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애국공로자들의 고결한 인생관을 따라배우자
우리 당이 시대와 인민앞에 값높이 내세워준 강남익, 김명철, 김영선, 안성모, 차옥영동무들

2024.10.27. 《로동신문》 4면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자기 일터, 자기 초소를 사랑하고 맡은 일을 성실하게 하는 유명무명의 애국자들에 의하여 나라가 부강해지고 사회주의락원이 일떠서게 되는것입니다.》

우리 당이 값높이 내세워준 사회주의애국공로자들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렇게 말한다.

그들이야말로 참된 애국자들이라고, 그들의 삶은 애국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가르쳐주는 훌륭한 교재와 같다고.

하다면 그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인가.과연 무엇으로 하여 그들은 조국과 인민의 사랑을 받는 애국의 값높은 단상에 오르게 되였는가.

 

우리의 일터는 가장 영예로운 초소

 

이 땅에서 사는 사회주의근로자라면 누구에게나 당과 조국이 맡겨준 일터가 있다.허나 일터에 섰다고 하여 누구나 위훈자가 되는것은 아니다.자기의 일터를 어떻게 여기는가에 따라 일본새에서 큰 차이가 나기때문이다.

위대한 장군님과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몸소 찾아주신 락랑영예군인수지일용품공장에 대하여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것이다.신문과 TV를 통해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공장에 대해서도, 공장을 오늘과 같이 훌륭하게 일떠세운 지배인 강남익동무에 대해서도 잘 알고있다.하다면 강남익동무는 과연 무엇으로 영예군인들이 다수를 이루고있는 크지 않은 공장을 인민생활향상에서 큰 몫을 맡아하고있는 보배공장으로 추켜세울수 있었는가.

지금으로부터 20여년전 그가 이곳 지배인으로 배치되여왔을 때까지만 하여도 공장에서는 쌀함박을 비롯한 소소한 수지제품들을 수공업적인 방법으로 생산하고있었다.공장구내는 조금만 비가 내려도 감탕판으로 변하군 하였다.하지만 그보다 그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하는것은 종업원들이 자기 일터에 대한 애착이 없이 하루하루를 헛되이 보내는것이였다.

공장에 흐르는 저조한 분위기를 온몸으로 느끼며 구내길을 걷던 그는 위대한 수령님의 명제가 새겨져있는 글발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그 글발을 우러를수록 영예군인들이 군사복무시절에 세운 군공을 애국의 공훈으로 영원히 이어가기를 바라는 우리 당의 크나큰 믿음이 어려와 가슴이 울렁이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며칠후 그는 새로 개건해야 할 공장전경도를 종업원들에게 보여주며 자기의 심정을 이렇게 터놓았다.모두가 자기의 일터를 병사시절의 전호처럼 사랑하며 귀중히 여길 때 애국의 길을 변함없이 이어갈수 있다고.

그때부터 강남익동무는 낮과 밤이 따로없이 뛰여다녔다.그와 더불어 현대적인 생산건물들이 자태를 드러내고 생산정상화의 동음이 더 높이 울려퍼지니 종업원들은 멋들어지게 변모된 공장에서 일하는 긍지, 질좋은 제품을 받아안고 좋아하는 인민들의 모습을 보는 기쁨이 제일이라며 누구나 일터에 애착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일군에게 있어서 자기 종업원들을 불러일으키는 방법은 여러가지이다.

치밀하고 구체적인 조직사업과 완강하고 능숙한 전개력, 새 기술도입과 후방사업…

그러나 종업원들에게 자기 일터에 대한 애착과 긍지를 심어주는것은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그것은 일터에 대한 사랑과 정이 열렬할 때 모든 일을 주인다운 립장에서 책임적으로 해나갈수 있기때문이다.뜨거운 공장애, 일터애야말로 위훈과 혁신의 진함없는 동력인것이다.

이 중요한 몫을 맡은 사람들이 다름아닌 일군들이며 일군들의 헌신적인 일본새에 따라 일터에 대한 사람들의 관점과 태도가 달라진다는것을 강남익동무는 자신의 실천적모범으로 보여주었다.

얼마전 아침 공장의 한 일군은 그가 수첩에 하루동안에 종업원들을 위해 해야 할 일거리를 60가지나 적어넣은것을 보게 되였다.예순이 훨씬 넘은 몸으로 그 많은 일감들을 다 해낼수 있겠는가고 놀라와하던 일군은 그날 저녁늦게 지배인을 만나보고서는 더더욱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그새 수첩에 씌여져있던 일거리들은 물론이고 그가 더 찾아 해놓은 일이 70가지나 되였던것이다.

