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이 값높은 칭호로 내세워준 사람들
공훈과학자 채명호동무
경제강국건설에 절실히 필요한 가치있는 연구성과들을 이룩하여 당에 기쁨드린 미더운 과학자들속에는 농업과학원 수의학연구소 실장 채명호동무도 있다.
수십년세월 수의학부문에서 과학연구사업을 해온 그는 오래전에 동물들속에서 새로 발생한 전염병을 제때에 정확히 진단하였으며 여러가지 가치있는 연구성과들을 이룩해냄으로써 경제발전에 크게 이바지하고 30대에 박사학위를 수여받았다.
그는 이룩한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또다시 나라의 농업생산과 축산업발전에 엄중한 해독적후과를 미치는 구제역의 피해를 막기 위한 연구사업에 달라붙었다.
지난 시기 값비싼 수입원료에 의거하던 왁찐을 철저히 국산화하려는 높은 목표를 세우고 연구사업에 뛰여들었지만 막아서는 애로와 난관은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반드시 성공한다고 담보하기조차 어려운 탐구의 생눈길에서 때로는 생명의 위험을 각오해야 하는 때도 있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기어이 연구과제를 완성하여 당에 기쁨드릴 열망만이 꽉 들어차있었다.
지칠줄 모르는 탐구의 열정과 불같은 헌신은 마침내 성공적인 연구결과를 낳았다.그가 개발한 왁찐은 수의학부문에서 절실히 필요한 예방약으로 널리 도입되고있으며 농업과 축산업발전에서 한몫 단단히 하고있다.
뿐만아니라 채명호동무는 지금까지 연구집단의 많은 성원들을 학위학직소유자들로 키워냈으며 여러건의 가치있는 도서들도 집필하였다.
당에서는 한생을 바쳐 경제강국건설에 이바지하는 많은 과학기술성과들을 이룩하고 나라의 수의학발전에 기여한 채명호동무의 공적을 높이 평가하여 2023년 3월 공훈과학자의 값높은 칭호를 안겨주었다.
김진희
공훈광부 조춘삼동무
순천세멘트련합기업소 직동석고광산 승리갱 굴진공 조춘삼동무는 누가 보건말건 조국이 맡겨준 일터를 성실하게 지켜가고있다.
지금으로부터 수십년전 제대되여 광산으로 달려온 그에게 맡겨진 일은 과중한 육체적부담으로 하여 누구나 쉽게 맡아나서기 어려워하는 굴진이였다.하지만 그는 혁명의 총을 잡고 조국의 안녕을 지켜가던 군사복무의 나날처럼 착암기를 억세게 틀어쥐고 조국의 부강번영을 위해 청춘을 빛내여가기를 바라는 당의 믿음으로 새겨안았다.
당에서 맡겨준 혁명임무는 어떤 일이든 무조건 잘해야 한다는 각오를 가지고 그는 석수가 흐르는 막장에서 온몸이 물주머니가 되면서도 열심히 배워 자기의 기능수준을 높여나갔다.
그는 갱에서 어렵고 힘든 일들이 제기될 때마다 자기의 소관으로 스스로 떠맡아나섰으며 로력과 시간을 절약하면서도 작업능률을 높이기 위한 가치있는 기술혁신안들도 창안도입하였다.
그 나날에 백두산영웅청년발전소를 자랑스러운 청춘대기념비로 훌륭히 일떠세우는데 기여한 그는
자기들의 굴진속도가 세멘트증산에로 이어지며 그것이 곧 조국의 젊음을 더해주는 위훈의 창조물들로 솟아나게 된다는것을 깊이 자각하고 거기에서 생의 더없는 보람과 영예를 찾는 조춘삼동무이기에 자기 아들도 광부로, 광산에서 손꼽히는 기능공으로 훌륭히 내세웠다.
조국이 안겨준 값높은 칭호를 최상최대의 믿음으로 새겨안고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쳐 일터를 지켜가는 이런 애국자들이 많기에 우리 조국에서는 기적과 위훈이 끊임없이 창조되고있다.
김성훈
공훈자동차운전사 표일석동무
우리 나라 굴지의 쇠돌생산기지인 무산광산련합기업소에 가면 만사람의 존경을 받는 대형화물자동차운전사가정이 있다.누가 보건말건, 알아주건말건 조국의 부강번영을 위해 묵묵히 헌신해가는 그 가정의 맏이가 바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며 공훈자동차운전사인 표일석동무이다.
표일석동무는 지금으로부터 30여년전
어렵고 힘들 때마다 그는 동생들에게 사회주의조국은 동지들과 같은 끌끌한 조국의 아들들의 의지와 신념에 받들려 부강발전할것이라고 하신
그는 동생들뿐 아니라 사업소에 새로 들어온 운전사들의 기술기능도 높여주기 위해 적극 노력함으로써 그들을 한다하는 기능공들로 키웠다.그리고 여러건의 기술혁신과 창의고안을 받아들여 차의 실동률을 높이는데 이바지하였다.
자기가 날마다 오가는 운광길이 있어 조국의 강철기둥이 굳건해진다는 자각을 안고 살며 일하는 그는 아들도 대형화물자동차운전사로 내세웠다.
이렇게 자신의 모든것을 오직 쇠돌생산에 바쳐가는 그를 나라에서는 2002년 2월 공훈자동차운전사로 내세워주었다.
본사기자 정영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