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애국공로자들의 고결한 인생관을 따라배우자

애국은 값높은 삶의 초석이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그 어떤 난관과 시련앞에서도 주저하거나 동요하지 않고 참된 애국의 한길을 걷는 사람, 조국과 인민이 맡겨준 혁명과업을 한치의 드팀도 없이 제때에 성실히 수행하는 사람이 진짜애국자입니다.》

삶은 무엇으로 아름다운가.애국은 어디에 있는가.

그에 대한 대답을 우리는 어머니당이 값높이 내세워준 평양철다리보공장 로동자 유명숙동무와 평산군산림경영소 산림감독원 윤경국동무, 애국모란피복공장 직장장 최현순동무의 값높은 생의 자욱에서 찾아보게 된다.그들이 지닌 숭고한 인생관과 조국에 대한 헌신적복무정신은 시대가 떠받들어주고 인민이 존경하는 애국자는 과연 어떤 사람들인가를 다시금 뚜렷이 알게 해준다.


나라일에 량심을 묻자

평양철다리보공장 로동자 유명숙동무


지금으로부터 40여년전 평양철다리보공장에 탄원해온 18살 처녀의 당돌한 제기가 사람들을 깜짝 놀래웠다.

《저에게 용접을 배워주십시오.》

《처녀가 용접을?!》

어이없어 웃는 사람들에게 처녀는 더욱 고집스럽게 요구하였다.

체소한 내가 힘으로야 공장에 보탬을 줄수 없지 않은가.현장을 아무리 둘러봐야 자기가 할수 있는 일은 용접밖에 없다는것이였다.

이악쟁이처녀는 끝내 용접공이 되였다.그날부터 그는 근 반세기를 한직종에서 용접불꽃과 함께 만근자로 일해왔다.그가 바로 공장적으로 로동년한이 제일 오래며 용접기술이 제일 높은 유명숙녀성이다.

지금까지 수십명의 기능공들을 키워낸 그가 이제는 그들의 뒤전에서 쉬염쉬염 일해도 탓할 사람이 없건만 여전히 앞장에서 분투하는 그 놀라운 정열에 감탄을 금치 못하며 언제인가 한 신입공이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정말로 힘들지 않은가고.

그때 유명숙녀성이 한 말을 작업반원들은 누구나 생생히 기억하고있다.

《힘들다고 여기면 깃털처럼 가벼운 일도 힘에 부친 법이지.난 늘 내 일은 누가 대신해줄수 없다고 생각한다네.내가 용접봉 한대라도 더 녹이면 그만큼 조국의 부강번영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지 않겠나.》

그는 24살 꽃나이에 영광스러운 조선로동당원이 되였다.붉은 당원증을 품에 안던 날 그는 성스러운 당기를 우러러 맹세다졌다.생의 마지막힘이 다할 때까지 조국을 받들어 변함없이 용접공으로 살겠다고.

《하지만 그 맹세를 지켜 한모습으로 산다는것은 정말 헐치 않은 일이였습니다.》

그의 추억은 온 나라가 어려움을 겪던 고난의 행군과 더불어 시작되였다.

어느 가정에서나 식량난을 겪고있던 그때 그도 인생의 갈림길에서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공장을 지켜야 하는가, 가정을 지켜야 하는가.

공장에서 첫걸음을 함께 떼였던 동무들도 하나둘 일터를 떠나가고있었다.그들처럼 나도 공장일을 그만둔다면 하는 생각에 이르렀을 때 그는 저도 모르게 소스라쳐 놀랐다.남편을 잃고도 떠나지 않았던 일터였다.처녀시절부터 하루의 공백도 없이 이어온 출근길이였다.

문득 보람찬 일터에서 흘러온 가지가지 일들이 새삼스럽게 되새겨졌다.

그에게 용접하는 법을 처음으로 가르쳐준 사람은 공장적으로도 손꼽히는 기능공이였다.늘 힘든 일을 도맡아하는 기능공아바이에게 언제인가 유명숙녀성은 일하기가 그렇게도 재미있는가고 물은적이 있었다.잠시 깊은 생각에 잠겨있던 아바이는 이렇게 말했다.

