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인류의 마음속에 영생하시는 가장 걸출한 수령, 절세의 위인
만민을 경탄시킨 고매한 인덕
광장에 울려퍼진 대합창
1958년 11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윁남민주공화국(당시)을 방문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윁남방문을 환영하여 수도 하노이 바딩광장에서는 군중대회가 진행되였다.
윁남수상의 환영연설에 이어 위대한 수령님께서 답례연설을 하시였다.군중은 위대한 수령님의 열정적인 연설에 심취되였다.
연설을 마치고 자리에 돌아오신 위대한 수령님과 뜨겁게 포옹한 호지명주석은 마이크앞으로 나가 《순서에는 없지만 나도 말을 좀 하려고 합니다.》라고 서두를 떼였다.이어 그의 즉흥연설이 시작되였다.
《존경하는 김일성동지는 조선민족의 영웅이시며 위대한 수령이십니다.오늘 조선인민은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밑에 미제를 타승한 기세로 천리마를 타고 내달리고있습니다.존경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방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의 사회주의건설에 대하여 말씀하시였는데 나는 우리가 사회주의건설에서 조선형제들과 경쟁을 하자는것을 제의합니다.》
그리고는 군중을 향하여 웨쳤다.
《그런데 이 경쟁은 바로 윁남인민과 조선인민의 단결을 의미합니다.나의 호소에 호응한다면 우리 함께 〈단결은 힘이다〉라는 노래를 합창합시다.》
호지명주석의 호소에 이어 군중의 합창이 시작되였다.
호지명주석은 직접 두팔을 저으며 합창을 지휘하였다.
광장에 울려퍼진 대합창은 절세의 위인이신 우리 수령님에 대한 윁남인민들의 다함없는 흠모의 분출이였다.
《세계적위인의 고명한 명제》
1977년 6월 어느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만나뵈온 프랑스신문 《몽드》 주필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하였다.
《존경하는 김일성주석각하, 나는 귀국에서의 주석각하의 개인적역할에 대하여 알고싶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신이 우리 나라에서의 나의 개인적역할에 대하여 물었는데 이것은 나자신에 대한 문제이기때문에 말하지 않으려고 하였다, 그런데 당신이 이 문제에 대하여 다시 제기하였기때문에 말한다면 나는 인민의 충복으로서 인민들을 위하여 일생을 바치려고 한다, 인민들의 충복이 되는것보다 더 영광스러운 일은 없다고 말씀하시였다.
큰 충격을 받은 주필은 우리 수령님을 우러러 자기의 솔직한 심정을 이렇게 터놓았다.
《인민존중의 절대적인 정치리념이 깃든 주석각하의 말씀은 명실공히 세계적위인의 고명한 명제입니다.》
한없이 인자하신분
1986년 6월 로동당시대의 기념비적창조물인 서해갑문 준공식이 진행될 때였다.당시 우리 나라에는 캄보쟈의 노로돔 시하누크친왕과 세네갈대통령, 잠비아민족통일독립당 총비서가 와있었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시하누크친왕과 함께 차를 타시고 준공식장으로 향하시였다.
차안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시하누크친왕에게 오늘 준공식에 세네갈대통령과 잠비아민족통일독립당 총비서가 참가한다고, 준공식때 우리 나라 애국가만 주악하기로 하였다고, 자신께서 먼저 명예위병대의 보고를 받고 애국가가 주악된 다음 세네갈대통령, 시하누크친왕, 잠비아민족통일독립당 총비서와 함께 명예위병대를 사열하기로 하였는데 그렇게 해도 일없겠는가고 물으시였다.
시하누크친왕은 황송함을 금치 못해하며 《존경하는 주석각하, 저때문에 너무 마음쓰지 마십시오.》라고 말씀올렸다.
서해갑문 준공식이 끝나고 평양으로 떠나실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시하누크친왕에게 다시금 량해를 구하신 다음 세네갈대통령과 함께 차에 오르시였다.
시하누크친왕은 평양을 향해 떠나가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타신 승용차를 바라보며 감격에 넘쳐 말하였다.
《정말이지 김일성주석각하처럼 그렇게 인자하신분은 세상에 없습니다!》
본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