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전우관》
련속참관기
몸소 제의하신 공화국영웅칭호수여문제
조선혁명박물관 《혁명전우관》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해군무력의 창설과 강화발전에 공헌한 채정보동지의 위훈을 높이 내세워주신데 대한 가슴뜨거운 자료도 전시되여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오랜 기간 혁명을 해오시면서 그가 누구든 일단 동지적관계를 맺으시면 그의 운명과 미래를 끝까지 책임지고 보호해주시였으며 수천수만의 혁명전사들을 한품에 안아 크나큰 믿음을 주시고 온갖 사랑을 다 베풀어주시였다.》
1951년 4월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건지리에 자리잡은 최고사령부지휘처에서 하나의 문건을 보고계시였다.인민군지휘성원들과 군인들에 대한 국가표창추천문건이였다.
문건을 한장한장 보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생각은 깊으시였다.그이께서는 인민군대의 어느한 일군을 집무실로 부르시였다.그러시고는 채정보동무에게 왜 국기훈장 1급밖에 주지 못하겠는가고 물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물으심에 일군은 어떻게 대답을 드려야 할지 망설이였다.
그때 민족보위성(당시)에서는 함선건조위원회 위원장이였으며 전쟁행정에서 커다란 위훈을 세운 채정보동지의 투쟁을 평가하면서 그에게 국기훈장 제1급을 수여하도록 추천하였던것이다.
하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국가표창추천문건을 보아주시며 전사가 세운 위훈을 더 높이 내세워주시려 깊이 마음쓰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에게 그가 적구에 나가 로획한 각종 선박들로 기뢰를 부설하여 적의 구축함을 비롯한 각종 함선 12척을 격침시켰으며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적들과 싸워 600여명의 적병을 살상포로하였을뿐 아니라 적의 포위를 뚫기 위한 결사전에서 앞장서 싸우다가 전사한데 대하여 다시금 상기시켜주시였다.그러시면서 그의 전투공로로 보아 국기훈장 1급이 아니라 영웅칭호를 주어도 아까울것이 없다고 하시며 그는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의 어려운 시기에 동요없이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끝까지 잘 싸운 참된 지휘관이라고,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용감하게 싸운 그의 공로와 무비의 희생성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교시하시였다.
채정보동지를 그려보시는듯 잠시 생각에 잠겨계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는 우리 해군함대창설에서도 커다란 공로가 있는 사람이라고, 그는 해방직후에 그 어려운 속에서도 해군간부양성기지인 수상보안간부학교를 건설하는 사업과 우리 나라에서 함선건조의 물질기술적토대를 마련하는데서도 큰 기여를 하였다고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받아안는 일군의 가슴은 후더워올랐다.
위대한 수령님의 따사로운 품을 떠나 해군무력의 강화발전에 공헌한 채정보동지의 삶을 생각할수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방후 그를 몸소 찾아내시고 크나큰 믿음과 사랑으로 우리 나라 해군건설의 핵심으로 키워주시였다.그러한 그가 최고사령부의 작전적구상을 빛나게 관철하고 희생되였다는 비보를 받으시였을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더없이 비통해하시였다.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일군을 바라보시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그는 당과 조국앞에 아주 충실한 동무였다고, 채정보동무에게 공화국영웅칭호를 수여하도록 하여야 하겠다고.
이렇듯 전사의 공적을 귀중히 여기시고 끝없는 사랑과 은정을 베풀어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고결한 혁명적의리에 의하여 채정보동지의 위훈은 다시 평가되였으며 그는 사후에 공화국영웅칭호를 수여받게 되였다.
몸소 제의하신 공화국영웅칭호수여문제,
정녕 그것은 혁명전사들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한량없는 사랑과 은정을 후세에 길이 전하는 또 하나의 감동깊은 일화이다.
본사기자 림정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