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련동포들의 긍지높은 추억의 목소리
《자본주의 한복판에서 공화국기를 높이 날리며 굴할줄 모르는 조선의 정신과 기상을 과시하여온 총련은 결성으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장구한 년대들에 어머니조국과 운명을 함께 하며 청사에 깊은 자욱을 남기였습니다.》
총련결성 70돐을 뜻깊게 기념한데 이어 조국해방 80돐과 공화국창건 77돐을 성대히 경축하고 영광스러운 조선로동당창건 80돐을 마중해가는 총련동포들의 감회는 새롭다.
복잡다단한 력사의 소용돌이속에서도 사랑하는 어머니조국의 품에 운명을 맡기고 세기와 세대를 이어 애국의 한길을 꿋꿋이 걸어온 사람들이여서 그들의 추억은 더더욱 뜨겁다.
격동의 그 나날을 잊을수 없어
이번에도 그들은 또 한자리에 모여앉았다.
1975년 총련결성 20돐에 즈음하여
《어느덧 50년세월이 흘렀구만.반세기요.그런데 아직도 그 나날들이 삼삼하오.오늘 여기로 오면서도 줄곧 그 생각만 했소.》
《나도 그렇소.새삼스럽게 돌이켜보니 정말 벅차더란 말이요.》
…
모두가 뜨거운 감회를 안고 50년전의 그 나날들을 떠올렸다.
충성의 자전거달리기 재일본조선청년대표단은 50여명의 청년들로 조직되였었다.
대다수가 20대였다.그들은 3개 조로 나뉘여 우리 인민의 최대의 경사스러운 명절인 4월 15일 나가사끼현과 혹가이도, 후꾸이현에서 각각 출발하였다.총련의 40여개 도, 도, 부, 현본부들로부터 충성의 편지들을 넘겨받으며 무려 1만 5천리길을 달리고달려 도꾜에 도착하였다.
그 나날에 얼마나 감동깊은 화폭이 펼쳐졌던가.
일본땅 그 어디에나 우리 동포들의 피와 눈물이 스며있지 않은 곳이란 없다.살인적인 고역장들에서 매맞고 병들어 숨진 사람이 그 얼마였던가.그 력사의 수난자들과 후손들이 오늘은 세상이 우러르는
대표단은 5월 22일 원산항에 도착하였다.
모두가 조국방문이 처음이였지만 매일매일 가슴에 마쳐오는 뜨거운 혈육의 정으로 하여 생소하다는 감정을 전혀 느끼지 못하였다.자기들의 조국방문이 평생의 소중한 추억으로 되도록 하기 위해 이모저모로 왼심을 써주는 고마운 사람들의 진정이 가슴을 세차게 울리였다.값높은 생의 자욱을 수놓아가는 조국인민들을 보면서, 사는 곳은 달라도 우리의 마음은 하나이라고 격려해주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대표단성원들은 많은것을 생각하였다.
번영하는 조국의 모습을 보며 마음껏 즐기던 그들에게 마침내 영광의 시각이 왔다.
그날은 1975년 8월 17일이였다.
보람찬 삶의 길을 열어주신 고마운 은인,
이역의 아들들은 그날에 다진 맹세 변치 않으리라는 억척불변의 신념을 간직하고 성스러운 애국의 길을 변함없이 걸어왔다.총련애국위업의 강화발전을 위한 투쟁의 앞장에 서왔다.년로한 몸이지만 오늘도 자식들과 함께 그길을 이어가고있다.
대표단성원이였던
그리고 생각하였다.
(이 충실성의 전통이야말로 세대를 거쳐 이어가야 할 총련의 고귀한 재부가 아니겠는가.)
애국의 희열을 노래에 담았다
1964년말 어느날 결성이후 근 10년간 총련이 거둔 성과들을 종합하던 총련중앙상임위원회 의장 한덕수동지의 뇌리에는 불현듯 우리 자랑 이만저만 아니라오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정말 10년도 안되는 기간에 많은것을 이룩하였구나.일본땅의 여기저기 우리 동포 사는 곳에 자랑스러운 총련조직을 버젓하게 꾸려놓고 조국위해, 권리위해 단결하여 일하는 총련일군들의 모습이 떠올랐다.초, 중, 고급학교는 물론이고 애국인재들을 육성하는 조선대학교까지 보란듯이 일떠세운것은 또 그 얼마나 큰 자랑인가.
