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의 마음속에 영생하시는 우리 수령님
몸소 잡아주신 학교터전
신포역을 나서느라면 《조선을 위하여 배우자!》라는 구호를 중심으로 펼쳐진 교재원을 볼수 있다.그옆의 산기슭에 신포시 영웅어항기술고급중학교가 자리잡고있다.
해산동의 산기슭에 아담하게 자리잡은 크지 않은 이 학교에는 60여년전 자라나는 새세대들을 위해 기울이신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과 은정이 뜨겁게 깃들어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김일성동지는 고결한 인품과 덕망을 지니신 위대한 인간이시였다.》
1960년대초까지만 해도 이 학교는 어느한 공장과 잇닿아있었다.당시 학교는 늘어나는 학생수에 비해볼 때 규모가 매우 작은 단층건물이였다.
1961년 4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신포수산사업소(당시)에서 함경남도 수산부문 일군협의회를 지도하시다가 이 학교의 실태에 대하여 알게 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학교를 본래의 자리에 다시 지었으면 한다는 한 일군의 보고를 받으시고 깊은 생각에 잠기시였다.
이윽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협의회를 미루고서라도 학교건설문제부터 먼저 의논하자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그러시고나서 학교가 울타리 하나 사이를 두고 공장과 린접해있으니 학생들의 학습과 신체발육에 얼마나 지장이 많겠는가고 가슴아파하시였다.
잠시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에게 학교를 본래의 자리에 다시 짓지 말고 바다에 나가 물고기를 잡는 어로공들이 늘 바라보며 새힘을 얻을수 있는 곳에 새로 건설하자고 하시며 몸소 해산동의 산기슭에 학교터전을 잡아주시였다.
후대교육을 위해 협의회도 미루시고 귀중한 시간을 바쳐가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우러르며 일군들은 격정을 금치 못하였다.
일군들의 뇌리에는 항일의 나날 강반석어머님의 사랑이 깃든 20원의 돈을 헐벗은 마안산의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돌려주시고 조국이 해방되여 하셔야 할 일도 많고많으시였건만 어느한 중요회의에서 아이들의 연필문제를 토의하시며 자라나는 새세대들의 성장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던 가슴뜨거운 사실들이 감회깊이 돌이켜졌다.
일군들이 뜨거운 격정에 잠겨있는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학교를 건설해주자고, 자재를 보장해주겠다고 하시며 필요한 대책을 모두 세워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따뜻한 사랑속에 그후 학교건설은 빠른 속도로 추진되여 한해후에는 아담한 2층교사가 번듯하게 일떠서게 되였다.
1963년 8월초 어느날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신포역에서 새 교사를 바라보시며 현대적으로 잘 건설하였다고 커다란 기쁨을 표시하시였다.
그후 위대한 수령님의 끝없는 사랑에 보답하기 위하여 이곳 교직원, 학생들은 한결같이 떨쳐나 학교를 더욱 훌륭히 꾸리였다.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바다를 사랑할데 대한 주제로 극작품도 창작완성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학교의 교직원, 학생들은 자기들이 만든 미숙한 극작품이 위대한 수령님께 기쁨을 드리게 될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다.
1966년 6월 평양에서는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을 모시고 조선소년단창립 20돐기념 전국학생소년예술소조 종합공연이 진행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곳 학교에서 준비한 극작품을 보시면서 학생들의 포부가 대단히 크다고 하시며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자기들이 준비한 극작품이 잘되면 얼마나 잘되였으랴만 그토록 기뻐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우러르는 공연참가자들의 눈가에서는 뜨거운것이 흘러내렸다.
이렇듯 몸소 학교터전도 잡아주시며 사랑과 정을 기울여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따뜻한 손길이 있어 학교는 지난 기간 10여명의 영웅들을 비롯하여 많은 과학자, 예술인들과 체육명수들을 배출한 자랑많은 학교로 될수 있었다.
오늘도 학교의 창가마다에서는 그날의 뜻깊은 이야기를 전하며 학생들의 글소리, 노래소리가 명랑하게 울려퍼지고있다.
본사기자 유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