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애국공로자들을 따라배우자!(1)
《전체 인민이 국가의 리익, 공동의 리익을 먼저 생각하면서 공민적의무에 성실하고 나라의 발전과 번영을 위해 애국의 마음을 다 바치는 참된 사회주의근로자로 살며 투쟁해나갈 때 우리 조국은 언제나 끄떡없이 부강해질것입니다.》
최근 당에서는 비상한 애국적자각과 헌신적인 노력으로 맡겨진 혁명과업수행에서 특출한 모범을 보이고있는 일군들과 근로자들을 사회주의애국공로자로 값높이 내세워주었다.그들이 지닌 아름다운 인생관을 통해 시대가 떠받들어주고 만사람이
떳떳하고 뚜렷한 자욱을 남겨야 참된 공민의 삶이다
배천군 홍현농장 작업반장 리화성동무
배천군 읍에서 10리가량 떨어진 곳에 황해남도는 물론 온 나라에 소문이 자자한 3대혁명붉은기 홍현농장 제15작업반이 있다.
10여년전 이곳에는 너무도 척박하여 버림받던 저수확지, 구불구불한 논뚝, 갈대가 무성하던 진펄이 전부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땅에서, 기름지고 규모있게 정리된 포전마다에서 풍작을 이루어 해마다 국가알곡생산계획을 넘쳐 수행하고있으며 증산한 알곡을 100t이상씩 나라에 더 바치고있다.뿐만아니라 멋쟁이작업반건물과 실리있는 벼모재배온실, 남새온실, 축사, 우렝이서식장, 양어장이 일떠서 경험을 배우러 수많은 일군들이 찾아오고 강하천주변과 놀고있던 땅들에는 갖가지 과일나무들과 뽕나무들이 뿌리내려 온갖 향기를 풍기고있다.더우기 놀라운것은 이 모든 전변을 바로 군당일군 안해들이 자기 손끝으로 하나하나 안아왔다는 사실이다.
아름드리거목에 든든한 뿌리가 있듯이 만사람이 찬양하는 애국집단에는 선구자가 있는 법이다.
그 선구자가 바로 작업반장 리화성동무이다.
리화성동무는 로력영웅인 김진용 배천군당위원회 책임비서의 안해이며 그의
그가 군당책임비서로 임명된 남편을 따라 시내에서 농촌으로 왔을 때 굳이 험한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탓할 사람은 없었을것이다.그리고 그가 군당일군 안해들과 함께 처음 농사일을 시작했을 때 남편들이 다 밀어주겠는데 뭐가 힘들겠는가고, 생색이나 내다 말것이라고 속단한 사람들이 대다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결코 편안한 길을 택하지 않았으며 그 누구의 도움이 아니라 자기의 깨끗한 량심과 헌신의 진한 땀, 피타는 노력으로 작업반을 당의 농업정책관철에 앞장선 단위로 만들었다.
오늘은 그가 농사면 농사, 축산이면 축산, 건설이면 건설 막히는데가 없는 실력을 겸비하고 어떤 어려운 일이든 작업반자체의 힘으로 척척 해제끼고있지만 이런 결과가 이루어지기까지 무슨 일인들 없었고 무슨 고생인들 못겪어보았겠는가.
그저 파고 심고 거두어들이는것이 농사일이 아님을, 각이한 성격과 경력을 가진 작업반원들의 마음을 하나로 합친다는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님을 그는 피타는 정열을 바치고 진정을 기울이는 10여년의 하루하루에 가슴깊이 절감하였다.
언제인가 축산경험을 배우러 찾아왔던 한 일군이 작업반의 토대를 보고 놀라와하며 정말 남편들의 도움을 받지 않았는가고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마도 힘들고 고생스러운 일이 무엇인가고 물으면 농사일을 꼽는 사람들이 많을것입니다.그렇다고 해서 부모의 공적이나 남편의 직위를 그늘삼아 고생길을 피해가고 힘든 농사일을 외면한다면 나라일이 어떻게 잘되겠습니까.일군의 안해, 영웅의 딸이기 전에 나도 이 나라의 한 공민이고 농사군입니다.》
길지 않은 이 말속에 그가 지닌 고결한 정신세계가 함축되여있다.
