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더운 사회주의애국청년선구자들


김일성종합대학 물리학부 광학연구소 실장 배지성동무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청년들은 과학기술강국건설을 위한 두뇌전, 기술전의 전렬에서 청춘시절의 하루하루를 값높은 창조와 위훈으로 빛내여나감으로써 강성부흥하는 조국의 미래를 앞당겨야 할것입니다.》

김일성청년영예상수상자이며 2.16과학기술상수상자, 자연과학상수상자인 김일성종합대학 물리학부 광학연구소 실장 배지성동무는 새로운 개척과 탐구의 앞자리에서 세계와 당당히 경쟁하고있는 청년과학자이다.

당의 크나큰 사랑속에 주체과학교육의 최고전당인 김일성종합대학에 입학한 그날 배지성동무는 대학전자도서관에 모신 위대한 장군님의 친필명제앞에서 선뜻 걸음을 뗄수가 없었다.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라고 하신 위대한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자자구구 새겨볼수록 새세대 청년대학생이 내세워야 할 학습과 과학탐구의 목표는 마땅히 세계적이여야 하며 그 수행의 앞장에 언제나 룡남산의 아들딸들이 서야 한다는 자각이 더욱 굳어졌다.

이렇게 높은 목표를 내세우고 귀중한 대학시절의 하루하루를 끊임없는 탐구의 낮과 밤으로 이어온 그는 학생시절에 벌써 비선형나노광학연구집단에 망라되여 세계가 공인하는 권위있는 학자들과 어깨나란히 경쟁의 마당에 뛰여들게 되였다.

조선청년의 존엄과 명예를 걸고나선 그는 수천회에 걸치는 모의실험을 통하여 마침내 첨단급연구과제수행의 돌파구를 열어놓게 되였으며 2017년 8월에는 권위있는 국제학술잡지에 자기의 첫 론문도 발표하였다.

23살의 젊은 나이에 박사학위를 수여받고 세계적인 학술경쟁에서 눈부신 성과를 이룩해나가고있던 그가 리론과 실천의 차이에 대하여 심중히 돌이켜본 충격적인 계기가 있었다.

어느날 학부에서 진행된 모임에서 배지성동무는 지금과 같이 나라가 어려움을 겪고있을 때 과학자, 기술자들이 들고일어나 가치있는 연구성과로 나라의 경제발전을 견인할데 대한 당의 숭고한 뜻에 접하게 되였다.

그날 연구집단의 성원들모두가 우리의 현실이 요구하는 실천연구에 달라붙어 나라의 경제발전에 이바지할것을 결의해나섰다.

세계적인 명성이 뒤따르는 리론연구도 좋지만 현실이 절박하게 요구하는 실천적문제해결의 앞장에도 마땅히 청년과학자들이 서야 한다는 사명감을 간직하고 그는 금속공업과 화학공업발전에 절실히 필요한 첨단분석설비를 연구도입하는 사업에 달라붙었다.

어려운 문제도 많았고 거듭되는 실패속에서 마음이 나약해질 때도 있었다.하지만 개척의 앞자리에 언제나 청년들이 서있어야 한다는 자각을 굳게 간직한 그는 자기의 지혜와 열정을 깡그리 바침으로써 첨단분석설비를 훌륭히 연구제작하는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끊임없이 높은 목표를 내세우고 청춘시절의 하루하루를 탐구와 열정의 낮과 밤으로 이어온 배지성동무는 얼마전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창립 80돐 기념행사에 참가하여 경애하는 아버지원수님을 만나뵙는 꿈만 같은 영광을 지니게 되였다.

오늘도 배지성동무는 사회주의애국청년선구자의 값높은 영예를 안겨준 당의 크나큰 사랑과 믿음에 더 높은 과학연구성과로써 보답할 일념 안고 새세대 청년과학자의 지혜와 정열을 탐구의 길에 아낌없이 바쳐가고있다.

글 및 사진 김진희


평안남도수산관리국 문덕수산사업소

《조선로동당의 딸 청년녀성영웅》호 선장 백선정동무



평안남도수산관리국 문덕수산사업소 《조선로동당의 딸 청년녀성영웅》호 선장 백선정동무는 지난 여러해동안 누구나 선뜻 나서기 저어하는 날바다에 청춘의 닻을 내리고 보람찬 삶을 빛내여가고있다.

그 나날에 그는 대오의 앞장에서 선원들을 이끌어왔으며 높은 책임성을 발휘하여 맡겨진 생산계획을 넘쳐 수행하는데 적극 이바지하였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젊어서 고생은 금을 주고도 못산다고 어렵고 힘든 초소에서 고생을 달게 여기며 청춘시절을 바친 보람찬 자욱은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인생의 재부가 되고 후대들에게 떳떳하게 물려줄 귀중한 유산으로 될것입니다.》

여러해전 사회에로의 진출을 앞두었을 때 백선정동무는 생각이 많았다.

꿈많은 처녀시절에 하고싶은것이 너무도 많았기때문이였다.