김일성훈장을 수여받고 3중3대혁명붉은기단위의 영예를 높이 떨치는 공장, 이 모든 성과속에는 그렇듯 종업원들의 가슴속에 일터에 대한 긍지와 애착을 심어주기 위해 아글타글 애쓴 그의 진정과 노력이 깊이 슴배여있는것이다.

내가 지켜선 일터는 가장 영예로운 초소, 이 자각만 굳건하면 누구나 애국자가 될수 있다는것을 우리는 만수대창작사 단장 김명철동무의 모습을 통해서도 뜨겁게 새겨안을수 있다.

김명철동무는 늘 하루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부서성원들의 옷차림과 머리단장을 비롯하여 외모를 깐깐히 살펴보군 한다.그러면서 그는 늘 이렇게 강조했다.

이 세상에 수많은 일터가 있어도 우리 일터처럼 영광스럽고 보람찬 일터는 없다.때문에 몸가짐부터 정중하게 해야 우리가 하는 하나하나의 일에 티없이 순결한 충성의 마음을 다 바쳐나갈수 있다.

이것은 부서성원들에게 하는 당부이기 전에 그의 가슴속에 소중히 간직된 고결한 삶의 신조이다.하기에 그는 지난 47년간 자기가 맡은 영예로운 사업에 지혜와 열정을 깡그리 바쳐갔다.

10여년전 그는 수십m높이의 고공에서 24시간이상 일한적이 있었다.사람들은 강추위를 이겨내며 오랜 시간 긴장하게 일하느라 굳어진 그의 손과 발을 주무르며 몹시 걱정했다.그런데 그의 입가에서는 느닷없이 수십년전 처음으로 삼지연대기념비건설에 참가했을 때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때 자기 고장에 대기념비가 일떠선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 한 로인이 한번만이라도 손을 잡아보자고 하며 그에게 이렇게 말하였다는것이다.자네들의 손이야 누구도 대신할수 없는 영예로운 일을 하는 보배손이 아닌가고.

그 로인의 모습을 보면서 수령을 받드는 우리 인민의 충성심에 대하여 잘 알게 되였다고 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부서성원들은 인민들의 가슴속에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자애로운 모습을 새겨주는 영광스러운 일터에서 일하는 긍지와 자부심을 더욱 깊이 간직하게 되였다.

맡은 일터가 영예로운 초소라고 하여, 한직종에서 오래동안 일한다고 하여 누구나 그 단위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로 되는것은 아니다.아무리 충실성이 높고 일욕심이 크며 로동년한이 많다고 해도 실력이 안받침되지 못하면 맡겨진 임무를 훌륭히 수행할수 없고 자기의 일터도 빛내일수 없다.이것을 항상 명심하였기에 그는 자신의 실력을 충성심과 애국심을 검증받는 중요한 척도로 여기였다.

얼마전 깊은 밤중에 구내를 돌아보던 한 일군은 어느한 사무실에서 새여나오는 불빛을 보게 되였다.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서니 방금전에 퇴근한줄 알았던 김명철동무가 책상에 마주앉아 새로 나온 과학기술잡지를 열심히 읽고있는것이였다.밤도 퍽 깊었는데 이젠 그만하고 쉬라고 하는 일군에게 그는 말했다.과학기술에 정통하지 못하면 한순간의 실수, 한점의 티도 허용해서는 안되는 우리 사업에 빈틈이 생기게 되지 않겠는가고.

이런 불같은 정열을 안고 사는 그였기에 당간부양성의 최고전당에 세운 조선로동당 상징탑을 비롯하여 언제나 당에서 맡겨준 과제들을 짧은 기간에 최상의 수준에서 수행할수 있었다.

자신들의 고결한 지향과 꾸준한 실천으로 사회주의애국공로자라는 고귀한 칭호를 받아안은 그들의 값높은 삶은 이런 진리를 가르쳐주고있다.이 땅의 모든 일군들과 근로자들이 자기 일터에 대한 긍지와 애착을 언제나 가슴깊이 간직하고 살며 일할 때 누구나 값높은 애국으로 인생을 빛내일수 있다는것을.

