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마을의 부부의사
《보건실천에서 절박하게 요구되는 새로운 의학과학기술분야를 개척하고 고려의학을 과학화하며 최신의학과학기술을 적극 받아들여야 합니다.》
지난 7월 어느날이였다.
밤이 깊어지자 뜨겁게 달았던 대지를 식히며 서늘한 바람이 창문너머로 흘러들었지만 성간군 내서리진료소 소장 박기남의 가슴속에선 그냥 뜨거운것이 회오리치고있었다.
그는 책상우에 놓여있는 편지를 또다시 집어들었다.
평양의학대학병원의 채병철과장이 보낸 편지에는 그들부부가 개발한 주사약이 학회의 일치한 인정을 받았다는것과 진심어린 축하의 인사를 보낸다는 내용이 담겨져있었다.
제일처럼 기뻐하는 그들의 모습을 그려볼수록 박기남은 안해와 함께 고려약개발에 뛰여들던 20여년전의 일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당시 호담당의사였던 박기남은 그날도 왕진길에 올랐었다.박기남은 만성질병이 도져 앓고있는 환자를 위해 매일과 같이 그의 집을 찾고있었다.
그가 환자의 집에 들어서니 향긋한 약초냄새가 코를 찔렀다.
《권명희선생님이 와서 탕약을 지어주었습니다.》
이렇게 서두를 뗀 환자의 어머니는 고려약이 신약만큼 효과가 빠르겠는가고 생각하였는데 아들의 병이 차츰 호전되는걸 보니 참 신기하다고, 뒤산에 가득한 약초들을 두고 괜한 약걱정을 하였다고 하는것이였다.
권명희는 군병원약제사로 일하는 그의 안해였다.언제인가 안해와 함께 출근하면서 환자에 대해 이야기한것을 아마도 새겨들은 모양이였다.
안해는 짬시간마다 뒤산에서 자라는 약초를 가지고 그 무슨 연구를 진행하고있었는데 어린 두 자식도 탈이 생기면 그것으로 탕약을 지어주군 하였다.박기남은 안해가 약초로 항생제대용약을 만들겠다고 하던 이야기도 떠올랐다.하지만 그것은 많은 시약과 유기용매를 요구하기때문에 산골조건에서는 실리가 맞지 않았다.그래서 안방에 약초들을 가득 채워놓고 연구에 열중하는 안해도 언제인가는 물러서게 될것이라고 생각한 그였다.허나 오늘 약초산을 옆에 두고도 약걱정을 하였다는 녀인의 말을 듣고보니 생각이 깊어졌다.
고려약을 발전시키는것은 우리 당의 중요한 보건정책이다.만일 그 어디서나 당의 뜻을 높이 받들고 지방의 약초자원을 적극 리용한다면 의약품문제가 얼마나 많이 풀릴것인가.
그는 안해의 연구사업을 적극 도와줄것을 결심했다.하지만 종전의 방법이 아니라 산골의 조건에 맞게 값비싼 시약들을 쓰지 않으면서도 항생물질을 추출할수 있는 방법을 꼭 연구하리라 마음다졌다.이렇게 되여 그들부부는 공동연구에 착수하였다.
연구에 필요한 약초를 얻기 위해 추운 겨울에도 온 산판을 헤치는 의료일군부부에 대한 소문이 한입두입 퍼지기 시작했다.사람들은 그들을 가리켜 부부의사라고 정담아 불렀다.
다른 지방에까지 찾아가 실험에 필요한 반투막용기를 만들어오기도 하고 도서관과 책방, 약국을 찾아다니며 수많은 선진과학기술자료들을 수집한 보람도 있어 그들부부는 간단하면서도 실리있는 전기영동법에 의한 베르베린추출방법을 확립하고 고려약을 생산할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다.군병원당조직에서는 효능높은 고려약들을 개발하려는 그들의 마음을 귀중히 여겨 주사약제제실도 새로 꾸려주면서 연구사업을 적극 떠밀어주었다.
당조직의 남다른 믿음속에 그들은 고려약에 대한 연구를 계속 밀고나갔다.
두메산골인 성간군에서 고려약재를 원료로 하는 주사약을 개발하자니 부족되는것이 너무나 많았다.
특히 기존치료방법인 수액료법과 비타민치료방법으로가 아니라 고려약재를 리용하여 간장질병을 치료할수 있는 주사약을 개발하자고보니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이들은 산골의 조건으로는 간장질병을 치료하는 주사약을 만들수 없다는 기성리론을 뒤집으며 자체로 설비를 제작하면서 연구를 계속하였다.그 나날 이들이 자체로 생산한 약물들은 무려 10여t에 달하였고 강심제, 해열진통약, 신경통 및 관절염치료약 등 새로 개발한 약들은 수십종이나 되였다.
고심어린 노력끝에 첫 주사약이 개발되였을 때였다.이들은 온 세상 재부를 다 얻은듯 기뻐하였다.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하였다.
약이라면 덮어놓고 전문제약공장들이나 중앙병원들에서 만든것만 쓰려고 하는 일부 의료일군들과 환자들의 마음을 돌려세우기가 조련치 않았던것이다.
그들을 탓할것도 못되였다.오직 약효능으로써만 고려약의 우수성을 증명할수 있었다.
그날 밤깊도록 그들부부는 자신들의 심혈이 깃든 연구일지를 한장한장 번져보며 많은것을 생각했다.
발전하는 현실은 혁신적인것을 요구한다.
비록 몸은 두메산골에 있어도 세계적인 발전추세에 따라세울줄 아는 안목을 가져야 진정으로 인민의 건강을 책임질수 있다는 결심이 더욱 확고해졌다.
몇달후 박기남과 그의 안해는 조선의학협회에서 조직한 부문별연구토론회에 참가하게 되였다.권위있는 교수, 박사들의 강의를 받는 과정은 그들부부의 눈을 번쩍 틔워주었고 탐구의 나래를 더 활짝 펼칠수 있게 해주었다.
그들은 마치 사막에서 호수를 만난 심정이였다.식사시간도 잊고 온종일 과학기술서적들을 탐독하기도 하였다.자강도 산골에서 올라온 부부의사의 열정에 많은 사람들이 탄복하며 적극 도와나섰다.
이렇게 련이어 전국적인 과학토론회에 참가하는 과정에 그들부부는 자기들의 연구성과를 스스로 부정해버리였다.
(확실히 낡았어.이런 방법으로는 발전하는 현실에 따라세울수 없다.)
그들은 또다시 새로운 약물에 도전하였다.
이 나날 시대가 바라고 인민이 반기는 참된 보건일군이 된다는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것, 자기의 모든것을 깡그리 바칠 때만이 값높은 그 부름을 받게 된다는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이렇게 또 여러해가 지나 그들부부는 드디여 근육주사용으로부터 정맥주사용으로 발전시킨 생당쑥시호간염주사약을 개발하였으며 전국적인 토론회에서 소중한 연구성과를 발표하였다.
당에서는 수십년세월 변함없이 인민들의 건강증진을 위해 자기의 성실한 땀과 열정을 바쳐온 박기남을 공화국창건 74돐 경축행사에, 그의 안해 권명희를 공화국창건 75돐 경축행사에 불러주었다.하여 그들은
박기남은 평양의학대학병원 과장의 편지를 다시금 들여다보았다.그러느라니 비록 고생스러웠지만 보람넘치는 탐구의 길을 생의 끝까지 걸어갈 결심이 더욱 굳어졌다.
인민이 아는 산골마을의 부부의사라는 소중한 부름과 함께.
본사기자 김옥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