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가치는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나에게는 하나의 일과가 있다.아들이 조선소년단창립 66돐 경축행사에 참가하여
그러면 10여년전 그날의 감격과 함께 잘못 살아온 지난날이 떠오르고 일을 더 많이 하여야겠다는 결심이 갈마들군 한다.
《병든 자식, 상처입은 자식을 탓하지 않고 더 마음을 쓰며 사랑과 정으로 품어주고 아픈 상처를 감싸주며 또다시 일으켜 내세워주는 품, 이것이 어머니 우리당의 품입니다.》
나의 부모는 맡은 일에 혼심을 쏟아붓다가 일터들에서 순직했다.사회주의애국희생증을 수여받은
그러나 나의 이 마음은 시집을 간 후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지난날 잘못 살아온 남편때문이였다.사람들이 나를 색다른 눈으로 보는것만 같아 저도 모르게 주눅이 들었고 아들이 태여나고 여러가지 가정사정이 제기되자 아예 직장일을 그만두기까지 했다.
점차 나의 머리속에는 장사를 본때있게 해서 남편과 아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위축되지 않게 보란듯이 내세워야 하겠다는 생각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한쪽으로는 아들이 점차 철이 들면서
만약 그때 한 전쟁로병아바이와 인연을 맺지 못했다면 우리 가정은 여전히 사람들앞에 떳떳치 못한 모습으로 남아있었을것이다.
어느 명절날 나는 우연히 한 로병아바이를 알게 되였다.처음 보는 모습이였지만 대번에 나는 로병아바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친아버지의 심정으로 우리 가정일에 관심을 돌려주고 귀중한 사상정신적량식을 주는 로병이 고마와 나는 자주 로병을 찾아갔고 어린 아들도 로병할아버지를 그 누구보다 따랐다.
그러던 어느날이였다.
로병의 집에서 돌아온 아들이 문뜩 나에게 다음날부터 좋은일하기운동을 벌려 《소년》호땅크를 인민군대에 보내주겠다는것이였다.총이 부족해 락동강가에 전우들을 묻고 피눈물을 삼키며 돌아서야 했다는 로병할아버지의 이야기가 나어린 아들로 하여금 이런 결심을 내리게 했던것이다.
어린 자식에게 이런 장한 마음을 자래워준 로병아바이가 정말 고마왔다.이렇게 되여 우리 가정에서는 파철을 수집하기 시작했고 몇년후에는 수십t의 파철과 지원물자를 한가득 싣고 강선의 로동계급을 찾아가게 되였다.
그런데 그로부터 얼마후 우리 주현이가 조선소년단창립 66돐 경축행사에 대표로 참가하게 될줄 상상이나 해보았겠는가.꿈속에서도 그려보지 못한 소식에 접한 우리부부는 아들의 대표증을 쓸어보고 또 쓸어보며 소리내여 울었다.
우리가 과연 모범적인 소년단대표의 부모라고 떳떳이 자부할수 있게 살아왔는가.나라일보다도 가정의 리익을 앞에 놓고 그를 위해 분주히 뛰여다닌 우리들이 아닌가.
그런데도 나라에서는 우리 아들의 마음속에 간직된 애국심을 소중히 여겨 나라를 위해 자기를 깡그리 다 바친 근로자들의 자녀들과 나란히 평양으로 불러주었으니 세상에 이런 고마운 품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나는 아들이 평양에 올라가있는 기간 정말 많은것을 생각했다.온 나라가 부러워하는 소년단대표들속에 나의 아들도 있다는 생각으로 신문과 TV를 보고 또 보았다.그럴수록 재산을 그득히 쌓아놓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빠져있던 내가 참으로 부끄러웠다.
지난날의 잘못을 씻고 조선로동당원의 영예를 지닌 남편의 모습까지 대하게 되니 나의 이런 부끄러움은 죄스러움으로 이어졌다.혁신자였던 내가 남편과 아들을 다잡아주고 이끌어주던 옛 시절이 그리웠다.지금은 집안에서 나 혼자만이 사회앞에 떳떳치 못한 모습으로 되여 집식구들중에서 제일 뒤떨어졌다는 생각에 나는 잠들수 없었다.
늦게나마 나는 수십년간 보건일군으로 일해온 어머니처럼 살리라는 결심을 품고 보건부문에서 새 출발을 했다.헛되이 살아온 지난날을 봉창하려고 맡은 일에 모든 정력을 쏟아부었고 국방력강화에 조금이나마 이바지하기 위해 애썼다.나라에서는 나의 이런 자그마한 소행을 귀중히 여겨 얼마전에는 전국직맹미풍열성자회의에 불러주었다.
사람들앞에 떳떳한 모습으로 나서게 된 우리 가정의 오늘, 나자신의 오늘을 두고 나는 아직도 지난날의 나처럼 살고있는 사람들에게 말하고싶다.
지난날 어떻게 살아왔든, 그 어떤 마음속고충을 안고 살든 나라를 위해 자기를 깡그리 바칠 때 어머니조국은 사회와 집단앞에 자랑스러운 모습으로 내세워준다고, 인간의 가치는 재부로가 아니라 애국심으로 결정되게 된다고.
남포시의약품관리소 로동자 변혜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