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세년년 풍작을 이룩해갈 일념 안고
며칠전 재령군 읍으로부터 안악군으로 향한 도로를 따라 달리던 우리의 취재차는 어느한 고개마루에서 멈추어섰다.
절세위인들의 현지지도표식비에 대한 관리사업에 지성을 바쳐가고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앞에 밟혀왔던것이다.
알고보니 이들은 황해남도농촌경리위원회 재천농장 일군들과 농장원들이였다.
우리와 만난 김일영초급당비서는 4월의 명절이 하루하루 다가올수록
당 제4차대회이후 농장에서는 한알의 낟알이라도 더 증수할 열의밑에 대담하게 두벌농사에 접어들었으나 이렇다할 경험이 없다나니 응당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있었다.
바로 이러한 때인 1963년 8월 어느날
둔덕진 밭에 뒤그루로 심은 농작물의 파종량도 다시금 정해주시고 친히 저택정원에서 시험해보신 농사방법에 대해서도 알기 쉽게 이야기해주시던
밤새 내린 비로 하여 포기들을 헤치며 나가시는 그이의 옷자락은 인츰 젖어들었고 신발에는 질벅질벅한 밭흙이 가득 묻어났다.
하지만
다음해 8월 또다시 이곳을 찾아주신
이렇게 말하며 초급당일군은 우리를 제5작업반으로 이끌었다.
2중3대혁명붉은기단위의 영예를 지닌 이곳 작업반에 들어서니 분위기부터가 달랐다.정갈하게 꾸려진 건물들과 속보판에 씌여진 호소적인 글들을 보아도, 당면한 영농사업으로 드바삐 뛰여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아도 당대회과업관철을 위한 투쟁의 첫해를 높은 농업생산성과로 빛내여가려는 작업반원들의 앙양된 열의를 체감할수 있었다.
종자처리장에서 우리와 만난 김광수작업반장은 나라의 농업발전과 우리 인민들의 생활향상을 위하여 한평생 포전길을 걸으신
이것을 어찌 그만의 심정이라고 하겠는가.
본사기자 안철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