《넌 아마 다는 모를게다.기술을 남에게 배워주면 그 순간부터 자기는 굶어죽게 된다고 생각하는 자본주의일본땅에서 무엇이든 배운다는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용접공이 잠시 자리를 뜬새에 몰래 용접을 해보다가 매도 끔찍이 맞았지.그런데 이 땅에선 희망하는 무엇이든 다 해볼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

내가 조국에 오길 정말 잘했어.이 고마운 품을 위해 그저 바치고만싶구나.》

남이 못하는 일을 한번 본때있게 해보겠다는 승벽심으로 충만되였던 유명숙녀성은 저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그처럼 크고 소중한 조국의 사랑을 너무도 응당하게 받아왔구나 하는 송구스러움에, 승벽심만으로는 진정으로 조국을 받들수 없다는 생각에 온밤 잠들수 없었다.

그의 출근시간은 더욱 빨라졌다.흐르는 세월속에 그는 온 공장이 사랑하고 떠받드는 보배가 되였다.

개선문건설이 한창이던 40여년전, 그는 22살 꽃나이에 전국적인 용접경기에 참가하게 되였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뜻밖의 일로 일손을 놓게 되였다.불도가니처럼 끓어번지는 건설장을 바라만 봐야 하는 그의 속은 타들어가는것만 같았다.더이상 누워있을수가 없었다.지팽이를 짚고 현장에 나타난 그를 무작정 병원으로 떠미는 일군들에게 그는 애원했다.

쓰러져도 여기에서 쓰러지겠다고, 개선문건설에 나의 땀을 조금이나마 바칠수 있는 이 고귀한 영예를 빼앗지 말아달라고.

좋은 날엔 당앞에 다진 맹세를 지키고 어려운 날엔 그것을 저버린다면, 나라의 덕을 입으며 살 땐 나라일에 충실한척하다가 나라가 무거운 짐을 지고 시련의 길을 걸을 땐 자기 어깨를 빼내며 한몸 사린다면 어찌 량심을 가진 인간이라 할수 있겠는가.

그는 허리띠를 더 힘껏 졸라맸다.그리고는 입속으로 몇번이고 뇌이였다.

(이제 좋은 날이 꼭 올거야.아무렴, 오구말구.)

그의 출근길은 계속 이어졌다.

그 준엄한 나날에 그는 조국과 자기의 삶을 같이하며 나라일에 량심을 묻는다는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절감하였다.

사실 그는 이미 오래전에 중병으로 큰 수술을 받은 몸이다.하지만 그는 무거운 일감앞에서 한번도 자기자신을 먼저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5년전,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검덕지구 피해복구현장을 찾으시였다는 소식이 전해진 그날 당보를 받아안은 이 나라 사람들 누구나 그러했지만 유명숙녀성은 온종일 가슴이 후두둑 떨리는것을 진정할수 없었다.

한생 철다리보를 만들고 수리한 그는 너무도 잘 알고있었다.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주저없이 건느신 그 다리, 나무방틀로 림시교각을 세운 그 협곡철길이 얼마나 위험천만한것인지.

피해현장들의 철다리보수리를 위한 투쟁에 떨쳐나선 공장로동계급의 앞장에서 말그대로 그는 불사신처럼 일했다.시간을 재촉하며 분투하던 어느날 그는 무섭게 몰려드는 피로에 그만 쓰러졌다.

꿈속이런가, 문득 귀전에 울려오는 아들의 목소리에 그는 정신을 차렸다.눈을 떠보니 아들의 눈빛이 못견디게 가슴을 파고들었다.

10여년전, 그는 조국보위초소로 떠나게 될 아들의 간절한 부탁을 받고 정말 오래간만에 시간을 내여 아들과 함께 평양의 거리를 돌아보았었다.

김일성경기장, 개선문, 주체사상탑, 5월1일경기장, 인민대학습당…

어머니의 넋과 땀과 열정이 어려있는 그 하나하나의 창조물들을 긍지높이 안아보며 아들은 말했었다.

《군사복무를 마치고 돌아오면 나도 어머니에게서 용접을 배우겠어요.》

그런데 그것이 아들이 남긴 마지막말로 될줄이야.

늘 공장일에 묻혀사느라 언제한번 엄마구실을 변변히 한적 없건만 용접공어머니를 제일 큰 자랑으로 여겨온 아들, 당과 조국앞에 부끄럼없이 산 청춘으로 어머니에게 한생의 효성을 다 바친 아들의 애국렬사증을 눈물로 적시며 그는 굳게 마음다졌다.

(아들아, 네몫까지 합쳐 이 엄마가 두곱, 세곱으로 일하마.)