유치원교양원이 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본적도 한두번이 아니였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 그는 화면에 비쳐지는 한 처녀의 모습을 보며 큰 충격을 받게 되였다.

제2차 전국청년미풍선구자대회에 참가한 청년들속에서 그의 부모와 같이 문덕수산사업소에서 일하고있는 《조선로동당의 딸 청년녀성영웅》호 선장 안경희동무의 모습을 보았던것이다.

그날 밤 그는 시대와 조국의 부름에 귀중한 젊음을 바치는것으로써 화답해가는 청년미풍선구자들의 모습이 머리속에 떠올라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며칠동안 생각을 거듭하던 그는 그들처럼 청춘시절을 위훈으로 빛내여갈 마음을 안고 바다에로 진출할것을 결심하였다.

이렇게 그는 《조선로동당의 딸 청년녀성영웅》호의 선원이 되였다.

하지만 날바다에서의 생활은 그가 상상해오던것과는 너무도 차이났다.

한해치고 200여일을 바다에서 살다싶이 해야 하는데다가 일을 하자고보니 모르는것이 많았기때문이였다.

제일 참기 힘든것은 바다에서의 배멀미였다.

물고기를 잡기는 고사하고 몸도 가누기 힘들 때면 저도 모르게 륙지가 생각나고 부모가 그리워지군 하였다.

그럴 때마다 그는 동지들의 방조를 받으면서 자신을 이겨냈으며 기술기능수준을 높여 몇년후에는 사업소의 혁신자로, 선장으로 자라났다.

뭇처녀들이 고운 옷을 입고 아름다움을 뽐낼 때 날바다에서 땀과 물고기비린내가 푹 배인 작업복차림으로 해풍에 얼굴과 손이 트도록 일한다는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였다.

그러나 당의 수산정책을 받들어 조타를 억세게 틀어잡고 충성의 항로를 이어온 전세대 처녀어로공들처럼 청춘시절에 더 많은 일을 하겠다는 마음을 안고 그는 모든 곤난을 웃으며 헤쳐왔다.

선장으로 일하면서 그는 출어에 필요한 각종 도구들을 자체로 해결하는 한편 출어일수를 어김없이 보장하였으며 선진적인 어로방법을 받아들여 해마다 맡겨진 인민경제계획을 넘쳐 수행하는데 적극 기여하였다.

이렇듯 그는 어렵고 힘든 일터에 스스로 자신을 세우고 맡은 일을 더 잘하는데서 청춘의 진정한 보람을 찾았다.

지난 1월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창립 80돐 기념대회에 참가하여 경애하는 아버지 김정은원수님을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는 영광을 지닌 백선정동무, 얼마전 당에서는 그를 사회주의애국청년선구자로 또다시 값높이 내세워주었다.

글 및 사진 리수연


상원세멘트련합기업소 공무직장 선반공 송성애동무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새세대들도 당과 수령에게 끝없이 충실하였던 전세대들처럼 한생을 빛나게 살도록 교양하여야 합니다.》

10여년전 중학교를 졸업하고 상원세멘트련합기업소에 배치받은 송성애동무는 무한한 희열과 랑만에 넘쳐있었다.절세위인들을 명예지배인으로 모신 영광의 일터, 온 나라가 다 아는 굴지의 세멘트생산기지에서 일하게 되였다는 커다란 긍지와 자부심에서였다.

기능공학교를 졸업한 후 그는 공무직장 선반공으로 배치해줄것을 제기하였다.

누구나 선뜻 오기를 저어하는 어렵고 힘든 초소였지만 짐을 져도 제일 무거운 짐을 지고 일을 해도 제일 힘든 일을 도맡아하려는 청춘의 사명감으로부터 출발한것이였다.더우기 그곳 작업반장이 련합기업소적으로 소문난 사회주의애국공로자라는 사실이 그의 마음을 더욱 끌어당기였다.

그러나 스스로 어렵고 힘든 초소에 섰다고 하여 저절로 위훈의 창조자, 시대의 선구자로 되는것은 아니다.

지금은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속에 떠받들리우고있는 송성애동무이지만 한때 그에게도 나약해졌던 그런 순간이 있었다.

온종일 남자들도 들기 힘들어하는 무거운 쇠붙이를 다루어야 하고 기름묻은 작업복을 벗어볼 사이없이 매일과 같이 선반을 돌려야 하는 일을 연약한 처녀의 몸으로 감당해낸다는것이 쉽지 않았다.한날한시에 기능공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작업반에 배치되였던 동무가 편안한 일터를 찾아 떠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야속한 마음으로 남몰래 눈물을 흘린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공장의 오랜 종업원이며 사회주의애국공로자인 작업반장의 모습에 자기를 비추어보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나라를 위해 큰 공적을 세웠고 이제는 년로한 몸이지만 변함없이 맡은 일에 헌신적인 그의 모습은 송성애동무로 하여금 참된 애국은 어디에 있는가를 깊이 생각하게 하였다.