저 하나만을 위해 조국의 부름을 외면하고 좋은 길만 골라걷는다면 그런 생을 과연 누가 기억해주겠는가.조국을 위해서라면, 사회와 집단을 위해서라면 사서라도 고생을 해야 한다는 순결한 량심을 간직하고 애국의 길을 스스로 찾아걷는 참인간들만이 시대가 찬양하는 애국자로 삶을 빛내일수 있는 법이다.
그가 늘 하는 말이 있다.
이 나라 그 어느 가정에나 애국적인 가풍, 훌륭한 전세대가 있다.문제는 오늘의 세대가 그 훌륭한 바통을 어떻게 이어가고있으며 또 다음세대에 무엇을 물려주겠는가 하는것이다.이것은 책임일군의 안해, 영웅의 딸로서가 아니라 이 나라의 평범한 한 공민으로서 하고싶은 말이다.
누구든지 우리 당이 사회주의애국공로자로 내세워준 리화성동무의 고결한 정신세계가 비낀 이 량심의 목소리앞에 자신을 세워보아야 한다.그리고 다시금 가슴깊이 새겨야 한다.어디서 살든, 무슨 일을 하든 자기 시대에 떳떳하고 뚜렷한 자기의 자욱을 남겨야 참된 인생이라는것을.
글 및 사진 본사기자 강금성
자기 고장의 부흥과 번영은 주인들의 손끝에 달려있다
운산군국토자원보호감독대 대장 류만형동무
운산군에 가면 사람들 누구나
사실 감독대의 임무는 국토자원을 보호하고 감독하는것이다.그러한 감독대가 국토관리사업을 떠맡아안게 된데는 사연이 있다.
2013년 례년에 없는 큰물피해를 받은 운산군사람들 누구나 그러했지만 류만형동무를 비롯한 감독원들은 자책감을 금할수 없었다.자기들이 책임성과 역할만 높였어도 그처럼 큰 피해를 당하지 않았을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뇌리를 쳤던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형편에서 자기 본신임무도 수행하면서 국토관리사업까지 도맡아한다는것이 말처럼 쉽지 않았다.해야 할 일이 너무도 방대하다보니 할수 있다는 자신심보다 모험이 아니겠는가 하는 우려심이 앞섰다.
바로 이러한 때 구룡강기슭의 제일 힘든 구간을 맡아 억척의 제방을 쌓으며 국토관리사업에서 기치를 들고나가는 군당일군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은 대담하게 이 사업에 달라붙었다.
사실 일부 감독원들속에서 맡은 일만 하자고 해도 힘에 부친데 꼭 국토관리사업까지 맡아해야 하겠는가 하는 의견도 없지 않았다.어떤 사람들은 감독대가 괜한 고생을 사서 한다고 내놓고 말하기도 했다.
그때 류만형동무는 준절히 말했다.우리 군사람들치고 큰물피해를 받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는가.주인인 우리가 남만 쳐다보면 언제 가도 피해를 면할수 없다.
얼마후 사람들은 아예 공사장에서 살다싶이 하면서 공사를 지휘하는 그의 모습을 보게 되였다.하지만 사람들은 미처 다 알수 없었다.그가 고열로 신음하는 속에서도 내색 한번 없이 매일같이 공사에 참가하고있다는것을.
그의 무한한 헌신성에 감복하여 국토관리사업을 자기와는 무관한 일로 여기던 사람들도 저저마다 이 사업에 떨쳐나섰다.
국토관리사업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커지고 감독대의 역할이 커질수록 그는 국토관리사업을 과학적으로 해나가는데 깊은 주목을 돌리였다.
감독원들이 토배기로인들을 만나고 그들의 의견을 충분히 참작하도록 하는 한편 자기부터가 국토관리를 과학적으로 해나갈수 있는 높은 실력을 소유하기 위해 피타게 노력했다.
국토관리를 하는데서 그에게 제일로 애로되는것이 전공부문이 아니다보니 실무능력이 딸리는것이였다.언제인가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는 그에게 군의 책임일군이 찾아와 국토관리와 관련한 세계적인 추세도 알려주고 필요한 자료도 안겨주면서 해준 말을 그는 지금도 잊지 못하고있다.
