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10. 《로동신문》 8면
《온 나라에 서로 돕고 이끄는 고상하고 아름다운 미풍이 차넘치게 하여 우리 사회를 화목하고 단합된 일심단결의 대가정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 사는 조국은 얼마나 아름다운가.세상사람들은 어찌하여 우리 사회를 두고 인간사랑의 화원이라 부르는가.
며칠전 피현군 당후리에서 살고있는 최금희녀성이 우리에게 보내여온 편지에서도 이에 대한 해답을 찾을수 있다.
《…태여난지 다섯달 남짓한 우리 아들이 뜻밖의 병에 걸려 위급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앞이 캄캄하였습니다.어찌할바를 몰라 안타까와하고있을 때 군병원 소아과 의사 리해연선생님과 평안북도소아병원 김의환, 김철성선생님들이 긴급한 치료대책을 세워 위험고비를 넘길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후 최금희녀성의 아들애는 지방의 여러 병원을 거쳐 옥류아동병원으로 파송되게 되였다.
신의주시를 떠나 평양으로 향한 렬차에 오른 최금희녀성의 마음은 무거웠다.자식에 대한 걱정과 함께 밭은 친척 하나 없는 외지에서 저 혼자 어떻게 하랴 하는 생각에서였다.하지만 그는 렬차에서부터 친혈육과도 같은 고마운 사람들의 따뜻한 정을 느끼였다.
렬차승무원들은 평양까지 오는 전 기간 그들모자를 위해 온갖 성의를 다하였다.
평양역에 도착한 다음에도 그들은 급히 집을 떠나온 최금희녀성의 심정도 헤아려 입원생활에 필요한 생활필수품도 성의껏 마련해주었다.
옥류아동병원에 도착한 최금희녀성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도소아병원의 전화를 받은 의료일군들이 대기하고있다가 자기들을 마중하는것이 아닌가.
즉시 수술에 진입하였다.
그때의 심정을 최금희녀성은 편지에 이렇게 썼다.
《그때 어린 생명을 소생시키기 위해 이비인후두경부외과 과장 김송란선생님과 담당의사 김재란선생님을 비롯한 의료일군들이 얼마나 뜨거운 정성을 기울이였는지 저는 미처 알수 없었습니다.지금도 수술실에서 나오면서 어린 명인이가 참 용타고, 아들애의 병치료는 이제부터 시작이지만 얼마든지 고칠수 있으니 마음을 놓으라고 위로해주던 선생님들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긴장한 치료사업으로 온밤을 꼬바기 지새운 의료일군들의 정성에 떠받들려 울음소리조차 내지 못하던 아이의 얼굴에는 다시 생기가 돌았다.
사회주의제도가 아니라면 평범한 농장원의 자식인 우리 명인이가 어떻게 소생할수 있으랴.
이런 생각이 갈마들수록 자기들을 위해 마음을 쓴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렬차에서 자기들을 살뜰히 보살펴준 사람들이며 옥류아동병원으로 무사히 태워다준 이름모를 승용차운전사, 병원으로 오는 길에 아들애의 정상을 두고 가슴아파하면서 친혈육의 심정으로 도와준 녀인…
그들에 대한 고마움의 마음이 솟구칠수록 이름도 주소도 알지 못하고 헤여진것이 몹시 서운하였다.
그런데 다음날 최금희녀성은 자기들을 찾아온 사람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이의 수술결과가 걱정되여 찾아왔다고 하는 사람들은 뜻밖에도 렬차와 로상에서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였다.
그때에야 최금희녀성은 그들이 철도안전국에서 일하는 오금혁, 최성일동무들이며 사업상용무로 평양에 출장온 신의주시 무궁동 6인민반에서 사는 최명희동무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부모된 심정으로 세심히 관심하고 보살펴주는 그들의 진정어린 모습을 보며 사회주의제도에 대한 고마움을 금할수 없었습니다.정말 잊지 못할 그 나날은 온 나라가 화목한 대가정이 되여 서로 돕고 이끌면서 기쁨도 아픔도 함께 나누는 우리 조국의 아름다운 현실을 눈물겹게 체험한 잊지 못할 순간순간이였습니다.》
흥분과 격정으로 엮어진 편지에서 최금희녀성은 퇴원한 후에도 고마운 은인들의 뜨거운 정성이 끊임없이 이어지고있는데 대하여 적었다.
우리는 녀인의 꾸밈없는 진정이 담긴 편지에서 어디 가나 모두가 친형제, 친혈육으로 사는 우리 인민, 서로 돕고 이끄는 미덕의 힘, 사랑의 힘으로 난관을 뚫고 전진해가는 우리 사회의 참모습을 가슴뜨겁게 안아볼수 있었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 엄수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