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기

누리는 행복이 클수록

 

생기와 활력에 넘친 사람들과 어울려 정든 거리를 걸을 때면 때없이 저도모르게 외워보는 말이 있다.

내 나라는 얼마나 좋은가!

지금도 나는 어느 한 나라에서 겪었던 일을 잊을수가 없다.

금방 차에서 내려 어느 한 거리로 들어서는데 불쑥 시퍼런 칼날이 목앞으로 날아들었다.칼을 더 가까이 들이대는 강도앞에서 나는 깜짝 놀라 손에 든 가방을 떨구었다.강도는 그 가방을 들고 유유히 사라져버리는데 나를 더욱 아연케 한것은 그 광경을 못 본척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의 례사로운 거동이였다.그런 일은 나만 체험한것이 아니였고 또 한두번으로 그친 일도 아니였다.밝은 대낮에도 언제 총알이나 비수가 날아들지 모를 공포의 땅에서 과연 행복이란 말을 생각할수 있겠는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공화국은 인민대중을 국가와 사회의 주인으로 내세우고 인민대중을 위하여 복무하는 진정한 인민의 나라, 인민대중중심의 사회주의국가입니다.》

거리의 공포도 무서운것이지만 그보다 더 경악을 금할수 없는것은 얼마든지 살릴수 있는 생명도 랭혹하게 죽음에로 차던지는 자본주의나라의 치료비였다.

나라없던 그 세월 두 외삼촌이 병원문앞에도 가보지 못하고 숨졌다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나는 옛말처럼 들으며 자랐다.그 옛말 아닌 현실을 반세기도 훨씬 지나 나의 온몸으로 체험하게 될줄이야 어찌 알았겠는가.

이것은 내가 어느 한 나라 병원에서 겪은 일이다.감기를 앓고난 뒤 내가 그 나라 병원에 축농증치료를 받으러 갔을 때였다.조국에서처럼 천자치료를 받으면 될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사는 무작정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것이였다.그러면서 수술비에 입원비까지 합친 치료비를 부르는데 나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조국의 무상치료에 습관된 나로서야 상상이나 할 일이겠는가.

함께 일하던 한 동무는 뜻밖의 사고로 머리에 피가 고이게 되였다.수술하자면 1만US$가 있어야 하였다.그는 조국으로 돌아와 돈 한푼 들이지 않고 수술을 받은 후 건강한 몸으로 다시 자기 초소에 서게 되였다.그후 그는 막대한 치료비를 요구하던 그 병원에서 다시 CT검사를 하게 되였는데 어디서 이렇게 훌륭한 수술을 받았는가고 하면서 연신 감탄을 금치 못하던 병원측에서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치료비를 얼마나 물었는가고.

치료비가 없으면 생사를 다투는 환자에게서도 서슴없이 인공호흡기를 떼는 그들이 어떻게 무상으로 치료받았다는 말을 리해할수 있었겠는가.돈이 없으면 눈뜨고 죽음을 기다려야 하는 자본주의땅에서 언제나 그리운것은 사회주의 내 조국의 따뜻한 온기, 포근한 정이였다.그럴수록 나의 심장속에 깊이 스며든것은 위대한 수령님들의 친어버이사랑이였다.

현지지도의 길에서 한 일군의 달라진 얼굴색을 두고 누구보다 마음쓰시며 병도 깨끗이 고쳐주고 얼굴모습도 본래대로 만들어주자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 유능한 의사들로 특별치료진을 뭇고 온갖 약재를 아낌없이 보장하도록 하시여 그에게 청춘의 활력을 안겨주신 위대한 장군님.

위대한 수령님들의 따뜻한 사랑속에 퇴원후에는 료양치료까지 받으며 건강을 완쾌한 그 일군이 바로 성진제강련합기업소 지배인이였던 나의 아버지였다.

위대한 수령님들께서는 바로 나의 아버지를 아끼고 보살펴주신 그 사랑으로 온 나라 인민을 따사로운 품에 안아 사회주의혜택을 마음껏 누리며 부럼없이 살도록 크나큰 로고를 바치시였다.

하기에 언제인가 하느님을 구세주로 믿고있는 어느 한 재미교포는 조국에 와서 국가의 사회주의적시책속에서 행복을 누리는 우리 인민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조국이야말로 지상천국이다, 죽어서 천당에 갈것이 아니라 이 지상천국에서 오래 살아야 한다고 격정을 금치 못했던것이다.

복속에서 누리는 복이 클수록 먼저 생각해야 한다.

복을 누리는 자식들 뒤에 천만고생으로 그 복을 가꾸어가고 지켜가는 고마운 어머니가 있다는것을!

그리고 심장에 새겨야 한다.그처럼 고마운 품, 사회주의를 목숨바쳐 지켜야 한다는것을.

평천구역 륙교2동 103인민반 전옥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