하기에 송성애동무는 잠시간도 미루어가면서 자신의 기술기능수준을 높이기 위해 아글타글 노력하였으며 그 나날에 세멘트크링카운반용콘베아 고정볼트가공속도를 높이기 위한 지구장비도 창안제작하여 련합기업소의 세멘트생산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하였다.지난 10여년간 그가 생산보장한 수십만개에 달하는 크고작은 부속품들에는 전세대가 지녔던 충성과 애국의 넋을 변함없이 이어가려는 새세대의 아름다운 삶의 지향이 그대로 비껴있다.

조직과 동지들의 방조속에 소문난 혁신자로, 손꼽히는 기능공으로 자라난 송성애동무는 지난 1월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창립 80돐 기념대회에 참가하여 경애하는 아버지원수님을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는 크나큰 영광을 지니게 되였다.

전세대의 아름다운 삶을 찬양하는것으로 그칠것이 아니라 그들이 간직하였던 숭고한 넋과 혁명정신을 피줄처럼 이어가리라.그들처럼 자기의 일터를 사랑하고 맡은 일을 성실하게 하여 조국의 부강번영을 굳건히 떠받드는 초석이 되리라.

이것이 언제나 우리 당의 위업을 충직하게 받드는데서 앞장서온 전세대 로동계급처럼 살며 투쟁하려는 상원의 첫 사회주의애국청년선구자가 터치는 진정의 토로이다.

글 및 사진 김성훈


신의주방직공장 정방공 김경림동무



김경림동무는 정량의 두배나 되는 정방기를 맡아안고 지난 10년간 매일 백수십리의 순회길을 달린 로력혁신자이다.당 제7차대회가 제시한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목표를 넘쳐 수행함으로써 지금으로부터 6년전 김정일청년영예상을 수여받은 그는 지난 5년간 당 제8차대회 결정관철을 위한 투쟁에서 또다시 위훈을 창조하고 사회주의애국청년선구자의 값높은 영예를 지니였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5개년계획수행에서 청년들이 창조와 혁신의 불길을 세차게 지펴올려야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10여년전 남보다 먼저 양성기간을 마치고 단독으로 정방기를 맡아 돌리던 김경림동무는 력사적인 당 제7차대회가 진행된다는 소식을 크나큰 흥분속에 받아안게 되였다.

당대회가 제시한 웅대한 과업을 실현하는 길에서 시대의 청년영웅이 되리라.

이것이 그의 마음속에서 끓어번진 불같은 맹세였다.

그 맹세를 안고 그는 자기 정량의 두배에 달하는 정방기를 맡겨줄것을 제기하였다.공장에 들어온지 얼마 안되는 나어린 처녀가 단번에 여러대의 기대를 맡아나서자 모두가 놀라와했다.그러나 그가 명절날, 휴식일이 따로없이 실잇는 시간을 단축하고 합리적인 순회방법을 받아들이기 위해 끊임없이 사색하고 노력을 기울이는것을 보고는 모두가 감탄했다.

말이 쉽지 매일이다싶이 백수십리나 되는 순회길을 달리고나면 온몸은 땀주머니가 되여 걸음조차 제대로 옮길수 없었다.하지만 그는 자기가 달린 거리만큼 조국의 전진이 빨라진다는 자각을 안고 짬시간마다 수리공들에게서 기대수리방법까지 배워 웬만한 고장은 자체로 수리하면서 해마다 맡겨진 생산계획을 훨씬 넘쳐 수행하였다.그리하여 2018년에 벌써 5개년전략목표완수자대렬에 당당하게 들어서게 되였다.

하지만 그는 만족하지 않았다.그가 일하는 편직사직장은 솜으로부터 실을 뽑는 모든 공정이 갖추어져있는 종합적인 직장이였다.

다기능공이 될것을 목표로 내세운 그는 직장의 모든 생산공정에 정통하기 위한 사업에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맡겨진 작업과제를 수행하면서도 짬만 있으면 오랜 기능공들에게서 피타게 배웠다.그 이악한 노력은 마침내 응당한 결실로 이어져 그는 정방공으로서만이 아니라 조방공, 권사공으로서의 임무도 원만히 수행할수 있게 되였다.

이렇게 남보다 늘 두몫, 세몫의 일감을 안고 뛰는 속에서 김경림동무는 신입공들의 기능수준을 높이기 위한 사업에도 힘을 넣었다.작업의 쉴참은 물론 휴식일, 명절날까지 바쳐가며 신입공들을 위해 애쓰는 그의 헌신적인 노력에 의해 지난 기간 50여명의 신입공들이 기능공으로 자라날수 있었다.그는 오늘도 위대한 변혁의 시대에 사는 청춘답게 하루하루를 빛나는 애국의 자욱으로 수놓아갈 불같은 마음을 안고 순회길을 달리고 또 달리고있다.

김경림동무의 삶은 이 땅에 사는 모든 청춘들에게 이런 인생의 진리를 가르쳐주고있다.하루를 열흘, 백날맞잡이로 살며 시대의 벅찬 숨결과 호흡을 같이할 때 그런 청춘은 언제나 시대의 본보기로 빛을 뿌린다는것을.

글 및 사진 본사기자 정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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