그는 다시 강잉히 일어섰다.나약해진 내 모습을 보았다면 아들이 얼마나 실망했을것인가.

힘들 때마다 그러했듯이 그는 손목시계를 품에 꼭 안아보았다.위대한 수령님의 존함을 모신 시계의 초침소리에 귀를 기울이느라면 그는 이름할수 없는 힘이 솟구쳐올라 마음이 산악같이 든든해졌다.하나하나의 철다리보를 수리할 때마다 그는 늘 이렇게 생각하군 했다.

내가 수리한 이 철다리로 혹시 우리 원수님께서 지나가시게 된다면!

이렇듯 지극하고 충성스러운 마음을 안고 그는 48년세월을 한모습, 한본새로 애국적삶의 자욱자욱을 값높이 새겨왔다.

그가 해놓은 크고작은 일을 곁에서 걸음걸음 다 지켜보고있은듯 품들여 내세워주고 빛내여주는 어머니당의 사랑과 믿음을 받아안을 때면 그는 솟구치는 격정을 금할수 없었다.한없이 소중한 어머니품을 받들어 지켜선 일터에 성실한 근로의 땀을 바쳤을뿐인데 그 삶을 영광의 단상에 세워주며 힘을 주고 언제나 처녀용접공시절처럼 살라고 젊음을 더해주는 우리 당의 고마움을 무슨 말로 다 노래할수 있으랴.

그의 마음속에서는 언제나 하나의 맹세가 용암처럼 끓어넘쳤다.

(어머니당이여, 내 한생 그 품만 따르리라.그 품만 받들리라!)

키는 자그마하지만 왜서인지 우리앞에 선 그의 모습은 아득하게 높이 바라보였다.

비록 작고 가볍지만 자기 한몸을 깡그리 녹여 하나하나의 창조물에 억척같은 힘을 더해주는 용접봉과도 같이 조국의 재부를 늘여 혼심과 진정을 아낌없이 고인 그의 애국적삶에 누구인들 머리숙이지 않을것인가.

그의 거울같은 삶은 우리 후대들에게 이렇게 말하는것만 같다.

나라일에 량심을 묻으라!


흙이 되여 뿌리 덮어주리라

평산군산림경영소 산림감독원 윤경국동무


평산군산림경영소의 공훈산림공인 윤경국동무는 지난 47년간을 산림감독원으로 일해왔다.그 나날 그는 2 600여정보의 벌거숭이였던 산림에 잣나무림만도 1 200정보를 조성하였다.

그 울창한 산림의 덕을 입는 사람들은 비단 청수리사람들만이 아니다.평산군의 인민생활향상에도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다.

이젠 청수리나무모 하면 하나같이 크고 충실한것으로 하여 그 소문이 이미 오래전에 군의 지경을 벗어났다고 한다.

그가 산리용반성원들과 함께 생산한 나무모는 한해에 보통 50만그루, 30년으로 줄잡아 계산해도 1 500만그루, 1정보에 평균 2 000그루의 나무를 심는다고 보면 7 500정보에 해당한 나무모를 생산하여 평산군만이 아닌 린접군들의 산림도 푸르게 하였다.

산림감독원이 숲사이양묘장을 만들고 나무모를 품들여 키우는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하지만 그 례사로운 일이 사람들을 감동시키는것은 청수리의 산림복구가 이미 10여년전에 끝났다는데 있다.다시말해서 청수리는 나무심을 곳이 더는 없는 고장이다.

하다면 윤경국동무는 과연 무엇때문에 일흔고개를 훨씬 넘긴 오늘에도 손끝이 닳도록 나무모를 애지중지 심고가꾸며 발이 닳도록 험한 산발을 누비는것인가.

멸악산은 골이 많기로 유명한데 산 또한 돌박산이라 10년동안에 청수리를 떠나간 산림감독원만도 7명이나 되였다.수십년전 바로 이런 곳에 8번째 산림감독원으로 배치되여온 윤경국동무의 생각은 착잡하였다.

관리해야 할 산림면적은 2 600여정보, 그에게 있는것은 두주먹뿐, 내 과연 한생토록 매일같이 나무를 심는다 한들 저 벌거숭이산을 다 푸르게 할수 있겠는가 하는 위구심이 그의 가슴에 구름처럼 밀려들었다.며칠밤을 두고 잠 못이루던 어느날 그는 어뜩새벽에 집을 나섰다.