 

힘겨운 일감을 맡을수록 마음이 편해진다

 

신의주의학대학 교원 김영선동무에 대하여 사람들은 당이 바라고 조국에 보탬이 되는것이라면 그 무엇이든 서슴없이 자기 일감으로 떠안는 쉽지 않은 녀성이라고 이야기하군 한다.

그의 아름다운 인생관을 보여주는 이야기들가운데는 이런 일도 있다.

애어린 처녀시절 신의주방직공장 공업시험소에서 실험공으로 일하던 어느날 그는 우리 나라에서 많이 생산되는 비날론천을 가지고 더 좋은 옷을 만들어 입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받아안게 되였다.

우리들에게 행복한 생활을 안겨주기 위해 늘 마음쓰시는 어버이수령님의 뜻을 받들어 나는 무엇을 할수 있는가.

이런 생각을 줄곧 품고있던 그는 비날론을 염색하여 갖가지 색갈의 천을 만들기 위한 연구사업에 달라붙기로 결심하였다.그 사실을 알고 많은 사람들이 놀라와하였다.

대학졸업생도 아닌데 어떻게 전문연구사들도 어려워하는 그런 초행길에 나서려고 하는가고.

하지만 그는 자기의 결심을 실천으로 구현하기 위해 이악하게 노력하였다.언제나 그의 손에는 화학참고도서들이 들려있었고 그의 집은 실험실처럼 되여갔다.그 나날에는 우리 나라에 흔한 원료로 염색에 리용하는 물질을 만들기 위해 수백㎏에 달하는 짐을 운반하던 천여리 렬차행군길도 있었고 헤아릴수 없는 실패속에서 너무도 안타까와 눈물로 한밤을 지새우던 때도 있었다.

이런 불같은 노력이 있어 그는 마침내 우리 식의 염색방법을 내놓게 되였으며 그후에도 많은 연구사업을 성공시켜 인민생활향상에 적으나마 이바지하였다.

하지만 그는 지칠줄 모르는 열정으로 한생을 탐구의 길에 바쳐갔다.당과 국가의 고충을 풀기 위해 스스로 힘든 일감을 맡아안고 그것을 해결하는 길에서 진정한 보람과 기쁨을 찾으려는것이 그의 삶의 지향이였던것이다.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에 따라 삶의 가치가 평가된다.아무리 오래 살았다 해도, 자신과 가정을 위해 많은 재부를 쌓아놓았다 해도 조국의 어려움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자기만을 위해 사는 생, 국가의 리익은 안중에도 없이 자기 안위부터 생각하는 그런 삶을 과연 어느 누가 기억하겠는가.

하기에 김영선동무는 신의주의학대학에서 교편을 잡은 후에도 나라위한 일을 스스로 찾아하였다.학생들에 대한 교수사업으로 늘 바쁜 속에서도 환경오염을 막을데 대한 당의 뜻을 받들어 지하수침전물을 리용하는 염색페수정화제를 만들었고 자체의 힘으로 지혈해면제를 개발하여 인민들의 건강증진에 적극 기여하였다.

이렇듯 힘든 일감을 맡을수록 마음은 편해진다는 고결한 지향 안고 애국의 길을 변함없이 걷는 사람들속에는 사리원시의 어느한 사업소 지배인 안성모동무도 있다.

지배인으로 임명받았을 당시 사업소의 토대는 너무도 빈약했다.그로 하여 이런저런 나약한 생각에 사로잡혀있던 그의 눈에 문득 떠오른것은 값높은 삶의 자욱을 남긴 아버지의 모습이였다.

그의 아버지 안희찬동지는 전쟁의 불비속에서도 먼 앞날을 내다보시며 몸소 사리원과수농장의 터전까지 잡아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숭고한 뜻을 충직하게 받들어 한생을 빛나게 살아온 로력영웅이였다.

아버지가 수여받은 사랑의 금반지와 로력영웅메달을 새삼스럽게 바라보는 그의 귀전에 아버지가 입버릇처럼 외우던 말이 금시라도 들려오는듯싶었다.

당의 믿음에 뼈를 깎고 살을 저며서라도 기어이 보답하겠다는 각오만 굳세면 그 어떤 어려운 일도 능히 해제낄수 있다.

아버지의 그 목소리가 투신이냐, 보신이냐 하는 갈림길에서 동요하던 안성모동무를 정신차리게 해주었다.

