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전 소년로동자의 딸이 나라의 대의원으로

 

나라의 정사를 의논하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들가운데는 교육자들도 있다.3중영예의 붉은기 평양제4소학교 교장 인민교원 길금순동무는 그들중의 한명이다.

전쟁로병인 그의 아버지는 해방전에 소년로동자였다.악독한 왜놈의 세상에서 13살 소년은 온 가족의 명줄을 걸고 손끝이 닳도록 로동을 했다.길금순교장의 어머니 역시 망국노의 피눈물을 삼키다 못해 자살까지 시도하였었다.

해방된 조국은 지지리도 못살고 천대받던 이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주었고 따뜻한 보금자리도 마련해주었다.

나라의 귀중함을 뼈에 사무치게 간직하였기에 아버지는 전쟁이 일어나자 제일먼저 총을 잡고 전선으로 달려나갔고 어머니는 후방에서 인민군대원호사업에 누구보다 앞장섰다.

사회주의조국은 이들의 다섯자식모두를 대학공부까지 시켜 당당히 내세워주었다.

다섯자식의 막내인 길금순교장은 어릴적부터 품고있던 소망대로 평양교원대학을 졸업하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육자가 되였다.

그가 대학을 졸업하고 평양대동문인민학교(오늘의 김성주소학교)의 교단에 서던 날 과묵한 아버지도 눈물이 글썽해서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정말 좋은 세상이야.해방전같으면 생각이나 했을라구.일을 잘해라.아이들을 잘 가르쳐 나라를 떠받드는 기둥감들로 억세게 키우거라.》

단발머리 처녀교원은 그날에 한 아버지의 당부를 잊지 않고 조국이 맡겨준 교단을 빛내이기 위해 이악하게 노력하였다.

하루빨리 선배교원들을 따라앞서기 위해 밤잠을 잊다싶이 하며 자질향상에 힘을 넣었다.학생들의 실력을 높이기 위해 명절날, 휴식일 따로 없이 진심을 바쳤다.불같은 그 열정은 가정을 이룬 후에도 식을줄 몰랐다.

당에서는 30대의 그에게 위대한 장군님의 불멸의 사적이 깃들어있는 평양제4소학교의 교장사업을 맡겨주었다.

그때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18년 남짓한 나날 학교의 면모는 몰라보게 달라졌다.전국의 소학교들가운데서 《1번수 학교》라고 떳떳이 말할수 있는 평양제4소학교의 자랑스러운 연혁의 갈피에는 길금순교장의 참된 교육자적량심과 헌신, 피타는 노력이 짙게 슴배여있다.

인민은 30년동안 교육부문에서 일하면서 나라의 미래를 가꾸는 사업에 성실한 땀을 바쳐온 길금순교장을 최고인민회의 제13기 대의원으로 선거하였다.그리고 지난 5년간 인민의 대표답게 아이들을 위하여, 인민을 위하여 충실히 복무해온 그를 또다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대의원후보자로 추천하였다.

본사기자 서남일