온 나라에 소문난 운산군의 공훈산림공 강윤경동지를 찾아가 배우기도 하고 북진로동자구의 그 황금산을 직접 밟아보고싶었던것이다.

열매따는 사람들의 웃음소리 넘쳐흐르고 온갖 새 날아들어 더욱 아름다운 북진로동자구의 산들을 발목이 시도록 돌아본 그날 그는 강윤경아바이와 마주앉았다.공훈산림공아바이의 눈빛은 깊은 감회에 젖어있었다.

《정말 그늘 한점 없는 산이였지.폭격에 불탄 자리마다 나무를 심으면서 난 생각했네.이것도 원쑤와의 싸움이라고.

이 황금산은 결코 내 혼자 힘으로 가꾼것이 아니라네.여기엔 북진마을사람들의 땀과 지성도 깊이 슴배여있지.》

그날로 밤길을 달려 청수리로 돌아오는 윤경국동무의 가슴속에서는 새로운 결심이 억척같이 뿌리내렸다.

(나무를 심자.마을사람들을 불러일으키자.이것은 제대군인인 나의 투쟁임무이다.우리 청수리에도 황금산을 가꾸자.)

며칠후 그의 집곁에는 청수리산림전망도가 크게 나붙었다.또 얼마후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길가까이에 아담한 휴식터가 생겨났다.입산규정이며 산림리용질서와 산림보호관리에 이르는 모든 문제들이 직관화되여있는 그곳은 마을사람들에게 있어서 하나의 학습터와도 같았다.

굳잠에 들었다가도 도끼질소리만 들리면 화닥닥 자리를 차고일어나 문밖으로 달려나가는 윤경국동무의 마음속엔 앉으나서나 나무밖에 없었다.봄철이면 혹시 산불이 일가봐 그가 얼마나 고심하며 마음을 썼던지 마을사람들은 자기 집 마당가에서 불피울 일이 있어도 산림감독원에게 먼저 알려주는것을 철칙으로 삼았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하여도 그들은 20대의 새파란 산림감독원의 가슴속에 얼마나 큰 꿈이 간직되여있는지 다는 알수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그의 집에는 돼지우리가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늘 산에서 나무와 씨름질하느라 아이가 크는 모습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데 언제 돼지까지 키우겠는가고 하는 안해에게 윤경국동무는 말했다.

《지금 쓸만한 나무림은 겨우 1%뿐이요.나머지 99%를 경제림으로 만들어야 황금산이 될텐데 먼 후날 우리 애들에게 돌박산이여서 나무를 심지 못했다고 하겠소.집짐승을 더 많이 키워서 거름을 내기요.그래야 애어린 나무모들이 바위츠렁에도 깊이 뿌리내릴수 있소.》

한그루한그루 나무를 살리기 위해 산정점에까지 거름지게를 지고 그들부부가 무릎에 피가 지도록 헤쳐간 길은 진정 그 얼마였던가.

림산개조를 결심한 윤경국동무와 산리용반성원들은 손끝에 피가 나도록 나무뿌리를 캐내고 돌각담을 쌓아 양묘장을 만들었다.그리고는 길을 닦았다.그길로 그들은 거름을 날라 한평한평을 걸구었고 밤낮으로 물을 길어다 나무씨를 뿌린 이랑이랑을 적셨다.

그러던 어느날 이른새벽 양묘장을 돌아보던 윤경국동무는 그만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금시 땅밖으로 고개를 갸웃이 내밀던 어린 싹들이 말끔히 자취를 감춘것이였다.산짐승들이 무자비하게 잘라먹었던것이다.그날부터 양묘장주변에서는 밤새 모닥불이 타올랐고 날밝도록 놋양푼 두드리는 소리가 멎을줄 몰랐다.그렇게 한달나마 윤경국동무와 그의 안해를 비롯한 산리용반성원들은 양묘장에서 뜬눈으로 새날을 맞았다.

그렇게 피가 나게 일구고 가꾼 양묘장이 큰물에 통채로 없어졌을 때 윤경국동무는 마치도 살붙이를 잃은것만 같아 눈앞이 다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그는 주저앉을수 없었다.

어느해 초겨울 그는 자연적으로 자라는 이깔나무모들이 많다는 장진으로 산리용반성원들과 함께 먼길을 떠났다.

