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우리 조국에서만 태여날수 있는 인간사랑의 찬가

동해학원의 한 원아에게 바쳐진 따뜻한 사랑과 정에 대한 이야기

 

얼마전 동해학원의 하반신마비가 왔던 한 원아가 침상을 박차고 일어나 대지를 마음껏 활보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사회의 모든 성원들이 서로 믿고 사랑하고 도우면서 화목한 대가정을 이루고 다같이 삶의 보람과 행복을 누리는것이 우리 사회의 참모습이다.》

사회주의보건제도의 혜택속에서 사경에 처하였던 환자들이 소생하는 기적에 대하여 사람들은 너무도 례사롭게 들어왔다.하지만 동해학원의 한 원아의 치료과정은 우리에게 또다시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다른 나라, 다른 사회에서라면 최하층에서 버림받았을 부모없는 한 소녀가 제일가는 행복동이가 되여 뭇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수많은 보건일군들의 정성속에 두번다시 태여난 이 기적이야말로 사회주의 우리 조국에서만 찾아볼수 있는 특이한 현실이다.

우리모두가 공기처럼 범상하게 느끼고있는 사회주의생활속에 얼마나 뜨거운 인간사랑의 세계가 비껴있는가를 다시한번 심장으로 절감하게 하는 몇가지 사실들을 그대로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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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병을 만나 심하게 앓고있던 안정심소녀가 지난해 4월 치료를 받기 위하여 평양으로 오게 된데는 가슴뜨거운 사연이 있었다.

지난해 3월 어느날이였다.보건성 일군들이 많은 의약품과 의료설비들을 가지고 동해학원을 찾아왔다.

당시 인민보안성에서는 동해학원을 희한하게 다시 일떠세우는 전투를 마감단계에서 벌리고있었는데 보건성에서 이들을 도와주려고 찾아왔던것이다.

이날 보건성 일군들은 학원에 하반신마비로 고통을 겪는 한 원아가 있으며 그의 생명이 여러가지 합병으로 하여 마지막계선에 이르렀다는것을 알게 되였다.환자를 찾아본 이들은 선듯 발걸음을 돌릴수가 없었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그처럼 애지중지하시는 원아들속에 단 한명의 그늘진 아이라도 있으면 되겠는가.)

리광혁처장의 심정뿐이 아니였다.동해학원에 함께 온 홍승일부국장과 박성철책임부원도 마치 한 원아의 앞날이 자기들의 어깨우에 지워져있는듯 한 무거운 마음을 안고있었다.

평양으로 돌아온 보건성 일군들은 동해학원의 한 원아의 운명을 놓고 자기 자식의 일처럼 가슴아파하면서 심중한 론의를 거듭하였다.출장길에서 우연히 알게 된 환자를 스스로 책임지고나선 이 소행은 사회주의보건제도를 지켜선 우리 시대 보건일군들의 사상정신세계를 보여주는 동시에 한 원아의 소생을 예고하는 희망의 첫싹으로 되였다.

이렇게 되여 중앙병원의 유능한 의사들의 검진을 받은 안정심소녀는 척추수술을 받기 위하여 보건성 하단병원으로 옮겨가게 되였다.

김두섭원장을 비롯한 병원의료일군들이 그들을 따뜻이 맞이하였다.

《우리 정심이를 부탁합니다.》

친자식을 맡긴듯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보건성 일군들의 절절한 마음에 감동된 원장은 대답대신 《우리 정심이》라는 말을 곱씹어외웠다.

사실 처음 환자를 보았을 때 이곳 의료일군들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척추수술에서 림상경험이 풍부한 그들이였지만 몸에 차마 수술칼을 댈수 없을 정도로 환자의 상태가 위중하였던것이다.

하지만 의료일군들은 한 어린 생명에 대한 치료과업을 조국의 명령마냥 무게있게 받아안았다.협의회만 해도 10여차례 진행되였다.최선의 방도는 짧은 기간에 정심이의 건강상태를 수술적응증에 이를 때까지 회복시키는것이였다.

약물치료, 수법치료, 심리치료, 과학적인 식사보장…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하도 정성이 지극하여서인지 몇개월동안 줄곧 악화되던 정심이의 건강이 호전기미를 보이기 시작하였다.20여일이 지나서부터는 환자의 숨결도 고르로와지고 심장박동도 어느 정도 안정되였다.

한편 척추외과 과장 강성민동무를 비롯한 의료일군들은 정심이에게 육체적부담을 크게 주지 않으면서도 좋은 치료성과를 거둘수 있는 수술방법에 대한 연구에 들어갔다.수술의 목적은 하반신마비를 결정적으로 푸는것인데 여기서 생명을 담보하는 기본조건은 수술부위를 작게 하면서 수술시간을 최대로 단축하는것이였다.

