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청위원장의 최후
《자기 인민과 계급, 제도에 대한 열렬한 사랑은 그것을 해치려는 원쑤에 대한 불타는 증오심과 비타협적인 투쟁정신을 낳습니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적들의 야수적인 만행속에서도 굴할줄 모르고 신념을 지켜싸운 사람들속에는 함주군 수흥리 민청위원장이였던 김이순동지도 있다.
수흥리에 기여든 미제와 계급적원쑤들은 해방후 민청사업에 열성이였던 악질빨갱이를 잡겠다고 하며 김이순동지의 집으로 쳐들어갔다.그를 찾지 못하게 되자 놈들은 모범농민이였던 그의 부모와 동생들을 마당으로 끌어내여 갖은 악행을 다하였다.
리일군들과 함께 인민군대원호미를 안전한 곳으로 옮긴 후 마을을 벗어나던 김이순동지가 적들에게 체포된것은 그로부터 며칠후였다.
놈들은 그에게서 식량이 있는 곳을 알아내려고 좋은 생활을 마련해주겠다며 회유하였다.그 어떤 유혹에도 그가 굽어들지 않자 미제와 계급적원쑤들은 매일과 같이 악착한 고문을 들이대였다.
하지만 김이순동지의 신념을 꺾을수 없게 된 놈들은 그를 사형장으로 끌어냈다.
정든 고향산천을 오래도록 바라보는 그의 눈앞에는 해방후 5년간의 잊지 못할 나날들이 떠올랐다.
나라잃은 그 세월 식민지노예살이를 강요당하며 청춘시절을 눈물과 한숨속에 보내야만 했던 김이순동지는 해방후에야 비로소 인간의 참된 삶을 누릴수 있었다.그는 늘
너에게 마지막기회를 주겠다고 떠벌이며 미제야수들은 제놈들의 기발앞에서 만세를 부르면 살려주겠다고 뇌까렸다.
하지만 그는 《우리 공화국은 영원할것이다.공화국기 만세!》라고 소리높이 웨쳤다.그러자 놈들은 그를 향하여 수십발의 총탄을 쏘아 무참히 학살하였다.
마을이 해방된 후 그의 시신을 다시 안장하던 사람들은 김이순동지의 품속에 고이 간직된 공화국기와 당원증을 발견하였다고 한다.렬사의 선혈이 스민 공화국기와 당원증을 감쌌던 붉은 천은 지금 함주군계급교양관에 전시되여있다.
김이순동지의 최후는 이곳 계급교양관을 찾는 참관자들에게 죽어도 혁명신념 버리지 않았던 애국자들의 고결한 정신세계를 다시금 깊이 새겨주고있다.
글 및 사진 박설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