그때를 돌이켜보며 윤경국동무는 이렇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며칠동안 캐낸 수십만그루의 나무모를 마대에 담아메고 백수십리를 꼬바기 걷던 어느날 화물자동차를 발견한 우리는 다짜고짜 적재함에 나무모마대부터 실었지요.그런데 운전사가 장사군배낭을 싣는 차가 아니라며 그것을 당장 부리우더니 바람처럼 떠나가는것이 아니겠습니까.더는 걸을 맥이 나지 않습디다.그런데 그 자동차가 다시 우리곁에 와서 멎어서더군요.사연을 다 듣고나서는 〈이 어려운 때 쌀배낭이 아니라 나무모배낭을 메고 수백리길을 걷다니, 정말 애국자들이요.〉 하며 자기의 도중식사까지 안겨주는데 얼마나 고맙고 힘이 되던지…》

고난의 행군때라 기차는 때없이 멎어섰다.자기들은 물을 마시지 못해도 등에 진 나무모만은 마르지 않게 포기포기 적시며 그렇게 애기처럼 품고온 그 나무모들이 이제는 아름드리거목이 되였다고 한다.하지만 가장 어려웠던 시절의 정과 추억이 깃든 나무여서 지금까지 한그루도 베지 못했다는 윤경국동무의 목소리는 뜨겁게 젖어있었다.하기에 그는 자식들이 언제부터 말하기 시작하고 언제부터 걸음마를 뗐는지는 잘 몰라도 그 수천정보 산림의 한그루한그루가 어느 자리에서 어떤 모양새로 크고있는가는 다 알고있었다.

해마다 설날이 오고 그의 생일이 되면 마을사람들은 늘 산에서 살다싶이 하는 그에게 축하의 마음을 담아 술이라도 한잔 부어주고싶어 찾아오군 한다.그럴 때면 그는 그들에게 이렇게 진심으로 당부하군 한다.

《나한텐 술 한잔 붓는것보다 나무 한그루라도 더 심는것이 고마운 일이요.》

사실 중학시절부터 소문난 마라손선수였던 그의 꿈은 우승의 시상대에 있었다.그 애국의 단상에 그는 한생토록 혼심을 바쳐 가꾼 청수리의 산림을 올려세웠다.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가 누벼온 멸악산줄기는 종착점이 없는 마라손주로였다.그 주로에 오늘은 아들 윤광철동무와 함께 나섰다.아들이 청수리만이 아닌 평산군의 여러 리의 산림을 책임진 분소장이 되였을 때 윤경국동무는 양묘장을 더 늘였다고 한다.그가 진정으로 바라는것은 청수리만이 아닌 평산군의 모든 산림에 열매향기, 약초향기 넘치는것이다.

그도 이제는 인생의 황혼기를 바라보는 할아버지가 되였다.힘이 진할 때도 있고 반나절만이라도 푹 쉬고싶은 때가 있다.그때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을 채찍질하며 순회길에 오르군 한다.세해전 공화국창건기념일을 맞으며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모시고 만수대언덕에서 영광의 기념사진을 찍던 그날 그는 맹세다졌다.숨지는 순간까지 애국을 하겠다고.

깊은 뿌리가 거목을 안아올리는 법이다.

청수리의 2 600여정보를 뒤덮은 무성한 나무들, 진정 그것은 윤경국동무의 애국의 삶에 뿌리를 내린것이 아니겠는가.


혁신자집단을 떠올린 힘-진정

애국모란피복공장 직장장 최현순동무


해마다 인민경제계획을 넘쳐 수행하며 당정책관철의 앞장에서 투쟁하던 나날에 당에 여러 차례 기쁨을 드린 애국모란피복공장 3직장은 3중3대혁명붉은기직장이며 그 무슨 일에서든 막힘이 없는 만능가집단이다.흔히 공장사람들은 3직장에 가면 누구든 혁신자가 되고 애국자가 된다고 말한다.하다면 그 집단의 기수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공장일군은 직장장 최현순동무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그는 백수십명이나 되는 직장종업원들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잡고있는 사람입니다.》

지금으로부터 5년전, 공장의 본보기단위인 3직장에서 사회생활의 첫걸음을 떼게 된 백금향동무의 가슴은 남다른 일욕심으로 부풀어올랐다.한번 본때있게 일해서 남먼저 혁신자의 영예를 떨치겠다는 욕망을 안고 그는 자진하여 어려운 일을 맡아나섰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그는 나약해지는 마음을 걷잡을수 없었다.기대곁에 수리품이 계속 쌓일 때면 그는 저도 모르게 후회감이 물밀어오르는것을 어쩔수 없었다.배치해주는 일터에서 고스란히 일했더라면 이렇게 직장의 짐은 되지 않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솟구칠수록 남들이 10년동안 숙련한 기능을 단숨에 배우겠다고 작정했던 자신이 더없이 부끄러웠다.

