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인류의 마음속에 영생하시는 가장 걸출한 수령, 절세의 위인

김일성주석은 정녕 불세출의 대성인이십니다》


한없이 따뜻한 인정미와 숭고한 덕망을 천품으로 지니시고 만민을 품어안아주신 어버이수령님을 진보적인류는 오늘도 그리워하며 칭송의 목소리를 높이고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력사와 인류앞에 거대한 공적을 쌓으신 위인중의 위인이실뿐 아니라 이 세상 그 누구도 따를수 없는 고결한 인품을 지니신 자애로운 어버이이시였다.

우리 수령님의 한없이 넓은 도량과 포옹력은 자주와 진리를 따르는 사람이라면 사상과 정견, 신앙이 서로 달라도 모두 안아주는 무한히 따스한것이였다.수많은 나라의 정계인사들과 사회활동가들 지어 적대국가의 인물들까지도 어버이수령님을 만나뵙고 한결같이 그이를 위대한 스승으로, 세계의 정치원로로 높이 칭송하며 우러러따랐다.

도이췰란드의 녀류작가였던 루이저 린저도 그들중의 한사람이다.자존심이 남달리 강하고 필치가 예리한것으로 하여 그는 서방세계에서 《부리사나운 새》로 불리웠다.

젊은 나이에 나치스를 반대하여 싸우던 남편을 잃은 날 파쑈살인마들을 저주하며 온밤 오열을 터친 후 그는 평생 눈물을 몰랐다고 한다.

어느날 그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전기를 접하게 되였다.밤새 탐독하면서 큰 감동을 받아안은 그는 평양으로 오게 되였다.

1980년 어느 봄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현지지도의 그 바쁘신 속에서도 루이저 린저를 반갑게 맞아주시였다.

건강도 헤아려주시고 알고싶어하는 많은 문제들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는 위대한 수령님께 루이저 린저는 완전히 매혹되였다.위엄을 뽐내는 형, 괴벽스럽고 거만한 형, 의식을 즐기는 형의 국가지도자들을 많이 알고있었던 그는 위대한 수령님의 자애로운 인품에 온넋이 끌려 자기의 가슴아픈 인생사를 숨김없이 아뢰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오늘 선생을 만난것을 같은 사상과 지향을 가진 전우들의 상봉으로 귀중히 여기며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고 뜻깊게 말씀하실 때 루이저 린저는 북받치는 격정을 누르지 못하고 흐느껴울었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가 눈이 나빠 영화를 보지 않는다는것을 아시고 영화를 보지 못하면 사는 재미가 있는가고 하시면서 눈치료를 받도록 친히 대책까지 세워주시였다.

자기를 국빈으로 대해주시며 한량없는 사랑을 베풀어주신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감사의 정을 안고 돌아간 루이저 린저는 그이의 위대성을 칭송하는 글을 써내는것을 시대앞에 지닌 자기의 의무, 작가의 량심으로 간주하였다.《조선방문기》를 짧은 기간에 집필한 후 위인칭송의 글들을 련이어 써냈다.

어버이수령님을 열렬히 칭송한 그의 글들은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수많은 편지들이 필자에게로 날아왔다.

루이저 린저는 축하해주는 친지들에게 나에게 있어서 김일성주석의 은혜는 대를 두고도 갚을수 없는것이였기에 그이를 위해 한글자라도 더 쓰다가 숨지는것이 나의 소원일뿐이라고 말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서거하시였다는 뜻밖의 비보에 접하였을 때 그는 자기의 생일 80돐을 맞으며 수령님께서 보내주신 금가락지를 소중히 감싸쥐고 친아버지나 남편을 잃었을 때보다도 더 가슴이 아파 못견디겠다, 나의 심장 한 부분이 뚝 떨어지는것만 같다고 자기의 비통한 심정을 토로하였다.

이것은 그만이 아니라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옵고 크나큰 사랑과 은정을 받아안은 외국의 벗들모두의 심정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고결한 인간애와 인정미에 매혹된 외국인들중에는 전 오스트리아사법상 한스 클레카츠키도 있다.

자본주의법학과 정치학을 오래동안 연구하면서 한때 정치활동에도 적지 않게 관여했던 그는 한생의 거의 전부를 자본주의사회에 대한 연구에 바쳐왔다.그러한 그가 인생말년에 위대한 수령님을 열렬히 흠모하면서 주체사상신봉자들의 대렬에 들어서게 된데는 남다른 사연이 있다.

한스 클레카츠키가 주체사상에 관심을 돌리기 시작한것은 1980년대초부터였다.당시 세계 여러 나라와 지역에서는 주체사상연구조직들이 광범히 무어지고 주체사상에 대한 연구보급활동이 활발히 진행되고있었다.

주체사상, 그것은 과연 어떤 사상이기에 대륙과 대양을 넘어 전세계에 파급되고있는것인가?

이런 의문을 한스 클레카츠키는 위대한 수령님의 로작들을 탐독하는 과정에 풀게 되였다.지금껏 그 어느 고전이나 현대의 주의주장들에서도 찾아보지 못한 참으로 독창적인 사상과 리론들에 심취된 그는 조선방문의 길에 올랐다.

이르는 곳마다에서 사람중심의 위대한 주체사상이 철저히 구현되고있는 조선의 현실을 목격하면서 그는 주체사상이 순수 리론으로가 아니라 산 현실로 위대한 견인력을 과시하고있음을 알수 있었다.

1985년 10월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스 클레카츠키의 간절한 소망을 헤아리시고 몸가까이 불러주시였다.

한때는 자본주의나라 정객이였고 지금은 일개 대학교수에 불과한 자기를 친근하게 대해주시며 다방면적인 문제들에 대하여 명철한 해답을 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우러르며 한스 클레카츠키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웨치였다.

(바로 이분께서 내가 지금껏 모색하던 참된 정치리념, 정치학을 밝혀주시였다.이분을 따라야 한다.)

그의 인생전환은 이렇게 시작되였다.한스 클레카츠키는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 창시하신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을 받드는 길에 여생을 다 바치리라 결심하였고 그것을 실천하였다.

어찌 그뿐이겠는가.

《구태여 내가 신자로 된다면 나는 주체사상을 신봉하고 김일성주석을 숭배하는 신자로 되겠다.》고 한 이딸리아국제그룹 리사장 쟝까를로 엘리아 발로리와 《위대한 진리의 전파자로서의 사명감을 안고 나는 김일성주석께서 창시하신 주체사상을 연구보급하는 길에 쓰러지는 마지막순간까지 한몸 바치리라 굳게 마음먹고 그길에서 오늘까지 살아오고있다.》라고 말한 주체사상국제연구소 명예리사장이였던 이노우에 슈하찌도 그 맹세를 변함없이 지켰다.

오늘도 진보적인류의 다함없는 칭송을 받으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그이는 만민의 위대한 어버이, 불세출의 대성인으로 영생하신다.

본사기자 김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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