그렇다.하늘이 무너진다 해도 당이 맡겨준 혁명초소를 끝까지 지켜내겠다는 결사적이며 희생적인 책임감을 자각할 때 못해낼 일이란 없다.

이렇게 잡도리를 단단히 하고 분발한 그는 오래된 과일나무들을 우량품종으로 전부 교체하였으며 사업소건물들도 하나하나 일신시켜나갔다.그리고 자신부터가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밤을 지새우며 배우는 한편 모든 종업원들을 당에서 바라는 지식형의 근로자들로 키우려는 목표를 내세우고 단꺼번에 절반도 더 되는 종업원들을 일하면서 배우는 교육체계에 망라시켰다.

그렇게 많은 일감을 떠안고 힘들지 않은가고 묻는 사람들에게 안성모동무는 흔연히 대답하군 했다.우리의 일감이 많으면 그만큼 나라의 일감이 적어질게 아닌가고.

하여 3중3대혁명붉은기를 쟁취한 사업소의 면모는 오늘 몰라보게 달라졌다.그와 함께 과일생산도 몇배로 뛰여오르고 종업원들도 높은 기술기능을 소유하게 되였다.

사회와 집단을 위한 일감을 스스로, 이것은 사회주의애국공로자들의 한결같은 지향이며 헌신적인 복무자세이다.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하는것으로 그치지 않고 사회와 집단을 위한 일을 스스로 찾아한다는것은 만짐우에 덧짐을 얹는것과도 같다.당의 뜻을 온넋으로 받들려는 진실한 마음가짐이 없이는 자기의 삶과 투쟁을 스스로라는 말과 나란히 이어놓을수 없다.

천성청년탄광 후방부 축산작업반 반장 차옥영동무, 그는 자기의 량심에 스스로의 구령을 내리며 탄부들을 위해 모든것을 바쳐가는 성실한 인간이다.

지금으로부터 6년전 당시 탄광에서 과장으로 사업하고있던 차옥영동무가 과성원들에게 탄부들의 후방공급사업에 도움을 줄수 있게 축산을 해보자고 했을 때 모두가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축산, 그것은 자기들의 업무와는 너무도 거리가 먼 생소한 일이였다.게다가 불과 몇명의 성원을 가지고 그런 일판을 벌려놓는다는것이 아름차게만 여겨졌던것이다.하지만 탄부들을 생각하는 차옥영동무의 진정에 끌려 모두가 그의 발기를 적극 지지해나섰다.

탄광주변의 산발을 오르내리며 집짐승우리를 지을 부지를 확정한 그는 낮에는 맡은 일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밤이면 건설을 중단없이 내밀기 위해 발이 닳도록 뛰여다녔다.좋은 집짐승종자를 마련하고 먹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면 밤길도 마다하지 않았다.

몇달후에 탄광지구의 절골에는 새로운 축산기지가 자태를 드러냈다.뒤이어 고기와 알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그해에 차옥영동무와 부서성원들은 10여t의 고기와 수만알의 닭알을 생산하여 탄부들의 후방사업에 큰 보탬을 주었다.

하지만 그의 일욕심에는 한계가 없었다.축산기지를 더욱 확장하여 사료가공실과 단백먹이서식장을 갖춘 종합축사와 양어장을 건설하였으며 축산작업반원들의 문화정서생활거점도 번듯하게 꾸려놓았다.

탄부들을 위해 바치는 그의 진정은 축산작업반 반장이 된 후에도 변함이 없었다.

그에게서 축산경험을 배우려고 찾아왔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했다.사람은 누가 떠밀어준다고 하여 자기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는것이 아니라 바치는 삶을 더없는 락으로, 보람으로 여기는 숭고한 인생관을 지닐 때 적극적인 실천으로 사회와 집단에 공헌할수 있다고.

이렇듯 조국과 인민, 사회와 집단을 위해 힘든 일을 도맡아안고 고심하며 분투하는데서 생의 희열과 보람을 찾는 사람을 누군들 따르고 존경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누구나 사회주의애국공로자들처럼 당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심을 간직하고 자기의 일터를 무한히 사랑하며 나라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해 스스로 힘겨운 일감을 맡아안고 땀과 열정을 아낌없이 바칠 때 시대의 선구자, 참된 애국자로 떳떳하고 값높은 삶을 누릴수 있다.

본사기자 조경철

본사기자 김학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