그러던 어느 휴식날 현장에서 제품을 수리하던 그는 뜻밖의 인기척에 고개를 들었다.《금향아, 힘들지.》 하는 직장장의 따뜻한 목소리에 처녀는 그만 참았던 눈물을 쏟고야말았다.

온밤 그를 도와 제품을 함께 수리하며 최현순동무는 이렇게 말했다.

이 일 하다 그만두고 저 일 하다 물러서면 언제 가도 성공할수 없다.내가 맡은 일은 무조건 나라앞에 내가 책임지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피타게 노력해보라.세상에 노력해서 못할 일이란 없다.

하지만 백금향동무는 다 알수 없었다.그의 기능을 하루빨리 올려세울 묘리를 찾기 위해 직장장이 새운 밤이 얼마이고 어린 신입공에게 자신심을 심어주기 위해 직장초급일군들과 함께 얼마나 많은 방도를 모색했는지.

백금향동무는 마침내 자신을 이겨내고 온 직장을 깜짝 놀래웠다.로동생활의 첫걸음을 뗄 때 결심했던 그대로 남들이 10년동안 숙련한 기능을 단 1년만에 터득했던것이다.바로 그렇게 직장의 종업원들은 누구나 최현순동무의 손끝에서 세월을 앞당겨 당당한 기능공으로 준비되였다.그것은 당에서 준 과업을 당에서 정해준 시간에 최상의 질적수준에서 해내는것을 가장 큰 영예로 여기는 직장장 최현순동무에게 있어서 더없이 보람있는 일이였다.그 성장의 날과 달들에 종업원들의 가슴마다에 간직된 가지가지 이야기들을 어떻게 한두마디로 다 전할수 있겠는가.

어느날 생산의 중요공정을 맡은 재봉공 허성숙동무에게로 직장장이 다급히 다가왔다.직장장의 손에는 그가 완성하여 다음공정으로 넘겼던 제품이 들려있었다.

아무리 봐도 부족점을 찾을수 없어 머리를 기웃거리는 그에게 최현순동무는 말했다.제품을 그냥 볼 땐 모르겠더니 쟈크를 채워보니 알릴듯말듯하게 좀 울더라고, 자기가 그만 놓칠번했다고.

결국 그 많은 제품들을 일일이 다 쟈크를 다시 채워보며 앞에서도 보고 옆에서도 보면서 부족점을 찾기 위해 애썼다는것이 아닌가.

사실 제품의 중요공정을 맡은 로동자들은 공장에서도 손꼽히는 기능공들이였고 매 공정마다 세워진 기준 또한 엄격한것이여서 직장에서 완성한 제품들은 어느것이나 쉽게 흠을 잡을수 없었다.하지만 바늘 한뜸한뜸에도 자기의 충성심을 비추어보며 늘 미흡함을 먼저 찾는데 습관된 최현순동무는 0.001%의 부족점도 허용할수 없었다.

제품에 합격도장을 박는것보다 더 중요한것은 자기의 량심앞에 떳떳한것이다!

그날 자기의 량심을 채찍처럼 후려치던 직장장의 이 말을 다시금 뜨겁게 외워보며 허성숙동무는 이렇게 진정을 터놓았다.

《그지없이 헌신적이고 순결한 그 마음에 끌리고 그의 일본새를 닮으며 우리는 직장장동지에게서 애국을 배웠습니다.》

이것은 그 한사람의 목소리만이 아니다.

한뽐도 안되는 실밥을 놓고도 최현순동무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종업원들이 매 기대에서 실을 30cm만 랑비해도 그것을 다 합치면 실 한토리가 된다.그 한토리로 제품을 얼마나 많이 생산할수 있겠는지는 동무들이 더 잘 알것이다.언제나 나라를 먼저 생각하자.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7차전원회의 확대회의를 앞두었던 몇해전 2월 어느날 공장은 말그대로 격정의 불도가니가 되였다.응당 할 일을 한 자기들에게 은정어린 선물을 안겨준 어머니당의 웅심깊은 사랑에 공장로동계급은 고마움으로 끓는 가슴을 진정하지 못하였다.

