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성은 방패막이가 아니다
거창한 변혁시대에 들어선 오늘 새것을 창조하고 대담하게 실천하려는 노력이 강화되는 속에 많은 단위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들이 이룩되고있다.
하지만 이와 대조되는 현상도 없지 않다.
어느한 공장에서 젊은 로동자로부터 생산효률을 높일수 있는 창발적의견이 제기된적이 있었다.그런데 이와 관련한 협의회과정에 일부 일군들은 신중해야 한다느니, 구태여 설비를 다칠 필요가 있는가고 하면서 로동자의 제기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얼핏 보기에는 매우 책임적인것같았지만 그 리면에는 혁신적인것을 지향하지 않고 현상유지에만 급급하려는 보신주의가 깔려있었다.그후 공장당조직의 지도밑에 실태는 바로잡혔지만 교훈은 컸다.
물론 일군이라면 응당 모든 사업에서 신중하고 책임적이여야 한다.문제는 우의 단위에서처럼 일부 일군들이 신중성을 보신과 안일의 방패막이처럼 여기고있다는데 있다.이런 일군들에게는 신중성이 단위와 국가의 발전을 위한것이 아니라 보신주의와 무책임성을 가리우는 신중성으로 되고있다.
이것으로 하여 단위와 국가가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가슴아픈 일인가.
시대는 일군들에게 묻고있다.
신중성을 그 무슨 방패막이로 내든적은 없는가, 실지 나라를 위해 신중한가.
본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