드디여 병원에서는 수술을 결심하였다.그런데 수술을 하자고보니 수술립회인이 없었다.

수술을 앞두고 그의 병력서를 정리하던 과장의 손이 문득 멈추어졌다.정심이는 부모가 없으니 보건성에서 수술립회를 서겠다고 하였는데 홍승일부국장과 박성철책임부원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것이다.

원주필을 쥔채로 망설이고있는 과장의 손을 덧잡으며 김두섭원장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성일군들은 오지 말라고 내가 부탁하였소.웬일인지 처음 수술칼을 잡을 때처럼 마음이 긴장되더구만.정심이의 수술립회는 내가 서겠소.》

이렇게 되여 그날 수술집도자가 수술립회인을 겸하여 수술장에 들어서는 뜻밖의 현실이 펼쳐지게 되였다.

그 시각 평양에서 내려온 보건성의 일군들도 병원밖에서 한초한초 가슴을 조이면서 수술결과를 기다렸다.정심이에게 자기 피를 넣어주겠다고 팔을 걷어붙이고 줄을 서있던 의료일군들의 모습은 정말로 눈물겨운 광경이였다.수술과정에 여러명이나 되는 보건일군들의 피가 생명의 젖줄기가 되여 정심이의 몸에 흘러들었다.

수술은 성과적으로 끝났으나 그날 저녁 원장과 과장을 비롯하여 수술장에 들어섰던 사람들은 수술시의 초긴장감이 좀처럼 풀리지 않아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한겨울을 이겨내고 움터난 새싹이런듯, 봄빛에 젖은 꽃망울이런듯 생기를 다시 머금은 정심이의 회복은 빨랐다.

수술후 20일이 되여 발가락감각을 되찾은 안정심소녀는 한달만에 드디여 자리에서 일어나 앉을수 있게 되였다.병원사람들모두가 자기 일처럼 기뻐하였다.그들은 사경에 처하였던 환자가 소생하고 큰 수술이 성과적으로 진행된것이 마치 정심이의 공로나 되는듯이 두볼을 다정하게 쓸어주고 어깨를 두드려주며 정말 용타고 축하해주었다.

사실 정심이가 소생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뜨거운 정성을 바쳤던가.

정심이의 몸상태를 개선하기 위하여 매일이다싶이 밤을 밝히면서 누구보다 마음을 많이 써왔고 명절이면 마치 친손녀가 입원한듯 온 가족을 데리고 호실에 찾아와 그의 마음을 즐겁게 하여주던 인정많은 김두섭원장, 다른 사람들에게 페를 끼치는것이 미안하다고 하면서 음식을 잘 들지 않고 속태우는 정심이에게 친어머니처럼 따뜻한 정을 끝없이 부어주며 정성껏 보살펴준 동해학원 간호원 림옥경동무, 정심이를 제살붙이처럼 꼭 붙안고 치료 전과정에 티없이 깨끗한 량심을 바쳐온 담당의사와 담당간호원이며 어쩌다 맛좋은것이 생겨도 저마다 정심이를 생각하여 가져오고 그가 적적해할세라 늘 관심해주고 세심히 보살펴준 온 병원의 의료일군들과 종업원들, 귀한 약재들을 마련해가지고 때없이 찾아와 정심이를 기쁘게 하여주고 신심을 가지도록 고무해준 보건성의 일군들…

하지만 안정심소녀에게는 이것이 치료의 전부가 아니였다.

리광혁처장을 비롯한 보건성 일군들은 안정심소녀가 자기 발로 대지를 활보할 때까지 치료를 꾸준히 밀고나가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지난해 6월 안정심소녀는 평양의 어느 한 중앙병원으로 옮겨오게 되였다.그의 곁에는 회복치료를 위해 온갖 성의를 다하는 새로운 담당의사, 담당간호원들이 있었다.보건성의 일군들, 병원의 입원환자들이 정심이, 정심이 하면서 그를 조금이라도 더 기쁘게 해주려고 왼심을 썼다.낯모를 인민보안원들도 그를 찾아와 따뜻이 돌봐주었다.

몇달간의 치료끝에 안정심소녀가 자기의 두발로 땅을 디디고설수 있게 되였을 때부터는 문수기능회복원에서 정심이의 운동회복치료를 맡아나섰다.

어느날 김일성종합대학 평양의학대학병원의 변경호실장이 정심이를 찾아와 《이 병원에선 오순철담당의사선생님이 너를 책임졌지만 문수기능회복원으로 다닐 때에는 내가 너를 책임졌단다.》라고 하면서 자기 소개를 하였다.

다음날부터 그는 매일과 같이 정심이를 손녀처럼 꼭 껴안고 문수기능회복원에 함께 다녔다.