누구나 생각했다.무엇으로 어떻게 보답할것인가.

공장일군들과 로동계급의 마음은 한곬으로 합쳐졌다.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제일 마음쓰시는 농업전선에 농기계를 마련하여 보내주자고.

그때 직장종업원들을 불러일으켜 제일먼저 봉화를 든 사람은 최현순동무였다.

만세를 부르고 맹세만 다지는 사람이 되지 말고 너도나도 실천으로 애국을 하자.그처럼 무거운 일감을 걸머지고도 5 000여대의 농기계들을 만들어 농업전선을 지원한 우리 군수로동계급처럼 당의 걱정을 남먼저 덜어드릴줄 아는 철든 자식이 되자는 그의 열렬한 호소는 모두를 격동시켰다.그의 뒤를 따라 초급일군도 로당원도, 금방 입직한 신입공도 앞다투어 나섰다.직장의 애꾸러기도, 한때는 편안한 다른 일터를 꿈꾸었던 처녀도 진정을 합쳤다.

마침내 공장에서 품들여 마련한 갖가지 농기계들을 사회주의전야로 떠나보내게 될 날이 왔다.푸름푸름 동트는 아침 공장마당에 줄지어 세워놓은 농기계들을 희열에 넘쳐 바라보던 지배인은 뜨락또르곁에서 떠나지 못하는 누군가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옮겼다.그런데 최현순동무가 하얀 수건으로 뜨락또르의 차창을 닦고 또 닦는것이 아닌가.

뜻밖의 인기척에 고개를 돌리던 그는 황황히 눈물을 씻으며 조용히 말했다.

《지배인동지, 제가 정말 철이 없었습니다.부모잃은 저를 애지중지 키워준 당의 품이 고맙다고 말만 할줄 알았지 왜 일찌기 이런 생각을 못했겠습니까?!》

바로 여기에 보답의 맹세로 매일, 매 순간 자신을 채찍질하며 수십년세월 사심없이 당을 받들어 불같이 일해온 최현순동무의 인간됨이 있다.

하기에 성격도 고충도 서로 다른 수많은 종업원들을 자기의 친자식으로 품어안고 정과 사랑을 깡그리 기울이며 최현순동무가 바란것은 오직 하나, 그들이 집단을 알고 당과 조국을 아는 참된 애국자가 되는것이였다.자기를 다 바쳐서라도 공장일이 잘되고 나라일만 잘될수 있다면 더 바랄것이 없다는것이 가식없는 그의 진정이다.

이렇듯 진실하고 불같은 인간이기에 그를 따르는 종업원들의 마음은 실로 뜨겁다.가정에서 기쁜 일이 생겨도, 별식을 만들어도 그들은 자기의 직장장을 먼저 생각한다.그가 국가적인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공장을 떠나면 종업원들은 물론 그 가족들은 TV앞에서 떠날줄 모른다.자기들이 어머니처럼 따르는 직장장의 정든 얼굴을 찾아보고싶어서, 그의 영광을 제일먼저 기뻐하고 축하해주고싶어서.

그와 오래동안 함께 일해온 부문당비서는 이렇게 토로했다.

《그는 늘 입버릇처럼 외웁니다.자기 종업원들을 어머니심정으로 사랑하고 이끌어주며 그들을 진심으로 받드는 길에 일군의 참된 애국이 있다고 말입니다.》

바로 그 진정이 당의 고심과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릴수 있다면 만사를 제치고 한몸바쳐나설줄 아는 애국집단을 떠올렸고 위훈의 귀중한 동력이 된것이다.전진하는 집단에는 훌륭한 기수가 있기마련이다.

* *

우리 주인공들의 값높은 애국적삶에 스스로 자신을 비추어보자.

나는 언제나 조국앞에 떳떳이 머리를 들고 살수 있게, 조국의 아들딸로서 해야 할 일을 다했다고 자부할수 있게 성실하게 책임적으로 일해왔던가.

자기만을 위해 뛰여다니는 인간의 삶에 애국이란 절대로 있을수 없다.

자식들이 자랑스럽게 이어가고 후대들이 두고두고 본받으며 조국과 인민이 기억하는 애국의 삶, 그런 인생이 남긴 흔적은 영원히 별처럼 빛난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 조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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