천리마로 내달리는 사회주의조국의 공민답게 떳떳하게 살고있는 동포들의 모습을 그려보면서 한덕수의장은 흥분을 금치 못하였다.
그렇다.우리들이 거둔 모든 성과는
창작적열정에 북받쳐 그는 단숨에 가사초고를 썼다.그리고 밤새워 다듬었다.
이렇게 되여 세상에 나온 노래가 바로 《우리 자랑 이만저만 아니라오》였다.
그것은 이역에서
노래는 순식간에 동포들의 심금을 틀어잡았다.
재일본조선문학예술가동맹(문예동) 고문인 김학권동포는 노래가 창작될 당시 학생이였다.그는 그때를 이렇게 회억한다.
《그때 동포사회에서 우리 노래를 부르는 운동이 활발히 벌어졌지요.특히 〈우리 자랑 이만저만 아니라오〉, 이 노래는 동포들속에서 대단한 호평을 불러일으켰습니다.》
1965년 5월에 진행된 총련결성 10돐경축 집단체조 《조국에 드리는 노래》와 1966년 12월에 진행된 음악무용서사시 《조국의 해빛아래》에서 이 노래는 그야말로 주제곡으로 울려퍼지였다.
도꾜지역에서 사업하던 한 총련분회장은 어느날 뜻밖에도 총련중앙회관의 드넓은 무대에 서게 되였다.가요 《우리 자랑 이만저만 아니라오》를 아주 잘 부른다는 소문이 났기때문이였다.
총련중앙상임위원회의 책임일군들과 각 지방 총련일군들이 그의 노래를 들어보겠다고 객석에 주런이 앉아있었다.
장내의 뭇시선이 자기에게로 쏠리자 분회장은 한순간 당황하였다.그래서 평소에 그토록 자신있게 가락뽑던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였다.가사는 정확하였지만 몇군데 음정이 틀리였던것이다.
하지만 웃는 사람은 없었다.가사의 절절한 내용이 모두의 가슴에 마쳐왔기때문이였다.
망국노의 설음속에 구슬픈 《아리랑》, 망향가를 부르며 신세를 한탄하던 우리가 오늘은 이렇게 애국의 보람과 긍지를 노래에 담아 목청껏 웨친다.
누구나 이렇게 생각하며 가슴이 벅차오름을 금할수 없어하였다.
동포들이 사는 그 어디에서나 《우리 자랑 이만저만 아니라오》가 열창되였다.
1973년 베를린에서 진행된 제10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한 재일본조선청년학생대표단은 이 노래를 보란듯이 합창하였다.그들이 부른 노래는 축전무대를 이채롭게 장식하였다.
이듬해인 1974년 도꾜에서 열린 재일본조선청년동맹(조청) 제10차대회에는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유럽의 수많은 나라 청년대표들이 참가하였다.한해전 재일조선청년학생들이 유럽의 한복판에서 그처럼 긍지높이 노래하던 총련의 현실을 직접 체감한 그들은 시종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1990년 도꾜에서는 총련결성 35돐을 경축하여 도꾜동포대음악회가 성대히 진행되였다.연주는 일본의 도꾜교향악단, 지휘는 조국의 이름있는 지휘자, 합창은 근 2 000명의 동포대합창단 성원들이 맡아한 이 음악회는 일본각계의 이목을 집중시키였다.
여기에서 가요 《우리 자랑 이만저만 아니라오》는 대파문을 일으켰다.공연에 참가한 일본사람들이 목격한것은 이역땅에서도 주눅이 들지 않고 애국의 희열에 넘쳐 살고있는 재일조선인들의 당당하고 보람찬 모습이였다.
재일동포들이 차별과 박해, 탄압의 칼바람속에서도 충성의 한길만을 변함없이 걸어올수 있은 비결중의 하나는 바로 애국의 노래들을 부르며 투쟁해온데 있다.
애국의 노래소리 높은 곳에서는 눈부신 성과가 이루어지기마련이다.
지금 총련동포들은 재일조선인운동의 자랑스러운 력사가 어려있는 《우리 자랑 이만저만 아니라오》를 세세년년 높이 부르며 총련부흥의 새시대를 펼칠 일념 안고 기세높이 전진하고있다.
세계에는 수많은 해외교포조직이 있지만 자기 조국에 대한 충성의 열도에 있어서나 조직의 규모와 활동범위, 단결력과 전투력에 있어서 총련과 같이 애국적이며 강위력한 해외교포조직은 없다.
본사기자 허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