그러던 어느날 인민보안원 박충일동무가 또 정심이를 찾아왔다.동해학원의 한 원아가 평양에 와서 몇달째 치료받고있다는 이야기를 우연히 들은 그는 자신이 솔선 정심이를 문수기능회복원으로 데리고다니는 일을 맡아나선것이다.하여 의사와 보안원이 늘 같이 다니며 어린 정심이의 기능회복치료를 도와주는 흔치 않은 모습이 펼쳐지게 되였다.

고마운 이 인민보안원은 매일 아침식사를 준비하여 정심이를 찾아오고 일요일이면 안해와 함께 맛있는 음식을 가져다가 정심이를 기쁘게 하여주었으며 쌍지팽이도 만들어주고 몸에 꼭 맞는 옷도, 포근한 이불도, 재미나는 그림책도 안겨주었다.

한손으로 벽을 짚고 걸음을 뗄수 있게 되자 정심이는 또다시 김일성종합대학 평양의학대학병원으로 옮겨 입원하게 되였다.

여기서 회복치료를 받은 한달 남짓한 기간의 이야기에 대하여 우리는 정심이와 그또래 아이들이 자기의 책에 또박또박 쓴 몇줄의 글로 대신하려고 한다.

《오늘은 일요일이다.

저녁식사가 끝날무렵 큰아버지, 할아버지가 왔다.나는 정말 기뻤다.…

우리 호실의 할머니, 어머니들과 동무들은 이런 나를 보고 부러움을 금치 못해하였다.나는 자랑스럽다.

나는 치료를 다 마치고 학원에 가면 모든 과목에서 단연 첫자리를 차지하며 꼭 미술소조에 들어가겠다.그래서 온 한해동안 나에게 사랑을 기울여준 고마운 사람들의 모습을 화폭에 담겠다.…》

《내가 아침에 치료를 받고 호실에 들어오니 낯모를 사람들이 많았다.그 사람들은 정심언니의 면회를 왔던것이다.나는 사람들이 바람이 쌩쌩 부는 날에 왜 면회를 왔을가 하고 생각하였다.나는 그것이 원수님 사랑이라는것을 느꼈다.…》

《내가 있는 호실에는 어릴 때 부모를 다 잃은 정심이라는 동무가 있다.…나는 처음 나와 나이도 꼭같은 저 동무가 부모도 없이 얼마나 쓸쓸해할가 하는 생각에 솔직히 동정까지 갔었다.

하지만 매일매일 언제나 엄마같은 간호원아지미가 그를 돌봐주고있었다.그리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과 길가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이 그의 병문안을 오고있다.병원선생님들도 모두가 다 정심동무의 병을 하루빨리 완쾌시키기 위해 온갖 정성을 기울이고있다.

정말 친부모도 줄수 없는 혈육의 정이 정심동무에게 미쳐지고있다.이런 전설같은 이야기는 사회주의조국에서만이 꽃펴날수 있다.…》

동해학원에서는 정심이가 그새 못한 공부를 보충하라고 리정임교원을 올려보냈다.그는 정심이에게 학원동무들의 편지도 전해주었다.

다정한 동무들은 다매체편집물을 보면서 공부도 하는 현대적인 교실, 체육 및 오락을 마음껏 할수 있는 체육관, 드넓은 축구장, 따뜻한 잠자리가 기다리는 기숙사 등 새로 일떠선 학원자랑으로 편지를 꽉 채우며 모두들 정심이가 어서 오기를 손꼽아 기다린다고 하였다.

정심이에게는 어디서나 사랑과 정이 넘쳐흐르는 행복의 보금자리, 따뜻한 집이 기다리고있었다.이렇듯 뭇사람들의 진정어린 관심과 보살핌속에 안정심소녀는 그렇게도 다시 밟고싶던 이 땅을 마음껏 밟을수 있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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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6(2017)년 12월 8일 안정심소녀가 자기 발로 걸어서 다시 동해학원구내에 들어설 때까지 240여일의 입원치료를 받은 병원은 4개, 직접 치료에 참가한 의료일군들은 10여명, 치료를 조직해주고 친혈육처럼 생활을 보살펴준 일군들과 근로자들은 무려 수백명…

이 몇개의 수자를 놓고 우리는 안정심소녀가 다시 소생하여 대지를 활보할수 있게 된 기적의 비결에 대하여 충분한 대답을 찾게 된다.

경애하는 원수님을 어버이로 높이 모신 사회주의대가정에 흘러넘치는 따뜻한 사랑과 정, 이것이야말로 개별적인 의사의 실력이나 값비싼 약에 비할바없는 오직 우리의 사회주의에만 있는 명처방이고 명약이다.

돈밖에 모르는 자본주의사회같으면 있을수도 없고 흉내낼수도 없는 이런 아름다운 인간사랑의 찬가는 앞으로도 끝없이 이어질것이며 그로 하여 우리 조국은 더욱 단결되고 강대한 모습으로 온 세상에 빛날것이다.

본사기자 김옥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