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은 나의 어머니
한생토록 받아안은 크나큰 사랑
우리 집에는 나의 아버지 리원경이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모시고 찍은 기념사진들이 벽면을 꽉 채우다싶이 모셔져있다.그중에는 잊지 못할 1985년 12월에 찍은 기념사진도 있다.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제일 가까이에서 아버지가 찍은 그 기념사진을 우러를 때면 지금도 40년전의 그날이 어제런듯 되새겨지며 눈굽이 축축히 젖어드는것을 어쩔수 없다.평범한 한 지식인에게 베풀어준 위대한 당의 하늘같은 믿음과 사랑이 없었다면 어떻게 우리 가정의 행복한 오늘에 대해 생각할수 있겠는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당의 인덕정치는 인민들에 대한 숭고한 사랑과 믿음의 정치이며 인민대중을 당의 두리에 철통같이 묶어세우는 혁명적단결의 정치입니다.》
1985년은 영광스러운 우리 당창건 40돐이 되는 력사적인 해인 동시에 우리 가정의 운명에서 전환이 일어난 잊지 못할 해이다.
그해 10월말 어느한 출판사에서 론설원으로 일하던 아버지는 일부 편협한 일군들에 의하여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을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는 영광의 자리에 참가하지 못하였다.리유인즉 아버지의 가정환경이 복잡하다는것이였다.
입직한지 얼마 안되는 나어린 처녀들까지 참가한 영광의 자리에 가지 못한 괴로움을 안고 아버지는 텅 빈 방에 홀로 앉아 눈물만 흘리였다고 한다.허나 어찌 알수 있었으랴.이 세상 제일 자애롭고 고마운 손길이 아버지의 운명을 따뜻이 보살펴주고있었음을.
일군들을 통하여 그 사실을 알게 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즉시 해당 일군을 출판사에 보내여 확인하도록 하시고 너무도 가슴아프시여 한밤을 꼬박 지새우시다가 이튿날 협의회를 여시였다.
협의회에서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그 론설원은 수령님의 품속에서 박사가 되고 부교수가 된 사람이며 수령님께서 손때묻혀 키우신 우리 당의 지식인이라고, 지난 40년동안 그의 경력을 보면 어디에도 그가 당에 충실치 못하거나 그를 믿지 못할 어두운 구석이 없다고 절절히 이르시였다.그러시면서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게 하고 신문에도 보란듯이 크게 소개해주며 자신께서도 그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려고 한다고 하시면서 그날중으로 그 내용을 아버지에게 전달해주도록 하시였다.
그날 우리 집안은 말그대로 울음바다가 되였다.아버지는 물론이고 우리 가족들도 순식간에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는 행운아로 되였다.
아버지에게 드디여 꿈만 같은 영광의 시각이 왔다.그해 12월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진행하는 기념사진촬영행사준비정형을 친히 알아보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지난번 기념촬영 때도 빠진 동무인데 더 빛이 나게 해주자고 하시면서 위대한 수령님의 가장 가까이에 아버지를 세우도록 해주시였으며 몸소 촬영장에 나오시여 아버지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시였다.
그렇게 되여 1985년 12월 28일 《로동신문》 1면에는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을 모시고 아버지가 찍은 기념사진과 함께 아버지의 이름도 나게 되였다.후에야 알게 되였지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사진과 함께 아버지의 이름도 밝혀서 낼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상처입은 자식을 더 위해주는 자애로운 어머니와 같이 당의 사랑은 날로 더욱 뜨거워졌다.위대한 장군님께서는 1989년 11월말 아버지가 김일성종합대학 연구사로 사업하도록 또다시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사실 나의 아버지는 원래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교육사업에 종사하였다.그러다가 일부 편협한 사람들에 의하여 10여년세월 정들었던 사랑하는 교단에서 물러나게 되였지만 언제한번 대학을 잊은적이 없었다.그런데 당에서는 아버지의 마음속소원까지 헤아려 그렇듯 은정깊은 조치까지 취해주었던것이다.
어머니당에서는 아버지에게 위대한 장군님의 표창장을 안겨주었으며 그후에는 영예의 김일성상을 수여하고 조선지식인대회와 조선로동당 제3차 대표자회를 비롯한 여러 대회에도 내세워주었다.그렇듯 온갖 은정을 다 베풀어주시고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신 사랑 적으신듯 또다시 대학을 찾으시여 아버지를 자신의 곁에 앉히고 영광의 기념사진을 찍으시였다.
위대한 당의 사랑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뜨거워졌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나의 아버지를 위대한 수령님의 탄생 100돐 경축행사와 전국로병대회들에 대표로 불러주시였으며 새로 건설된 김일성종합대학 교육자살림집에 입사할 교원, 연구사들과 기념사진을 찍으실 때에는 머리흰 아버지의 손을 다정히 잡아주시고 자신의 가장 가까이에 세워주시는 크나큰 영광을 안겨주시였다.그리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에는 몸소 화환을 보내주시였으며 아버지를 신미리애국렬사릉에 안치하도록 은정깊은 조치까지 취해주시였다.
나의 아버지는 생전에 많은 글을 남겼다.하지만 자신이 해놓은 일에 대하여 쓴것은 하나도 없다.있다면 오직 당의 크나큰 사랑속에 한생토록 받아안은 영광과 행복에 대한 격정의 찬가들뿐이다.그중에서 나는 아버지가 남긴 수기의 한 대목을 인용하는것으로 이 글을 마치려고 한다.
《당은 마음의 기둥이며 힘의 원천이다.슬플 때나 기쁠 때나 당만을 믿고 믿으라.그럴 때 인생의 영광을 맞이할수 있다.》
서성구역 장경2동 96인민반 리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