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원의 날 다진 맹세를 지켜
하늘같은 그 사랑에 보답할 열망 안고
당의 크나큰 사랑과 은정속에 재난의 흔적이 가셔지고 사회주의리상향이 솟아난 그 어느곳에서나 그러하듯이 자강도에서도 보답의 열망이 일어번지고있다.
특히 가정주부들을 비롯한 수많은 녀성들이 당의 하늘같은 사랑에 보답하기 위하여 당중앙전원회의 결정관철을 위한 전구들로 달려나가 깨끗한 땀과 량심을 바치는것이 하나의 흐름으로 되고있다.
그들중에는 후대들을 위한 사업을 한시도 미룰수 없는 최중대사로 내세우는 당의 숭고한 뜻을 꽃피우는데 적은 힘이나마 이바지하기 위해 강계학생교복공장으로 탄원진출한 녀성들도 있다.
학생교복의 질을 높이자면 높은 기능을 소유해야 한다는것을 자각한 그들은 하루빨리 기능공대렬에 들어서기 위해 피타는 노력을 기울이였다.
하루종일 일을 하고서도 밤을 새워가며 과학기술학습을 하는 녀성들과 불편한 몸이지만 기대곁을 떠나지 않은 녀성들…
자기 자식에게 옷을 해입히는 어머니의 심정으로 한뜸한뜸 정성을 고여오는 나날에 그들은 비단 기술기능수준만을 높이지 않았다.
생활상어려움을 겪거나 앓고있는 종업원을 위해 뜨거운 지성을 바치는 등 서로 돕고 이끄는 고상한 미풍을 발휘하고있다.
하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불같은 열정과 일본새, 정신도덕적품성이 정말 남다르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고있다.
하늘같은 당의 사랑과 은정에 보답할 불같은 마음 안고 지금 이 시각도 그들은 혁신의 동음을 높이 울려가고있다.
세 남매가 간직한 소원
당의 령도업적이 뜨겁게 깃들어있는 사리원시 미곡농장에는 농사를 잘 지어 하루빨리 인민들의 식량문제를 푸는데 이바지할 불같은 마음을 안고 농장벌로 달려나온 청년들이 적지 않다.
그들중에는 지금으로부터 10여년전에 탄원하여온 유총숙, 유폭숙, 유탄원동무도 있다.
사실 그들은 친오누이가 아니다.이런 그들이 농촌에 삶의 뿌리를 내릴것을 결심한데는 사연이 있다.
나라가 그처럼 어렵던 고난의 행군시기 부모를 잃은 그들은 어느한 군관의 집에서 육친의 사랑과 정을 받으며 자라났다.
철이 든 후 그들은 부모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듣군 하였다.
너희들을 키운것은 자기들이 아니라 고마운 사회주의제도라고.
이렇게 사회주의제도의 고마움을 마음속깊이 느끼면서 자란 그들이였기에 나라가 제일 걱정하는 농사문제를 해결하는데 청춘의 삶을 바치는것을 자기들의 소원으로 간직하게 되였고 중학교를 졸업하고 갈 곳도 많았지만 수도 평양을 떠나 농장으로 탄원해오게 된것이다.
물론 농사일을 처음으로 해보는 그들에게 있어서 주저앉고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였다.그때마다 그들은 마음속에 간직한 소원을 되새겨보며 자신을 이겨나갔다.
농사를 잘 지어 해마다 다수확을 안아오는 나날에 그들은
오늘도 그들은 포전마다에 애국의 구슬땀을 아낌없이 바쳐가고있다.
영광의 일터에 바쳐가는 진정
함경북도농촌경리위원회 중평온실농장 로동자 서유정동무를 두고 사람들은 정말 쉽지 않은 녀성이라고 말하군 한다.그것은 지금으로부터 4년전 교원생활을 하던 그가 학급졸업생들과 함께
동지들의 남다른 믿음과 기대속에
그러나 점차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의 사기는 안타까움으로 변했다.온실농사경험이 없다나니 영농공정별작업과제를 제기일에 수행한다는것이 말처럼 쉽지 않았던것이다.
이런 그들을 걸음걸음 손잡아주고 적극 떠밀어준 사람들은 다름아닌 농장의 일군들이였다.
그렇게 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여 그들에게 꿈만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나라를 위해 아직은 별로 해놓은 일이 없는 자기들이 청년절경축행사에 참가하게 되였다는것이 아닌가.
그때부터 청년들은 맡은 일에 더욱 심혈을 쏟아부었다.
그들의 앞장에는 언제나 서유정동무가 있었다.
사람들이 어떻게 되여 그런 훌륭한 결심을 할수 있었는가고 물을 때면 그는 이렇게 말하군 한다.
대해같은 어머니당의 사랑에 천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하고싶었다고, 영광의 일터를 지켜선 긍지와 자부심을 안고 더 많은 일을 해서 조국땅 북변에 당에 대한 인민의 고마움의 목소리가 더 높이 울려퍼지게 하는데 조금이나마 이바지하겠다고.
본사기자 김일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