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적충동으로는 먼길을 가지 못한다
《애국의 마음은 조국과 인민을 위한 실천활동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가정에 파묻혀있던 내가 다시 로동생활을 시작한것은 딸이 상급학교입학통지서를 받았을 때였다.좋아서 어쩔줄 모르는 딸의 모습을 보느라니 저도 모르게 소년궁전에 가게 되였다고 그리도 기뻐하던 어린시절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평범한 로동자자식의 재능의 싹도 활짝 꽃피워주는 그 품이 고마워
추억의 갈피를 번지던 나는 어제날 부모들의 모습과 오늘날 나의 모습을 대비해보며 온밤 잠들지 못했다.자식에게 베풀어지는 나라의 은덕에 부모들은 성실한 로동으로 보답했다면 나는 고마움의 눈물이나 한번 흘리는것으로 그치고있다는 생각에 자책감을 금할수 없었다.
딸애의 입학을 저저마다 축하해주는 사람들의 말을 들을수록 나의 이런 고민은 더욱 커만 갔고 마침내 나는 마흔을 가까이한 나이에 로동생활을 다시 시작하게 되였다.
그러던 어느날 상점에 들렸던 나는 우연히 어느한 수입산건재품때문에 건설에서 지장을 받고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그때로 말하면 온 나라가 우리 함북도 북부피해복구로 들끓고있던 시기여서 어디서나 건재품을 요구하고있었다.
나는 특별한 경험이나 전문지식은 없었지만 늦게나마 나라를 위해 무엇인가 해놓고싶은 마음으로 초행길에 들어섰다.그래서 자식들의 장래를 위해 저축했던 자금까지도 통채로 가지고나왔다.
실패도 많았고 고생도 적지 않았다.그러나 그때마다 나는 받아안은 나라의 은덕을 하늘처럼 여기고 보답의 길을 걷던 부모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고마운 사회주의의 혜택속에 마음껏 재능의 나래를 펼치고 무럭무럭 자라는 자식들의 모습에서 힘을 얻으며 자신을 이겨내군 했다.마침내 수입에 의존하던 건재품을 자체의 힘으로 생산할수 있는 확고한 토대를 마련해놓았다.
그때의 기쁨을 무슨 말로 다 표현할수 있겠는가.내가 한가정의 울타리에서만 계속 맴돌았다면 그런 일을 해내지 못했을것이라는 생각에 자부심은 더욱 커만 갔다.
우리가 만든 건재품은 건설장마다에서 요긴하게 쓰이게 되였으며 사람들속에 그 소문이 널리 퍼지게 되였다.이렇게 나라위한 애국의 첫발자욱을 뗀 나는 그후에는 자식들과 함께 중평온실농장과 전위거리, 온포근로자휴양소 등 여러 건설장에 깨끗한 지성을 바치였으며 지난 5월에는 당의 령도업적이 뜨겁게 깃들어있는 온성군 왕재산농장에 농기구들도 보내주었다.
정말 쉽지 않은 녀성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의 밝은 인상을 대하며 내가 깨달은것이 있다.
만약 내가 10여년전에 고마움의 눈물이나 흘리고 혀끝으로만 보답의 맹세를 다진데 그쳤다면 그리고 로동생활을 다시 시작하였지만 여전히 편안한 길을 택했다면 어떻게 사회주의애국공로자로 성장할수 있었겠는가.일시적충동이 아니라 보답의 맹세를 자기의 신념으로 간직하고 순간순간 자신을 채찍질할 때만이 참된 애국의 길, 보답의 길을 걸을수 있는것이다.
나는 말하고싶다.
일시적충동으로는 먼길을 갈수 없다, 신념으로 간직된 보답의 마음이야말로 인간을 강하게 하고 아름답게 하는 성장의 자양분이라고.
청진화학섬유공장 로동자 방혜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