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애국공로자들을 따라배우자!

농장일을 제집일처럼


은천군 동창농장 제4작업반은 불과 8년전까지만 해도 찾아오는 사람보다 떠나가는 사람이 더 많았다.

땅도 척박했지만 불리한 지형조건으로 하여 장마철만 되면 그 피해가 간단치 않았다.작업반원들은 땅을 탓하며 하나둘 주저앉기 시작했다.바로 그러한 때 군당위원회의 지지밑에 농장적으로 제일 나쁜 땅을 맡아안겠다고 나선 사람이 있었다.그가 바로 은천군농촌자재판매소 소장 김광명동무였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애국의 마음은 조국과 인민을 위한 실천활동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꼭 그가 해야 할 일은 아니였다.하지만 농사짓는 사람, 밥먹는 사람이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면 어떻게 이 나라의 공민이라고 말할수 있겠는가.

국가에서 영농자재를 받아 해당 농장들에 공급하는것만으로 자기 할바를 다했다고 여겨온 지난날이 부끄럽게 돌이켜졌다.하여 그는 종업원들은 물론 가족들까지 불러일으켜 작업반의 농사일을 추켜세우기 위한 사업에 달라붙었다.

그때를 돌이켜보며 작업반장은 이렇게 말하였다.

《처음부터 일하는 잡도리가 달랐습니다.작업반에 나와 필지별로 토양분석부터 하더니 토질에 꼭 맞는 거름을 마련하여 포전마다 듬뿍듬뿍 쌓아놓는데 몇해후엔 땅색갈이 아예 달라졌습니다.한평한평을 피나게 옥토로 걸구어 벼모 한포기라도 더 심어가꾸기 위해 사심없이 땀을 바치는 그 모습에 정말 머리가 숙어졌습니다.》

사실 김광명동무가 작업반농사일을 함께 책임지겠다고 나섰을 때 작업반장은 다른 단위보다 영농자재를 더 푼푼히 쓰게 될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하지만 오히려 이전보다 비료나 농약을 더 절약하여 쓰면서 농사일을 했다고, 그에게서 과학농사만이 아니라 비료 한g한g을 아껴쓰는 애국의 마음을 배웠다고 하면서 작업반장은 말했다.저수확지 한뙈기, 비료 한줌을 놓고도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그 마음이 김광명동무를 《농사박사》로 만든것같다고.

그러던 어느해 여름 작업반포전은 뜻밖의 큰물로 말그대로 저수지가 되여버렸다.순간에 감탕에 묻혀버린 벼포기들을 떨리는 손으로 안아보는 김광명동무의 눈가에서는 눈물이 쏟아져내렸다.정말 큰물피해는 피할수 없단 말인가.

나약해지는 자신을 이겨낸 그는 마음을 굳게 먹고 억척같이 일어섰다.

마을의 토배기로인들과 무릎을 맞대고 물길을 어떻게 낼것인가를 의논하며 며칠밤을 꼬바기 새운 그는 현지답사를 해보면서 설계를 무르익혔다.동창리에 태를 묻은 사람들도 엄두를 내지 못한 일을 무조건 해낼 결심을 품고 군당위원회의 적극적인 방조속에 그해 겨울로 기어이 물길공사를 끝내는데서 큰 몫을 맡아한 그의 혁명적일본새는 하늘을 탓하며 농사가 안되는것을 어쩔수 없는 일로 여기던 일부 농장원들의 패배주의를 단번에 불살라버렸다.

새시대 농촌혁명강령실현을 위한 사업이 본격화될수록 김광명동무에게는 일감이 많아졌다.읍에서도 수십리 떨어진 농촌살림집건설장으로 방대한 건설용자재들을 실어날라야 했던 그때 수송지휘를 맡아 현장에서, 달리는 차에서, 때로는 한지에서 차수리를 하며 남모르게 맞은 새벽이슬은 그 얼마이던가.

사실 그는 남들처럼 몸이 성한 사람이 아니였다.하지만 그는 나라위한 일이라면 주저없이 어깨를 들이밀고 완강하게, 완벽하게 해내군 하였다.

지금도 작업반의 농장원들은 당 제9차대회에 참가하고 돌아오는 그달음으로 달려와 김광명동무가 격정에 넘쳐 하던 말을 생생히 기억하고있다.나라의 쌀독이 든든해야 무엇이든 마음먹은 일을 다 할수 있다고, 이제 더는 당에서 농사일때문에 걱정하지 않게 혼심을 다해서 땅을 더 잘 가꾸자고.

불같은 진정을 토로하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는 농장원들의 눈굽은 젖어들었다.깊어지는 병마에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가도 농사일이 걱정되여 지팽이를 짚고 농장벌을 찾을 때, 제손으로 직접 벼포기의 아지수도 세여보면서 그 불편한 다리로 쉬임없이 논두렁길을 걸을 때 그의 가슴속에 애오라지 꽉 차있은것은 무엇이였던가.

나라일이였다.나라일에 조금이나마 보탬을 줄수 있다면 그는 어려움도 아픔도 다 참고 견딜수 있었다.나라일이라면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운명을 걸고 나서야 하며 공민이라면 권리와 의무앞에 애국적량심을 먼저 놓아야 한다는것이 그의 인생지론이다.하기에 나라위한 그의 마음은 진함이 없었다.

농장일을 자기 집일처럼 도와나서는 김광명동무의 진정에 의해 제일 뒤떨어졌던 동창농장 제4작업반은 어제날의 락후한 모습을 깨끗이 털어버리였고 오늘은 2중3대혁명붉은기쟁취까지 궐기해나섰다.

그와 뜻과 걸음을 함께 해온 나날을 긍지높이 추억하며 은천군농촌자재판매소 종업원들은 한결같이 말했다.그에게서 애국을 배웠다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에 대한 열화같은 흠모심을 안고 만난을 이겨내며 그 힘으로 나라일에 헌신분투해온 김광명동무는 이렇게 자기의 진정을 토로하였다.

《주저앉을세라 이끌어준 고마운 당조직의 손길이 없었다면, 이 나라의 아들딸들을 애국자로 키워주는 위대한 어머니당의 품이 아니라면 평범한 로동자의 아들인 제가 어떻게 이렇듯 값높은 영예를 지닐수 있겠습니까.숨지는 순간까지 오직 나라위해 살겠습니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 조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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