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원의 날 다진 맹세를 지켜
산골군이 자랑하는 녀교원
창성군 창성소학교 교원 장은하동무는 지금으로부터 10여년전 대학을 졸업하고 당의 령도업적이 그 어느곳보다 뜨겁게 깃들어있는 창성군으로 탄원하여왔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자기의 결심을 변함없이 지켜간다는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다는 알수 없었다.한해두해 세월이 흘러 가정을 이루고 게다가 뜻밖의 일로 남편까지 자리에 앓아눕게 되자 저도 모르게 마음이 흔들리는것을 어쩔수 없었다.일부 사람들은 그에게 교원생활을 그만두고 집에서 앓는 남편의 시중이나 드는것이 어떤가고 이야기하기도 했다.그러나 그는 산골군에 탄원하였다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내세워주며 사랑과 정을 다해준 군당위원회와 학교일군들의 모습을 되새겨보며 이겨내군 했다.
그는 자신의 실력을 높이기 위해 아글타글 노력하여 여러건의 새 교수방법도입증과 실험기구 및 교편물창안증을 수여받았다.뿐만아니라 학생들의 학습과 생활을 친혈육의 심정으로 돌봐주는 한편 학생들의 가슴속에 어렸을 때부터 애국의 마음을 심어주기 위해 그들과 함께 군안의 여러 건설장을 찾아 뜨거운 지성을 바치였다.이 나날 그는 여러 차례
오늘도 그는 탄원의 날에 다진 맹세를 지켜 조국의 미래를 책임진 교원혁명가로서의 깨끗한 량심과 헌신의 자욱을 교정에 새겨가고있다.
본사기자 김일경
고향과 자식앞에 떳떳한 모습으로
지난 4월초 평양견학을 마치고 돌아온 장연군원료기지사업소의 탄원자들은 한자리에 모여앉았다.
군일군들과 사업소종업원들의 환송을 받으며 평양으로 올라갈 때에는 누구나 아이들처럼 기뻐했지만 정작 견학을 마치고 돌아오니 자기들이 해놓은 일이 너무도 보잘것없는것만 같아 자책감에 머리를 들수 없었다.
고향사람들의 기대와 당부에 어긋남이 없이 우리가 일을 했던가.이런 생각으로 지난날을 돌이켜보고있을 때 홍성애동무가 불쑥 앞에 나섰다.
금수산태양궁전과 대성산혁명렬사릉에서 다진 결의대로 이 탄원지에 더 많은 애국의 땀방울을 바쳐가자.그래서 올해에는 당의 뜻대로 농사를 잘 지어
그의 열띤 호소에 모두가 화답해나섰다.다음날부터 모두가 담당포전의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거름 한줌이라도 더 내기 위해 뛰여다니였고 한평의 새땅이라도 더 찾아 한포기의 곡식이라도 더 심기 위해 아글타글 노력하였다.멀리 떨어진 원료기지에 질좋은 진거름을 내기 위해 매일같이 수십리길을 오가는 녀성들도 있었고 군대에 나간 자식에게 떳떳한 어머니의 모습을 새겨주고싶다고 하면서 두몫, 세몫의 일을 해제끼는 녀성도 있었다.
지금도 그들은 고향과 자식들앞에 부끄럼없는 생의 자욱을 남기겠다는 일념 안고 애써 노력하고있다.
안정철
대답은 오직 실천속에
온천군 귀성목화농장 농장원 박선미동무가 농사일을 한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탄원지에서 처음 해보는 농사일이였지만 그는 오랜 농장원들에게서 이악하게 배워갔다.하루빨리 다수확자대렬에 들어설 포부를 안고 그는 늘 포전에서 살다싶이 하면서 한포기한포기의 농작물을 자기의 살점처럼 여기며 애써 가꾸었다.
오늘날 농사일은 뚝심만으로는 할수 없다는것을 자각한 그는 선진적인 농업과학기술지식을 하나라도 더 습득하기 위해 시간을 아껴가며 열심히 공부하였다.그 나날 힘든 때가 많았지만 제일 괴로운것은 농사일에 서툰 자기가 남들에게 오히려 짐이 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갈마들 때였다.
하지만 그때마다 그는 탄원의 날 부모와 동무들앞에 다진 맹세를 되새겨보며 어려운 고비들을 이겨내군 했다.
그런 그의 모습을 지켜보며 곁에서 말없이 도와준 사람들이 바로 농장의 일군들이였다.청춘시절에 자기보다 먼저 나라를 생각할줄 아는 그 마음이 귀중하다고, 그것만 있으면 모든 난관을 다 이겨낼수 있다고 힘과 용기를 안겨주는 조직과 동지들의 다심한 손길이 있어 그는 어엿한 실농군으로 자라났다.
걸음걸음 량심의 자욱을 새기면서 그는 청춘시절에 다진 맹세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끝까지 지키는것이 더 중요하다는것을 절감하였다.
하기에 그는 올해에도 어떻게 하나 다수확을 이룩하여 당에 기쁨을 드리겠다는 오직 한가지 생각만을 안고 포전에서 밤낮이 따로없이 분투하고있다.
본사기자
탄원자의 영예를 안고 농촌기계화실현의 앞장에 섰다.
-재령군 삼지강농장에서-
본사기자 주대혁 찍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