《당과 혁명에 필요한 일이라면 무슨 일에서나 박사가 되여야 하오.》
늘 곁에서 힘을 주고 믿음을 주는 당조직의 고무와 격려속에 그는 이악하게 노력하여 국토관리사업과 관련해서는 막히는것이 없는 실력가로 인정받게 되였다.그 나날 그가 해놓은 일들을 꼽자면 끝이 없다.
하지만 그에게는 만족이란 없었다.군이 국토관리사업을 잘하여
그는 맡은 일만 책임적으로 하여도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며 편안히 살수 있었지만 이렇게 어려운 일에 스스로 몸을 내대였다.늘 공사장에 나가살다싶이 하다나니 그의 자식들은 가족사진도 찍지 못한채 조국보위초소로 떠났다.
하다면 그는 어이하여 굳이 그런 길을 택했는가.
그것은 바로 자기 사는 고장을 위한 일이라면 네일내일 가리지 않고 스스로 떠맡아안아 반드시 자기 힘으로 훌륭한 결실을 이룩해야 한다는 숭고한 애국심이 가슴속에 꽉 차있었기때문이다.이런 티없이 맑고 깨끗한 마음을 지닌 그를 어머니당은 사회주의애국공로자로 값높이 내세워주었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 김일경
당정책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면 지식도 가능성도 예비도 생긴다
북청대성수산분사업소 분소장 오현일동무
북청대성수산분사업소는 군적으로 연혁사가 제일 짧은 수산단위이지만 당의 수산정책관철에서 앞장선 단위로 알려져있다.단위가 조직될 때부터 지금까지 분소장사업을 해온 오현일동무는 많은 사람들이 분사업소가 이룩한 성과의 비결에 대하여 알고싶어할 때면 이렇게 긍지높이 이야기해주군 한다.
물론 단위사업에서는 인재와 설비도 필요하고 경험과 기술도 중요하다.그러나 그보다 더 귀중한것은 당정책에 대한 확고한 관점과 태도이다.당정책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면 모자라던 지식도, 보이지 않던 가능성도, 없던 예비도 다 생긴다.
분사업소가 이룩한 그 모든 성과의 밑바탕에는 이렇듯 당정책에 대한 오현일동무의 절대적인 믿음이 굳건히 자리잡고있다.
20여년전 분사업소가 처음 조직되였을 때에는 말그대로 빈터뿐이였다.종업원이래야 불과 대여섯명정도였고 변변한 건물 한동, 물고기를 잡을 온전한 배 한척도 없는 분사업소의 래일을 락관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그러나 오현일동무는 당에서 가르쳐준대로만 하면 틀림없이 잘살수 있다고 하면서 제일먼저 앞채를 메고나섰다.
그는
이 나날 오현일동무는 당정책에 대한 믿음이야말로 모든 사업의 출발점이며 그 성과의 결정적담보라는것, 따라서 단위사업에서 성과를 이룩하자면 일군들부터가 당정책에 열렬히 공감하고 그것을 절대적으로 믿어야 한다는 철리를 더욱 가슴깊이 새겨안게 되였다.
최근 분사업소는 다시마와 밥조개의 혼합양식에서도 다른 단위들보다 앞서나가고있는데 이 성과도 오현일동무의 이런 굳센 신념과 의지를 떠나 생각할수 없다.
처음 그가 바다가양식을 하자고 했을 때 지지하는 사람보다 반대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수심이 깊은 만밖의 수역에 양식장을 전개했다가 태풍의 피해라도 받으면 어쩌겠는가 하는것이 종업원들의 보편적인 심정이였다.이런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그들에게 오현일동무는 말했다.
당에서 좋다고 하는 일을 해보지도 않고 의심부터 앞세우는것은 당원의 태도가 아니다.당에서 바라는것은 다 옳으며 수심이 깊은 곳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기어이 성공하여 당정책의 정당성과 생활력을 실천으로 증명해야 한다.
이런 배짱을 안고 그는 대담하게 날바다한가운데 양식장을 전개하고 이 사업을 근기있게 밀고나갔다.실패도 없지 않았지만 그는 실패앞에 주저앉은것이 아니라 더욱 과감하게 떨쳐일어나 양식장을 복구정도가 아니라 몇배로 확장했고 관리운영의 과학화를 실현할수 있는 확고한 담보까지 마련해놓았다.
