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보람을 다시 찾기까지
나라의 소문난 감자산지이며 통나무생산기지인 우리 백암군에도 해마다 현대적인 농촌살림집들이 즐비하게 일떠서고있다.
북방의 지역적특색을 뚜렷이 살리며 앞을 다투어 일떠서는 농촌문화주택들을 바라볼 때면 저기에 나의 노력도 깃들어있다는 생각에 사는 멋과 긍지는 커만 간다.그럴수록 백두대지에 태를 묻은 사람의 본분을 다시 자각하고 인생의 새 출발을 하던 나날이 돌이켜진다.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나는 무엇을 바쳤는가라는 물음에 늘 자신을 비추어보면서 애국의 마음을 가다듬어야 합니다.》
4년전 고향인 량강도의 경내로 들어서는 나의 심정은 착잡하였다.산천은 예전그대로 수려했지만 그 경치를 바라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머리를 수그린채 깊은 상념에 잠겨있느라니 이길을 지나 고향을 떠나던 수십년전 그날이 어려왔다.
체육을 무척 좋아한 나는 어릴 때부터 학교체육소조에서 마음껏 재능의 나래를 펼치였다.
당에서는 북방의 평범한 한 소년의 소망을 소중히 헤아려 중앙의 체육단에서 선수생활을 하도록 은정깊은 조치를 취해주었다.
공민증을 받아안기도 전에 군복입은 체육선수가 된 아들을 대견하게 바라보던
하지만 량강도사람, 이 부름앞에 떳떳하게 산다는것이 결코 말처럼 쉽지 않음을 그후의 인생길을 통해 나는 뼈저리게 절감하였다.
선수생활을 마친 후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배치지에서 일을 시작하였다.
그때 포부가 대단했다.집단에 없어서는 안될 실력가, 고향의 자랑이 될 결심으로 제딴에는 시간을 아껴가며 노력하였다.
전망이 기대된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성수가 났고 그래서 보다 어렵고 중요한 과업들을 스스로 맡아 실력과 전개력을 과시하기도 했다.그때는 생활이 자기가 목적한바대로 흐르고있으며 이것이 곧 인생의 성공에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 모든 능력과 지향에 무엇이 비껴야 하는가를 미처 깨닫지 못했기에 모든 문제처리에서 경험과 능력이 기본이라고 여기게 되였다.사업에서 과오를 범하고 동지들의 진심어린 비판을 받으며 나는 자신에게 무엇이 부족하였는가를 새겨보았다.
그것은 바로 넋이였다.넋이 결여된 지향과 능력은 무용지물인것이다.나는 늦게나마 당의 사상과 의도를 근간으로 하는 그 넋이 흐려지면 인생도 빛을 잃는다는것을 절감하였다.
그후 나는 수십년간의 추억이 깃든 일터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였다.자책에 모대기며 나는 늘 품속에 간수하고다니던 한장의 사진을 꺼내들었다.그것은 군사임무수행중 생을 마친 형님의 모습이였다.우리곁을 떠나간지도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청춘시절의 그 모습으로 사진속에서 웃고있는 형님의 사진은 한 인간이 지녔던 순결한 애국의 넋에 대해 전해주고있었다.
하다면 이 사진을 늘 품고다니며 그처럼 고향의 떳떳한 아들이 되리라 맹세다지던 나는 왜 오늘과 같은 모습으로 귀향길에 올라야 했는가.형님의 모습과 함께 그의 고결한 정신세계를 항상 가슴속에 새기고 살지 못했기때문이다.
애국의 넋을 간직하면 청춘기에도 사람들의 추억속에 빛나는 별이 되고 그것이 없으면 백살을 살아도 흙이 될수밖에 없는것이 바로 인간의 생이라는것을 절감할수록 나는 새 일터에서 새 출발을 하리라 마음다지였다.
백암군건설려단에 배치되여 일을 시작한 때로부터 얼마후 군당책임비서동지가 나를 찾아왔다.
눈에 설고 손에 선 건설작업이 힘들지 않은가고 말하며 사업과 생활에 대해 세심히 묻던 그는 축사관리를 한번 맡아해보지 않겠는가고 하는것이였다.
그때 나는 땀을 흘려도 건설장에 바치고싶다고, 그 과정에 과오를 씻겠다고 솔직한 심정을 터놓았다.
그러는 나에게 책임비서동지는 건설려단의 축산토대를 강화하는데서 동무의 지식과 경험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건설자들에 대한 후방사업을 개선하는것 역시 살림집건설에 못지 않게 당에서 중시하는 문제라고 일깨워주었다.
이렇게 되여 나는 축사일을 맡아하게 되였다.
내가 아글타글 노력하는것만큼 종업원들의 식탁이 풍성해지고 그것이 곧 높은 공사실적으로 이어지는것을 보면서 나는 다시금 생활의 보람을 느끼기 시작했다.
군당책임비서동지는 축사건설을 발기해나선 나를 적극 지지해주면서 이 사업을 군당위원회적인 사업으로 전환시켜 힘과 고무를 안겨주었다.
당조직의 적극적인 지지와 방조속에서 부족되던 건설자재며 우량품종의 염소와 많은 량의 사료가 우선적으로 보장되여 우리 려단에는 2년도 안되는 기간에 많은 량의 젖제품과 고기를 생산공급할수 있는 축산토대가 튼튼히 갖추어졌다.
지난해 내가 새 정양소건설에 동원되였다는것을 알게 된 안해는 나이도 적지 않은데 좀 쉬염쉬염 일하는것이 어떤가고 하였다.
불편한 몸으로 고생하는 그에게는 항상 미안한 감정을 금할수 없었으나 자신이 선택한 길에서 물러설수 없었다.힘들고 지칠 때도 있었지만 정양소가 번듯하게 완공된 그날 당의 새시대 농촌혁명강령을 실행하는 보람찬 사업에 나의 땀과 열정도 적으나마 이바지되였다는 생각으로 마음은 마냥 즐거웠다.
지금 우리는 하루일과를 펄펄 휘날리는 공화국기발을 바라보며 《우리는 조선사람》의 노래를 힘차게 부르는것으로 시작한다.노래의 구절구절을 새길 때면 가슴마다에는 자신들이 그 누구보다도 조선사람의 넋을 소중히 간직하여야 할 백두대지의 주인들이라는 강렬한 자각이 고패친다.
나는 이렇게 인생의 진정한 보람을 다시 찾았다.그것은 잠시나마 망각했던 소중한 넋을 되찾은 과정이였고 그 넋과 함께 새 생활의 보폭을 활기있게 뗀 나날이였다.
백암군건설려단 참모 강경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