아보내는것이 좋을것같아요.그러면 수재민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겠어요.》

순간 그들은 복받은 자기들의 마을을 새삼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이제 그보다 더 멋있고 희한한 마을들이 조국의 서북변에 일떠선다고 생각하니 한시바삐 편지에 펜을 달리고싶은 마음을 금할수 없었다.하여 그날 밤 집집의 창가마다에서는 밤깊도록 불빛이 꺼질줄 몰랐다.

선경마을주인들이 쓴 편지, 진정 거기에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어버이로 모신 화목한 대가정에서는 난관이 겹쌓여도 언제나 행복의 웃음이 꽃펴난다는 굳은 신념이 비껴있었다.

글 본사기자 정영철

사진 본사기자 김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