당정책관철에서 발휘된 오현일동무의 이런 완강한 일본새를 놓고 일군들 누구나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가 있다.
어느 지역, 어느 부문, 어느 단위에서나 당정책을 집행한다고 한다.그러나 그 관철에서 차이가 생기는것은 일군들의 가슴속에 당정책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절대적인것으로 간직되여있는가에 귀착된다.
당정책에 대한 믿음을 신념으로 간직한 사람은 오현일동무처럼 맨손으로도 고기배를 만들수 있고 날바다에서도 바다가양식을 성공시킬수 있지만 당정책을 말로만 외우는 사람에게는 지척도 아득한 만리로 보이는 법이다.
사회주의애국공로자의 값높은 영예를 지닌 오현일동무의 모습이 바로 이것을 똑똑히 보여주고있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 정영철
나의 일터는 혁명의 명맥을 지켜가는 가장 성스러운 초소
조선혁명박물관 부장 정명숙동무
나의 일터, 나의 혁명초소, 이것을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생의 한 부분으로 여기며 한생토록 묵묵히 지켜가고있는 사람들속에는 조선혁명박물관 부장 정명숙동무도 있다.
그가 조선혁명박물관의 혁명사적관리부문에서 일을 시작한것은 30여년전이였다.그때 그의 마음속에는 군사복무시절의 소원대로 영광의 일터에서 일하게 되였다는 긍지감이 꽉 차있었다.
하지만 자기가 지켜선 초소가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것을 그때에는 미처 다 알수 없었다.
어느날 참관호실들에 대한 관리사업을 진행하던 그는 사연깊은 사적물들앞에서 선뜻 자리를 뜨지 못하는 항일의 로투사를 보게 되였다.당시 관장사업을 하고있던 투사동지는 정명숙동무를 비롯한 관리원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동무들은 단순히 이 사적물들과 전시물들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후세토록 영원히 지키고 물려주어야 할 사명을 지닌 사람들이다.혁명사적관리원들은 이 대국보관을 떠받드는 보이지 않는 초석이 되고 주인이 되여야 한다.그러니 자기의 깨끗한 량심과 헌신으로 절세위인들의 영상작품과 사적물들을 백년이 가도, 천년이 가도 손색이 없도록 잘 보존관리해주기를 당부한다.
그날 그는 자기가 하는 일이 단순한 관리사업이 아니라 우리 혁명의 귀중한 재보, 혁명의 명맥을 지켜가는 중요한 사업임을 다소나마 알게 되였고 한생토록 깨끗한 량심을 지니고 맡은 일에 헌신하리라 마음다지였다.
그러나 그 맹세를 지켜 한생을 변함없이 산다는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였다.온밤 눈이 내리는 날이면 한밤중이라도 먼길을 달려나와
그럴 때마다 그는 만수대언덕에 높이 모신
내가 지켜선 일터가 어떤 초소인가,
말없이 곁에서 마음의 기둥이 되여주던 남편을 잃고서도 그리고 나라가 어렵던 시기 같이 일하던 관리원들이 다른 일터를 넘겨다 볼 때에도 그는 강잉히 일어나 혁명사적관리사업에 자기의 온넋을 바쳐갔다.
그렇게 그는 수십년세월
하기에 당에서는 평범한 관리원이였던 그에게 과장, 부장의 높은 신임을 안겨주었으며 조선로동당 제8차 사상일군대회를 비롯한 여러 대회에도 불러주었다.
2017년 3월 그는 한생에 다시 없을 영광의 시각을 맞이하였다.꿈결에도 뵙고싶던
그날
그날 그는 별로 한 일 없는 평범한 전사들을 값높이 내세워주시며 최상최대의 사랑과 은정을 베풀어주시는
이 세상 모든 일터앞에, 모든 직업우에 혁명의 명맥을 지켜가는 가장 성스럽고 영예로운 나의 일터, 나의 초소가 있다!
바로 이것이 정명숙동무의 마음속에 깊이 간직된 드팀없는 자각이고 의지이다.이런 충성과 애국의 인생관을 안고 그는 오늘도 자기가 지켜선 혁명초소에 티없이 맑고 깨끗한 량심을 다 바쳐가고있다.
글 및 사진 안정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